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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Feb 02. 2023

한국의 과학기술 거버넌스 (6)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정착: 박근혜 정부

* 시리즈 이전 글

1편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개념

2편 발전국가적 R&D 체계의 제도화: 박정희 정부 ~ 김영삼 정부

3편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태동: 김대중 정부

4편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형성: 노무현 정부

5편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재편: 이명박 정부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연장선에 있었다. 두 대통령이 같은 정당 출신이기도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주류화된 신보수주의와 신우파(New Right) 이념을 지향한다는 공통점도 있었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10년 집권기에 보수의 가치를 재구성하는 뉴라이트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등장하는 데 유리한 이념적 지형을 형성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내외적 환경은 이명박 정부와 차이도 많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이 장기화했고, 누적된 빈부격차와 실업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었다. 이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보수색을 누그러뜨리며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중도화 전략에 힘입어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야권 단일후보를 상대로 약 3.5%p 차이로 신승할 수 있었다. 5년 전 이명박 후보가 보수정책을 앞세워 압승한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creative economy)’를 국정비전으로 내세웠다. 원래 이 개념은 영국의 존 호킨스(John Howkins)가 제안해 유명해졌다. 경제시스템 운영에 있어서 토지, 노동, 자본 등 전통적 자원보다 풍부한 상상력에 기초한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Howkins, 2001). 이것이 2012년 우리나라에서는 저성장 위기를 지식·기술의 사업화와 창업 확대를 통해 돌파한다는 취지로 변형되었다. 자본주의적 성장이 과거처럼 대규모 고용을 유발하기 힘든 시대가 되면서, 일자리 문제의 해결은 창업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과학기술은 창조경제의 핵심 분야로서 박근혜 정부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창업에 직접적 효과를 미칠 지식재산과 기술사업화가 각광받았다. 이명박 정부도 이 분야에 많은 자원을 투입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 수준을 넘어 국가발전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기초연구와 녹색성장 등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후퇴했다. 박근혜 정부는 새로운 지식 발견이나 기술 개발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지식과 기술을 창업 효과로 확산시키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이에 다시 한번 과학기술 담당 부처와 조직의 개편이 화두에 올랐고, 창업을 촉진할 정책과 제도들이 모색되었다. 이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정립된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안정적 틀을 통해 가능했다.



    

조직: 과학기술-ICT 거대 부처의 탄생

     

박근혜 정부도 출범을 앞두고 이전 정부들이 그랬듯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 작업의 핵심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전담 부처의 신설이었다. 두 가지 고민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부-과학기술부 통합,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축소, 과학기술혁신본부 폐지 등으로 임기 내내 과학기술 홀대론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새 정부의 창조경제 비전을 이끌 선도 부처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기초연구, 응용·개발, 기술이전, 창업, 인큐베이팅 등의 총괄 지휘 기능이 갖춰져야 했다. 여기에 방송통신위원회가 담당하던 IT 정책을 규제 중심에서 신산업 정책으로 전환하여 병합하고자 하였다(천세봉, 2017).

    

이로써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하였다. 그 미션은 과학기술과 ICT를 창조경제의 원천으로 삼아 일자리와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것이었다. 특히 창의적 상상력 기반의 창조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에 따라 과학기술과 ICT를 포괄하는 복수차관을 두도록 하였다(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2013). 복수차관 체제는 이명박 정부의 대부처주의에서 이미 운영되었기에 큰 무리 없이 재도입될 수 있었다.

     

조직 기능 관점에서 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기존 교육과학기술부(과학기술), 산업자원부(ICT), 국가과학기술위원회(예산 조정·배분)에 우정사업본부 업무까지 이관받았다. 1967년 과학기술처 이래 가장 규모가 큰 과학기술 공룡부처가 탄생한 셈이었다. 본래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담당 부처를 따로 두기로 구상했지만, 정책집행의 임계 규모 확보를 위해 통합으로 선회하였다(김성수, 2013). 물론 야당은 이러한 공룡부처 계획에 반대했다. 그러나 정부 임기 시작 직전에 합의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여러 부처 중 미래창조과학부를 유일하게 거론하고, 현판 제막식에도 참석하는 등 강한 기대감을 표했다.

