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낙하산에게 어울리는
효제에 자리한 저승 한편에 마음을 심어 두고 현실세계로 각자의 명을 받아 가야 할 때가 왔다.
첫 발령인 신입에게 좋은 곳, 안 좋은 곳 있을 리 없었다. 서울 행정구역을 벗어나자마자 처음 만나는 곳, 부유한 신도시 발령이었다. 팀장님들 조사관님들께서 오고 가며 축하 인사를 건네주시는데 그 짧은 찰나에도 이곳이 내 짬에 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느꼈다.
아주 푹 자고(언제 어느 때고 잠을 자는 데는 문제없다) 출근한 첫날. 서장님께 발령인사드리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지원팀장님을 따라 각 과에 인사드리고 자리에 앉았다.
입구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제일 구석자리, 누가 앉았나 말았나 보일세라 성벽을 세운 파티션,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큰 책상, 언제든 잠이 든다 해도 누구도 왜 거기서 잠을 자느냐고 반문하기 무색할 중후한 의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나이, 이 경력에 올 수 없는 자리. 나는 환영받기 힘든 자였다.
말하자면 갑자기 어디선가 영문도 모른 채 떨어진 낙하산, 스스로가 낙하할 지점조차 알지 못하고 어쩌다 떨어졌는지 어리둥절 주위만 둘러보는 아주 어린 낙하산.
그 과에서 제일 어렸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 우선 머리를 아주 우아하게(해달라고 디자이너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볶았다. 누가 보더라도 20대 패션감각으로는 차마 살 수 없는 정장을 샀다(약 십오 년이 지난 지금도 입을 수 없는 옷. 오십 대가 되면 다시 입을 계획).
이 서는 직원들 선호도가 높아 지원자 중에서도 엄선된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나이 어린 과장을 마음으로 존중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셨고 환대해 주셨다. 존경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었다.
성벽에 둘러싸인 가시방석에 앉아 어렵게 지원해서 온 직원들과 과, 서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매사 조심하느라 얼굴을 빼꼼 내미는 것도 마음 쓰였다. 아침에 출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화장을 지우지도 못하고(선크림은 지워야 하는데) 자는 일이 많아졌다.
사실상 첫 사회생활이니, 모든 것이 처음이기도 했다. 세무서 과장은 여유롭다고들 했지만 신생 낙하산에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서장님이 지시하신 일을 어떻게 과원분들께 전달해야 할지. 서장님이 지시하신 일이 지시대로 되지 않은 결과물을 보고 받았을 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대체로 모든 일에서 직원분들이 더 잘 알았고, 더 익숙했으며, 따라서 더 잘했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이 아는 사람을 지휘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한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과장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