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욱곤 May 03. 2023

손편지의 감성을 찾습니다.

그런데 편지지는 어디서 구하나요? ㅎㅎㅎ

(이미지출처:네이버) 무슨 이야기로 시작할까요?



손 편지를 즐겨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연필로, 볼펜으로, 때로는 만년필로 정성스레 써 내려가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별일이 있으면 있다고, 별일이 없으면 그냥 보고 싶다는 시시한 내용으로 기어이 핑계를 대서라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글을 썼습니다. 어떨 때는 편지지가 없어 내 옆에 노트 한 장 뜯어 쓰기도 하고 병원의 책상 서랍에 편지지와 봉투가 떨어졌나 살피는 일이 하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아트박스(Art Box)나 바른손(Barunson)이 경쟁하며 문구를 내놓던 시절, 가게를 그냥 지나친다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서랍에는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문구류는 하나도 없었고 더 나아가 멋없이 흰 봉투에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우편번호 칸만 덩그러니 쓰인 봉투만 천덕꾸러기 취급받았습니다. 그냥 회신용으로 친절하게 반송 우표를 붙인 봉투가 오거나 서류를 보내는 목적 이외에는 흰 봉투 쓸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습니다. 이렇듯 편지 쓰는 일은 나에게 재미요 취미요 소일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라는 게 때로는 묘한 감정을 일으키는 힘이 있어서 그냥 보내는 거만 즐기는 것이 아니요, 은근히 답장을 기다리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성향이라면 모를까, 전혀 다른 사람에게 오랜 시간 답장을 기다리는 일은 추운 겨울, 대책도 없이 싹트기를 기다리는 일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어느 시점인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제 내 주변에는 필기구를 제외한 편지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며 봉투 또한 내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우표도 240원 정도에서 기억이 멈춰져 있고 우체통마저도 어디에 있는지, 아니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나에게는 오로지 e-mail과 핸드폰만 남아있사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감성 물건이라 믿었던 편지 때문에, 오히려 내 지인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합니다. 나는 답장이 없기에, 상대방은 쓰기 싫은 답장이 부담스러워 그렇게 얇디얇은 우리 사이가 솜사탕처럼 편지 하나에 녹아 없어졌을 수도 있겠습니다. 


    


뜨겁다는 요즘 메신저들이 우리의 감성을 온전히 전달해 줄 수 있을지 가끔은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만 확실한 건 간단하게 단답형으로 끝나는 메신저 대화로는 우리 시절의 현학적이기까지 한 감성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아마 이마저도 세대가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시대의 유물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 때는 그랬었지! 회고하는 순간 내가 사랑하던 손 편지의 기억은 아예 박물관에 박제될 유산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내면에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따스한 감성들은 그대로 그대로 물 흐르듯 내 아이, 내 자손에게 변함없이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부디 우리의 감성들이 두터워져서 마르거나 없어지지 않는 마음속 유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전 09화 나의 생활습관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