[표] 미래창조과학부 업무 구성(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2013)에서 재구성)
[그림] 과학기술 및 ICT 전담 부처 변화(김성수, 2013)


미래창조과학부 출범으로 기존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폐지되었다. 그리고 비상임 대체기구로서 국가과학기술심의회가 국무총리실 산하에 신설되었다. 이로써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컨트롤타워로서 상징성과 실질적 역할을 모두 잃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 주요 기능은 R&D 정책 및 예산을 종합조정하는 것이었다. 소속 변경(대통령->국무총리)으로 조정 기능에 대한 회의적 의견도 있었으나, 심의 프로세스 자체는 이명박 정부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산하 전문위원회도 이명박 정부와 거의 유사하게 운영되었다. 다만 민간위원을 15명에서 20명으로 기존보다 크게 늘렸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공룡부처이자 실세부처였다. 과학기술 거버넌스를 좌우하는 거의 모든 기능이 이곳으로 집중되었다. 일례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간사와 운영위원장을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맡았으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 장·차관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2014년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통합하면서 25개 정부출연연구소들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편입되었다. 그 결과 미래창조과학부는 업무 영역(기초연구, 응용·개발, ICT, 지식재산 등)뿐만 아니라 기능적 범위(범부처 조정 기구, 산하 R&D 기관 등)에도 광범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휘했다.



     

정책: 과학기술 기반 저성장 극복 전략 제시

     

박근혜 정부의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13~2018)은 과학기술과 사회·경제 문제를 결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계획은 High 5·19개 분야·78개 과제를 배치하여 신성장동력 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두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2차 계획과 유사했다. 그러나 정책의 강조점을 일부 다르게 찍기도 하였다. R&D 역량 강화에만 집중하지 않고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일례로 2차 계획에는 기술사업화와 창업이 부분적으로 포함되었으나, 3차 계획에는 2개의 독립 추진과제(신산업 창출 지원, 일자리 창출)로 전면화되었다. 그리고 2차 계획의 성과목표는 ‘7대 과학기술강국 실현’으로 다소 추상적이었던 반면, 3차 계획에는 ‘일자리 64만 개 창출’ 목표를 구체적 수치로 확정하였다.

[그림]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의 비전 및 추진전략(기획재정부 외, 2013)


3차 과학기술계획을 보완할 후속 계획들도 입안되었다. 우선 2013년 ‘벤처·창업 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 ‘창조경제 실현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나서서 엔젤 투자와 M&A 활성화를 자극하고자 했다. 더불어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했다. 이에 정부 투자 확대부터 기술이전 활성화, 벤처·중소기업 지원, 산업육성, 교육, 국내외 협력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청사진을 제시하였다(관계부처 합동, 2013).

     

2015년에는 ‘바이오헬스 미래 신산업 육성전략’을 발표하여 제약·바이오 분야 투자 계획을 밝혔다. 제약·바이오는 R&D의 성과가 비교적 빠르게 사업화로 이어지고 고용유발 효과가 큰 분야다. 박근혜 정부는 이 분야에 집중해 시장지배자가 없는 태동기 산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임상연구 건수 세계 2위의 줄기세포 치료제와 선진국 대비 기술격차가 3.8년에 불과한 유전자 치료제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2015년 한 해에만 3,400억 원의 예산 지원이 이루어졌다(미래창조과학부 외, 2015).

     

이렇듯 창조경제는 R&D를 넘어 산업정책과 사회정책도 포괄하는 정책 패키지로서 기능했다. 박근혜 정부는 종래의 기술 위주 R&D 계획이 산업 연계성이 분명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 기술과 산업 간 연결고리를 산업의 관점에서 강화하는 것이 정책의 주안점이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에서는 기술개발에서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관계부처들이 이행과제를 공동으로 발굴·달성하도록 장려했다.



