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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Sep 06. 2022

30.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일곱 번째 회사 : 스타트업 G사 / 에필로그

 F사 자회사, G사 소속이 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수습 딱지도 무사히 떼었고, 맡고 있던 프로젝트도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새로운 회사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건 처음 겪어보았다. 무리 없이 G사 생활에 녹아드는 생활이 편안했다.


 ‘회사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체념의 근거로 적극 활용했다. 오늘도 야근하라고? 응, 어쩔 수 없지. 다른 회사도 이럴 테니까. 나보고 그런 쓸데없는 심부름까지 하라고? 응. 뭐, 어쩔 수 없지. 다른 회사도 이럴 테니까. 도돌이표처럼 이 문답을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회사는 거기서 거기가 아니다. 나는 F사와 G사를 다니면서 자신과 맞는 회사라는 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주변 지인에게 자꾸 자식 자랑하듯 G사의 장점을 설파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그만 좀 G사를 추천하라고 말했다. 그는 이 말도 덧붙였다.


 “네가 무슨 G사 인사 담당자야? 아님 뭐, 대표야?!


 나도 모르게 ‘내가 좋으니 너도 좋을 거야.’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모양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난 후, G사에 대한 애정을 조금 자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따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었다. 시간이 더 흐르니 저절로 애사심이 줄어든 까닭이었다.


 G사에 입사한 지 5개월을 채워갈 무렵이었다. 급격한 일정과 내 역량 이상의 업무가 주어진 상황이 동시에 겹쳐졌다. 그건 스트레스를 끊임없이 유발했다. 나는 억누르고자 노력하며 G사를 다녔으나 연속된 야근으로 인해 끝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나는 어느 늦은 오후, 내 사정을 잘 아는 ‘송’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자마자 대뜸 G사에 대한 불만부터 꺼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닌 것 같아요, 일정도 너무 촉박해요, 불필요한 업무 과정으로 인해 야근하는 것도 있어요 등 한참 G사에 단점을 쏟아내던 나는 홧김에 이런 말을 했다.


 “아, 저 G사 때려치울 거예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송이 쿡쿡 웃었다. 단숨에 벙벙했다. 응? 지금 내가 얼마나 지금 심각한데? 그는 전혀 심각하게 내 상황을 보지 않았다. 예상대로 송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볍기가 그지없었다.


 “G사 좋은 회사네. 축하해.”

 “...뭐가요? 방금 제 말 못 들었어요?”


 같이 회사 욕해달라고 투정을 부린 건데 이게 당최 무슨 반응인지 알 수 없었다. 송의 목소리에는 계속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너 어떤 회사에 들어가든 때려치운다고 말하는 거 알아? 대체로 입사한 지 한 달 안에 그 말이 나오던데.”

 “아.”


 그렇긴 했다. 긍정보다는 불만이 많은 성격이라 뭔 일만 터져도 습관처럼 퇴사할 거라며 동네방네 울부짖긴 했다.


 “근데 G사에서는 거의 5개월 만에 그 말을 꺼내네? 이 정도면 오래 버텼다. 버텼어.”

 “그런가....”

 “그만두겠다는 말이 바로 안 나온 게 어디야. G사가 너한테 잘 맞긴 한가보다.”


 역설적인 소리지만 곱씹을수록 공감이 갔다. 불만 많은 내가 5개월 멀쩡히 G사를 다닌 것만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과 전화를 끊은 뒤 머리끝까지 오른 열은 식어갔다. 그리고,


 ‘역시 G사는 나와 맞는 회사로군!’


 푸시식 죽어가던 애사심에 재차 불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현재까지도 G사에 잘 다니고 있다.


 일곱 번째 입사로 깨달은 건 이것이다. 내게 잘 맞는 회사란 입사한 지 5개월이 된 시점에 화가 나는 회사라는 것이다.




 G사에 대해서만 아니라, 요즘의 일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안온하다’고 할 수 있다.


