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사 자회사, G사 소속이 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수습 딱지도 무사히 떼었고, 맡고 있던 프로젝트도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새로운 회사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건 처음 겪어보았다. 무리 없이 G사 생활에 녹아드는 생활이 편안했다.
‘회사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체념의 근거로 적극 활용했다. 오늘도 야근하라고? 응, 어쩔 수 없지. 다른 회사도 이럴 테니까. 나보고 그런 쓸데없는 심부름까지 하라고? 응. 뭐, 어쩔 수 없지. 다른 회사도 이럴 테니까. 도돌이표처럼 이 문답을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회사는 거기서 거기가 아니다. 나는 F사와 G사를 다니면서 자신과 맞는 회사라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래서인지 주변 지인에게 자꾸 자식 자랑하듯 G사의 장점을 설파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그만 좀 G사를 추천하라고 말했다. 그는 이 말도 덧붙였다.
“네가 무슨 G사 인사 담당자야? 아님 뭐, 대표야?!”
나도 모르게 ‘내가 좋으니 너도 좋을 거야.’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모양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난 후, G사에 대한 애정을 조금 자제하기로 했다. 그러나따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었다. 시간이 더 흐르니 저절로 애사심이 줄어든 까닭이었다.
G사에 입사한 지 5개월을 채워갈 무렵이었다. 급격한 일정과 내 역량 이상의 업무가 주어진 상황이 동시에 겹쳐졌다. 그건 스트레스를 끊임없이 유발했다. 나는 억누르고자 노력하며G사를 다녔으나 연속된 야근으로 인해 끝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나는 어느 늦은 오후, 내 사정을 잘 아는 ‘송’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자마자 대뜸 G사에 대한 불만부터 꺼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닌 것 같아요, 일정도 너무 촉박해요, 불필요한 업무 과정으로 인해 야근하는 것도 있어요 등 한참 G사에 단점을 쏟아내던 나는 홧김에 이런 말을 했다.
“아, 저 G사 때려치울 거예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송이 쿡쿡 웃었다. 단숨에 벙벙했다. 응? 지금 내가 얼마나 지금 심각한데? 그는 전혀 심각하게 내 상황을 보지 않았다. 예상대로 송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볍기가 그지없었다.
“G사 좋은 회사네. 축하해.”
“...뭐가요? 방금 제 말 못 들었어요?”
같이 회사 욕해달라고 투정을 부린 건데 이게 당최 무슨 반응인지 알 수 없었다. 송의 목소리에는 계속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너 어떤 회사에 들어가든 때려치운다고 말하는 거 알아? 대체로 입사한 지 한 달 안에 그 말이 나오던데.”
“아.”
그렇긴 했다. 긍정보다는 불만이 많은 성격이라 뭔 일만 터져도 습관처럼 퇴사할 거라며 동네방네 울부짖긴 했다.
“근데 G사에서는 거의 5개월 만에 그 말을 꺼내네? 이 정도면 오래 버텼다. 버텼어.”
“그런가....”
“그만두겠다는 말이 바로 안 나온 게 어디야. G사가 너한테 잘 맞긴 한가보다.”
역설적인 소리지만 곱씹을수록 공감이 갔다.불만 많은 내가 5개월 멀쩡히 G사를 다닌 것만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과 전화를 끊은 뒤 머리끝까지 오른 열은 식어갔다. 그리고,
‘역시 G사는 나와 딱 맞는 회사로군!’
푸시식 죽어가던 애사심에 재차 불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현재까지도 G사에 잘 다니고 있다.
일곱 번째 입사로 깨달은 건 이것이다. 내게 잘 맞는 회사란 입사한 지 5개월이 된 시점에 화가 나는 회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