      

제도: 창조경제를 지원할 민관 협력체계 마련

     

R&D 제도들도 창조경제의 지향과 철학에 따라 정비되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 제기된 “민간이 주역이 되어야 할 창조경제를 관료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상당히 의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창조경제민관협의회’를 설치하여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교육부 등 8개 부처 장관과 주요 경제단체장이 함께 운영하도록 하였다. 민관의 의사결정을 거버넌스화함으로써 그 효과를 정부와 시장에서 동시에 일으키겠다는 의도였다.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운영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각 지역에서 창업과 중소기업 혁신, 지역 특화산업 육성, 청년 일자리 매칭 등을 지원했다. 특히 지역별로 강점이 있는 전략산업에 부합하는 창업 클러스터 형성에 중점을 두었다. 센터 조직을 거점으로 중앙정부, 지자체, 대기업이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멘토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그림]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현황


정부출연연구소들의 역할과 사업도 창조경제를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2013년의 ‘창조경제 실현계획’과 이듬해 수립된 ‘정부출연연의 중소·중견기업 R&D 전진기지화 방안’이 그 가이드라인이었다. 이 계획들은 정부출연연구소의 역량에 비해 중소·중견기업 지원 기능은 부족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정부출연연구소가 단순한 기업 애로사항 해결을 넘어, 시장정보 제공, 기술수요 발굴, 기반기술의 개발·이전 등을 지원하도록 했다(미래창조과학부 외, 2014). 이때부터 정부출연연구소 특허를 기업에 무상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각 연구소에는 기술이전 전담조직(Technology Licensing Office) 설치가 유행처럼 번졌다. 특히 25개 정부출연연구소의 통합 법인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출범하면서 공동·협력사업 규모도 커졌다. 대표적인 예가 공동 TLO 운영 사업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산하 연구소의 기술이전·사업화를 통합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공동 TLO를 별도 조직으로 구성하였다. 공동 TLO는 기업에 필요한 기술을 선별하여 소개하고, 기술가치평가와 실시계약 협상 등을 지원하며, 기술개발 참여를 원하는 기업에게 관련 정부출연연구소를 연계해준다. 이로써 기술이전 및 사업화에 있어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유발하고자 하였다.



     

박근혜 정부의 과학기술 거버넌스는 창조경제가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창조경제도 결국 과학기술을 사회문제 해결과 결합하겠다는 정책적 시도였다. 이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지식기반경제,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중심사회,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등과 궤를 같이했다. 이러한 성장론들은 모두 과학기술 지식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단지 시대 흐름에 따라 강조점과 키워드가 다를 뿐이다. 정책의 기본 발상뿐만 아니라 수립 과정도 서로 비슷하다. 예컨대 대통령이 화두를 던지면, 관료들이 논리 체계와 위원회를 만들고, 민간위원들이 모여 기술적 지식을 조합해 완성도를 높이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부가 만든 비전은 폐기 수준에 이르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진다. 예컨대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가 몇십 년을 내다보는 국가비전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불과 5년 뒤인 박근혜 정부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정책, 기구, 법령 등이 새로운 비전인 창조경제를 중심으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녹색성장을 뒷받침했던 녹색성장위원회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도 폐지 수순을 밟았다. 그러면 창조경제는 달랐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후임인 문재인 정부에서 창조경제는 ‘지우기’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철저하게 존재감이 사라졌다.

     

이는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지향과 실제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즉 눈에 보이는 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민간 참여는 늘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운영 원리는 top-down 방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과학기술 거버넌스를 태동시킨 이후 박근혜 정부에 오면 그 운영이 상당히 안정화되었음이 확인된다. 이제 과학기술만큼은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으로 운영하는 국가적 과업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화가 어떤 면에서는 과학기술에 부정적이었다. 요란한 비전과 구호를 내세워 정부와 민간이 함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정치적 성격이 진한 기획사업에 민간이 전문가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결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연구개발 현장의 수요를 bottom-up으로 직접 반영하는 정책과 사업은 전면화되기 어려운 구조다. 비유컨대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하드웨어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고도화되었지만, 소프트웨어는 발전국가 시대에 설치한 버전의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 참고 문헌

관계부처 합동(2013), 『창조경제 실현계획』

기획재정부 외(2013),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13~2017)』

김성수(2013),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 행정체제의 진화와 역행”, 《한국사회와 행정연구》 제24권 2호, 서울행정학회.

미래창조과학부 외(2014), 『정부출연(연)의 중소·중견기업 R&D 전진기지화 방안』

미래창조과학부 외(2015), 『바이오헬스 미래 신산업 육성 전략』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2013), 『정부 조직 개편(안)』

천세봉(2017), “과학기술정책 거버넌스 분석: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한국거버넌스학회보》 제24권 3호, 한국거버넌스학회.

Howkins, J.(2001), 『The Creative Economy: How People Make Money from Ideas』, Penguin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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