 아, 운동만큼은 예외다. 헬스클럽 6개월 치를 끊었지만 도중에 환불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예로부터 유구하게 운동을 싫어했다. 그 길고도 일관된 역사를 극복할 만큼 동네 헬스클럽은 재미있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했다. 대신 자전거를 새로 샀다. 이것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요즘 종종 자전거를 바깥에 끌고 다닌다. 사실 운동이라기보다 동네 산책 혹은 맛집 투어에 좀 더 가깝기는 하다. 그래도 움직이는 것만으로 어디냐며, 화자찬하며 살고 있다.


 뇌하수체 종양은 나아지고 있다. 올해 여름, 대학병원 내분비내과를 갔다 왔는데 프로락틴 수치를 포함해 다른 수치들까지도 정상 범위 내에 속한다는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대학 교수님이 이대로 치료를 진행하면 괜찮을 거라 말했다. 요 근래 두통이 있어 걱정이 많던 차였는데 다행스러운 소식이었다. 나와 엄마는 진료실을 나가자마자 서로의 손을 맞대고 꺅꺅 소란을 피웠다. 우리 둘은 소녀처럼 기뻐했다.


 글은 계속 쓰고 있다. 다만, 슬럼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7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작품을 정해진 기간 내에 완결시키지 못한 것이다. 결국, 마감일을 내년 초로 연기했다. 슬럼프를 보다 잘 이겨내기 위해 요즘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첫 번째 시도로는 작업용 인스타그램 게정을 새로 만들었다.

작업 인증용 계정 캡처

이 계정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 나 혼자서 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꾸준히 타이머로 글 쓰는 시간을 측정하고, 인증 사진처럼 찍어 올리고 있다. 이게 은근히 도움이 된다. 타이머를 사용하다 보니 내가 몇 시에 가장 효율 좋게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퇴근 후보다 출근 전이 더 잘 써지는 유형이었다. 그래서 요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대체로 평일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타지를 치곤 한다.


 두 번째 시도로는 여러 종류의 글을 써보고 있다.

처음에는 계약작만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실제로도 그리 행동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과부하가 걸렸다. 매일매일 똑같은 작품만 붙잡고 있자니 머리가 잘 안 돌아갔다. 솔직히 말해 지겹기도 했다. 그래서 글쓰기 학원을 다녀보거나 공저자로서 단편집을 몇 권 내거나 하며 하나에만 너무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 에세이도 그 노력의 일종이다.

장편 소설만이 아니라 장편 에세이도 써보고 싶었다. 그러면 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나는 늘 지난 경험담을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싶어했다. 20대가 다 가기 전에 완성시키고 싶다는, 이상한 신조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컴퓨터 앞에 무작정 앉았다. 예전에 써두었던 내용을 가져와 정리하고, 비어져 있는 부분은 새로이 채우고, 조각이 듬성 난 부분은 이어 붙였다. 그렇게 1편부터 30편까지의 에세이를 구성했다.


초안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날, 나는 기쁜 마음을 주체 못 하고 이 사실을 두 사람에게 알렸다. 한 명은 엄마, 또 한 명은 내 절친한 친구였다. 나는 그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나 일곱 개 회사에 다녔던 경험담을 써보려고!” 이에 재밌겠다는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상상치도 못한 반응들이 나왔다.


 엄마는 이렇게 대꾸했다.


 “엄마는 네 글 좋아하지. 좋아하긴 하는데... 소재가 너무 평범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네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까? 그냥 여러 회사 다닌 이야기잖아.”


 한편 친구는 이렇게 대꾸했다.


 “이야. 그래, 잘 생각했어. 네 경험담이 미래에서는 역사서가 될 수 있다니까? 21세기 MZ세대는 이렇게 일을 했다. 뭐, 이런 느낌으로?”


 두 사람의 반응을 확인한 후 나는 에세이를 쓰는 걸 멈췄다.


 엄마의 말은 타당했다. 평범해도 너무 평범했다. 적어도 내가 어떤 성공을 이뤘더라면 이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의미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계약작인 소설을 출간한 후에 에세이를 다시 쓸까도 싶었다. 제목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6번의 퇴사와 7번의 입사>로 짓는 게 아니라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라고 짓는 것이다.


