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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Sep 05. 2022

29. 뜻밖의 여섯 번째 퇴사, 그래도 괜찮다

여섯 번째 회사 : 브랜드사 F사

 예전부터 F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다. 속한 산업군도 그러하고, 채용 홈페이지에 명시된 회사에 관한 내용도 어쩐지 나와 잘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원했고 입사했다.


 E사를 퇴사하고 직접 F사에 다녀보니 깨달았다. F사는 내 기대 이상으로 훨씬 좋은 회사라는 걸. 때문에 새로 들어간 회사는 어떠냐는 주변인의 질문에 나는 다소 재미없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F사 어때?”

 “음, 좋아.”

 “뭐가?”

 “다.”

 “응?”

 “그냥 다 좋아.”


 사내 문화, 근무 환경, 담당한 업무 내용 등 딱히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없었다. 당연히, F사에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순간이 있었고, 야근을 종종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종종’이었다. 내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 속했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만족하며 F사에 다녔다.


 저녁 있는 삶으로 돌아가니 나는 안 하던 운동을 새로 하기 시작했다. 동네 헬스클럽에 6개월 치를 한꺼번에 끊었다. 창대한 시작이었지만 그 과정은 미약했다. 나는 아주 간단한 운동 과정도 제대로 못 따라갔다. 아주 가벼운 기구 또한 못 들었다. 헬스클럽에 온 지 고작 20분 만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트레이너님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몸이 아픈 거예요? 어디 오래 입원했어요?”


 영 힘을 못 쓰니 이게 정상인의 체력일 리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프긴요. 그냥 제가 체력 거지랍니다.


 운동만 시작하지 않았다. 계약한 작품이자 그간 미루고 있던 소설의 집필도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다.
E사에 있는 동안 전혀 쓰지 않았다 보니 감 잡기가 어려웠다. 예전만큼 글 쓰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은 1,000자만 썼고, 어느 날엔 1,000자는커녕 100자도 못 썼으며, 또 어느 날은 홀린 듯 여러 편을 한꺼번에 몰아 쓰다가 문득 마음에 안 들어 전부 지워버리곤 했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초짜 작가인 주제에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그럼에도 매일 퇴근 후에 컴퓨터 앞에 앉았고 타자를 쳤다. 언젠가는 다시 신나게 타자를 치는 순간이 오리라 믿으며 꾸준히 글을 써내려갔다.


 무탈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F사에서 대대적인 개편이 일어났다. 다음 달부터 내가 소속되어 있는 사업부문을 F사에서 분리하여 하나의 회사로 독립시킨다는 개편이었다. 다시 말해 내 소속이 F사가 아닌, F사의 자회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기업 분사(*한 기업을 두 개의 기업 이상으로 분할)건은 입사 전 숙지하고 있던 사항이었다. 엠바고(*기사의 보도 시점 제한)가 걸려있던 건이라 2차 면접 때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엔젤님이 3차 최종 면접을 보기 전에 미리 해당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게 물어보았다.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데도 계속 채용 전형에 임하겠느냐고. 당시 나는 괜찮다고 즉답했다.


그러나 이렇게나 빨리 분사할 줄은 몰랐다. 입사 첫 날에 받은 F사 축하 키트는 아직 다 쓰지도 못한 상태였다. F사 명함 또한 다 못 쓴 상태였다! 아까워 죽겠다. 독립회사가 될 내 소속 부서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분사함에 따라 사무실을 이전할지 말지에 대한 논의부터 앞으로 어떤 것들이 변하게 되는지에 대한 공지까지 폭넓게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엄마는 펄쩍 뛰었다.


 “아니, 벌써 분사라니? 그럼 다음 달부터 F사가 아니게 된 거야?”

 “그러게 말이에요. 벌써 아니게 됐어요.”


 축하 키트 구성품 중 하나인 후드 집업을 만지작거리며 서글프게 답했다. 나는 F사 로고가 박힌 이 옷을 참 마음에 들어 했다. 도톰하고 때도 잘 안 타고 사이즈도 딱 적당하고. 심지어 살갗에 닿는 안쪽 면도 좋았다. 무척 부드러웠다.


 “이 옷은 어쩌죠? 집에서라도 자주 입어야겠지?”


 내가 실없는 고민을 늘어놓는 동안 엄마는 해결 방안을 진지하게 찾으려 들었다.


 “F사에 새로 입사 지원하는 건 어때?”

 “뭐?”


 황당무계한 소리에 나는 즉각 응수했다. “지금 나 F사 직원인데?!” 그러자 엄마는 “분사 이후 F사 직원이 아니게 될 때 다시 지원하면 되지.”라는 더 황당한 대안을 들고 나왔다.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데요.”

 “뭐가? 너 지금은 F사 직원이잖아. 한번 합격했는데, 두 번 합격하는 게 왜 안 되겠어?”


 거듭 말하지만, 엄마는 진지했다.


 “차라리 부서 이동 신청하는 게 더 현실성 있겠다.”

 “뭐? 너희 회사, 부서 이동 가능해?”


 아차차. 농처럼 꺼낸 이야기였는데 엄마가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정말 가능해?” 재차 묻는 말에 곰곰이 생각했다. 가능하냐고? 음, 가능하기는 했다. 얼마 전 공고가 내려온 회사 규칙에 적혀 있으니까. [F사 직원은 다른 부서로 이동을 희망할 시, 인사 담당자님에게 신청서를 제출하면 됩니다.]라고. 그리고 해당 규칙에는 예외 조항이 있었다. [단, F사 자회사 직원은 신청 불가함.]


 내가 이 상세한 이야기를 전하자 엄마는 더욱 조급해했다.


 “그럼 분사하기 전에 얼른 신청해야겠네!”


 나는 웃으며 넘겼다. 어째 다 말이 안 되는 대안뿐이었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직원이 부서 이동을 할 수 있을 리도 만무했고, 분사 건을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 이제 와 F사 자회사로 들어가기 싫다고 고집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F사 본사에 남고 싶은 생각이 크게 없었다.


나는 내가 소속된 사업 분야가 좋았고, 같은 부서 사람들이 좋았고, 지금 하는 업무를 계속하고 싶었다. 엄마의 눈에는 내가 좀 답답해 보일 수는 있겠다. F사에 있다가 갑자기 규모가 확 줄어든 소기업에 들어가게 됐는데도 태평하게 있으니 말이다.


 다음 달, 근로복지공단에서 문자가 날라 왔다. F사 고용보험 상실이 되었음을 알리는 문자였다. 그제야 내가 더는 F사 소속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타의로 여섯 번째 퇴사를 하게 됐다.


 F사 근무 기간이 너무 짧은 바람에 여섯 번째 퇴사의 소감을 말하기가 뭣하지만, 그래도 퇴사는 퇴사이니 말해보려고 한다. 이번 기회로 나는 기업 규모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불안감을 갖지 않은 상태로 여섯 번째 퇴사와 일곱 번째 입사를 기껍게 맞이했다.



브랜드사 F사 정규직 후기

 줄 평 : “짧지만 굵은 경험.”


-주변 식당 ***** (내 취향의 식당이 많다.)

-시설 **** (좋다.)

-복지 ***** (최고다. 감격스럽다.)

-장비 ***** (좋다. 새 타블렛까지 받았다.)

-사내 분위기 ***** (화기애애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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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의 퇴사와 7번의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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