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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ug 13. 2022

11. 최악의 연말

우당탕 재취업 준비기 및 병원 방문기(1)

 B사를 퇴사한 뒤 나는 신경안정제를 더는 찾지 않게 되었다. 숨 막히게 하는 회의실은 이제 보이지 않았으며 차도를 볼 때마다 일어났던 기묘한 상상력은 어느 순간 힘을 잃었다. 그러니 병원에 또 갈 이유는 없었다.


너무 급격하게 이뤄지는 회복 과정에 사실 기분이 좋다기보다 묘했다. 내 우울증의 지분에서 B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높은 게 아니라 완전무결 100%의 지분율을 차지하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우울증에 걸린 건 복합적인 이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 B사의 탓이구나. 정말이지, 참으로 멍멍이 같은 회사로구나....


 심상치 않은 회복 속도를 지켜보며 새삼스러운 감상을 가져보았다. 아무리 그간 배운 게 많을지라도 말이다.
 

 하여간 B사 퇴사 이후, 예전의 취업 준비생 모습으로 원상 복귀한 나는 열심히 채용 공고를 뒤적거리는 나날을 보냈다. 이번에는 보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두 개의 스터디에 들어갔다. 하나는 인·적성 스터디였고 나머지 하나는 면접 스터디였다.


취업 준비 관련 카페와 오픈 카톡방에서 스터디 인원을 구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이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약속을 잡았다. 성격이 내향적인 편이라 생판 타인을 만나는 일은 불편했지만, 취업 앞에서는 불편하고 뭐고를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천성을 바꿔 버릴 만큼 취업이 절박했다. 그렇게 나는 초면인 사람들과 몇 개월간을 강남역 근처 스터디룸에 모여 함께 취업 준비를 했다.


 스터디의 효과와 B사의 경력이 추가된 이력서의 조합으로 예전보다는 확실히 서류 합격률이 올라갔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회사든 다 통과하지는 못했다. 수없이 지원했던 이력서 중 절반 이상은 떨어지고 일부만이 합격했다. 그 일부 중에서 인·적성과 1차 면접까지 힘들게 통과한 회사가 딱 3곳이었다. 최종 면접을 보는 걸 용케 허락받은 회사가 세 군데였다는 거다. 그 마저도 일정이 겹치게 되어 한 군데의 최종 면접은 포기하게 됐다.


기회는 단 두 번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 관문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임했다. 하지만 끝내 두 회사 다 최종 탈락했다. 그 이후 나는 종일 침대에 눕기만 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잠드는 과정이 어려웠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잘 수 있었던 내가 불면증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된 나날이었다. 거듭된 실패에 뭘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기력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생리, 계속 안 하고 있었네?


 B사를 퇴사하고 나서 정신 건강은 나아졌지만 몸 건강은 그렇지 못했다. 그간 너무 바쁘게 보내느라 크게 건강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솔직히 몸의 재생작용을 다소 자신했던 것도 있었다. 내가 별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우울증이 절로 쾌차하니, 과도한 믿음이 자랄 법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고향집 근처의 산부인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어차피 면접에 다 떨어져서 할 일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병원 진료를 예약한 건 생리 중단에 대한 구체적 원인을 알아보기 위함이지, 내 몸 상태에 대해 심각한 경각심을 안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사이, 전에 지원했던 중소기업 C사에서 연락이 왔다. 포트폴리오 전형을 통과했으니 면접을 보려 오라고 했다. 작년에 이미 한번 떨어진 곳이라 서류 합격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기쁜 마음으로 옷장 속에 넣어둔 정장을 다시금 꺼내입어 면접장으로 향했다.


 면접 분위기는 순탄했다. 날라 오는 질문들 대부분이 내가 입사 후 무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마치 이미 합격을 염두에 둔 것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붙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가졌다. 그 추측대로 면접 본 다음 날, 최종 합격 문자를 받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성공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회사에 지원한 자리 또한 정규직이 아닌 인턴직이란 것이었다.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나 또다시 인턴을 해야 하는 상황에 완전한 기쁨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이번에는 단순히 체험형이 아닌 ‘정규직 전환형’이었다. 평가까지 받아야 하는 자리라 부담감이 컸다.


그런 와중, 내년 1월 초에 입사가 확정되었다. 입사 날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최대한 많이 디자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졌다. 건강에 대한 생각은 벌써 희미해진 채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연말이 다가왔다. 본가로 내려갔고 전에 예약해둔 날짜에 맞춰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의사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며 혈액 검사를 진행하자고 말했다. 호르몬 수치를 보고 이상이 생긴 점을 좀 더 면밀하게 파헤쳐 보자는 취지였다.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혈액 채취를 위해 팔을 내밀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보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말하자면 12월 31일 오후 6시 즈음에 전화가 걸려왔다. 산부인과 병원 의사로부터였다.


 “프로락틴 수치가 너무 높아요. 검사 결과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 수치만큼 나왔는데, 이만큼 수치가 높다면 뇌하수체 종양을 의심해야 해요.”

 “...네? 뭐라고요?”

 “뇌종양을 말하는 겁니다.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으셔야겠어요.”

 “네?”

 “먼저 저희 병원부터 내원해보시죠.”

 “네? 어... 네. 네.”


 주로 ‘네’ 소리밖에 안 했던 것 같다. 의사는 빠르게 본론을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참 동안 얼이 빠져 있었다. 왜 갑자기 뇌종양이란 단어가 튀어나오는 거지? 여기 산부인과 병원 아니었어? 그보다 프로락틴? 그건 또 뭐야?


30분간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며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해당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미 의사는 퇴근한 상태였다. 연결 대기음만 계속 들을 수 있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었다. 두려우면서도 황당한 마음으로 나는 프로락틴이 대체 무엇이고, 뇌종양이 어떤 병인지를 인터넷을 통해 알아봤다. 한 해의 마지막 하루를 검색만 하며 보냈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연말이었다. 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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