 어떤가? 후자의 경우가 훨씬 눈에 띄지 않는가? 막 이 글을 읽고 싶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 소설이 출간되더라도 성공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1%의 확률도, 아니 0.000001%확률도 없었다. 확신하건대 내 소설은 망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작품을 내도 쭉 망할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경험담을 영영 쓸 수 없다는 소리다. 나는 내 주제를 알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친구가 했던 말도 짚고 가자면 그의 말은 전혀 타당하지 않았다. 내 경험담이 역사서가 될 만큼 웅장하지도, MZ세대를 대표할만한 내용이 담겨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은 아슬아슬하게 ‘요즘 애들’에 속한 어떤 인간이 제 이야기를 멋대로 지껄일 뿐인 에세이다.


그러나 난 내 글의 형편없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한테 “아, 그렇지. 내건 역사가 되는 거지! 훗날 교과서에 실릴지도? 음하하!”라고 호탕하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 직후 나는 양손에 깍지를 끼고 어질거리는 머리를 한동안 짚었다.


 두 사람 덕분에 나는 타인의 시선과 내 시선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스스로의 경험담에 제삼자처럼 냉정한 점수를 매겨보기로 했다.


소재가 특별한가? : 1점. 흔하다.

교훈 혹은 정보가 들어있는가?: 0점. 아예 없다.

필력이 좋은가? : -1점. 슬프게도 나쁘다. 이딴 게 작가를 꿈꾼다고? 싶을지도.


총합 0점이다. 이 점수면 차라리 안 쓰는 게 백배 나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안만 대충 휘갈겼단 것이다. 이제라도 쓰는 걸 그만두면 시간 낭비를 더 하지 않게 된다. 고민을 오래 했다. 지극히 평범한 바람에 아무도 읽지 않는다면, 내가 써야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독자가 없는 글은 무의미하다고. 그러니 쓸 이유는 없다고. 그런 생각을 거듭 가졌다. 그럼에도 결국, 쓰기로 했다. (보다시피 이렇게 30편까지 쓰게 됐다.)


이 결정에는 그럴듯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난 쓰고 싶었다. 너무 단순한가?


그렇다고 해서 뭐 어떤가.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나는 6번의 퇴사와 7번의 입사를 통해서 깨닫지 않았는가. 뭐든 내 마음을 따라가면 될 일이다. 그래, 그뿐이다.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에필로그


 그간의 경험담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 많다.


나는 겸업이 불가한 사람인 걸 알았고, 누군가의 이해가 용기로 이어짐을 느꼈으며, 잊고 지냈던 꿈을 찾았고, 그 꿈은 불가했던 겸업을 가능케 함을 알았으며, 그렇지만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란 어렵다는 걸 인지했고, 나는 광고업과 잘 맞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고, 그럼에도 사랑했음을 문득 깨달았으며, 그리고 좋은 회사라고 선정하는 내 기준은 다소 특이하다는 걸 눈치챘다.


 다음에는 또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내가 어떤 걸 알게 될지 그로 인해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지, 기대가 된다. 그러면서도 일견 걱정이 든다. 부푼 기대만을 걸고 살아가기에는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도 언젠가 끝이 날 것이고 지금 다니고 있는 G사도 언젠가 퇴사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리고 그 후에 슬프고 화나고 안타까운 일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어쩌면 또 바보 같은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길을 가려했으나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 나는 그곳에서 한참 서성이며 방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상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 아니, 이 표현은 다소 밍밍하다.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질리다 못해 한없이 끔찍할 따름이다. 하지만 애써 괜찮다고 벌써부터 스스로를 위로해보려 한다. 바보같이 굴어도 괜찮다고, 방향을 놓쳐버려도 그 또한 괜찮다고.


나는 나의 20대를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어둠 속에 파묻힌 이정표를 찾아내고 잊고 있던 길을 떠올릴 것이다. 혹여 새로운 길은 없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그렇게 고집스럽게 나의 행복을 향해 걸음을 뗄 것이다. 굼뜨더라도 비틀거려도 계속해서 나아가리라.


언제 그 순간이 도래할지 모르겠으나 새까만 허공을 향하여 섣부른 자신을 가져본다. 난 다시 준비가 됐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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