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가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세월호 트라우마를 조금 더 알아보려고 <나는 세월호 잠수사다>, <홀> 등 2권을 읽었다. <나는 세월호 잠수사다>는 2019년 12월에 출간됐고 2021년 10월에 개정판이 나왔다. <홀>은 2021년 4월 16일에 초판이 나왔고 어제 도착한 책 역시 초판 1쇄이다. 앞서 읽은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고잔동 일기> 모두 세월호 트라우마를 조금씩 다룬 책인데, 이번에 읽은 책 2권은 온전히 세월호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고 있다. 앞의 책은 민간잠수사들의 이야기이며, 뒤의 책은 화물기사의 이야기다.
먼저 민간잠수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배 안으로 가장 먼저 뛰어든 잠수사는 민간잠수사들이다. 해경, 해군 소속 잠수사가 아니다. 세월호는 수면 40미터 아래로 침몰했고, 참사 해역 이름은 맹골수도孟骨水道이다. 해경, 해군 소속 잠수사는 뛰어들 수 없는 바다였다. 경험이 많고 장비를 갖춘 민간잠수사들은 알아서 진도로 향했고 알아서 잠수를 했다. 사람을 살리러 항구로 갔지만 국가기관은 그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간은 버려졌고, 주검을 수습이라도 하기 위해 민간잠수사들은 다시 잠수를 했다.
2014년 7월 10일, 민간잠수사들은 현장을 떠나야만했다. 목숨을 거는 활동 기간 중 292명의 희생자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 보냈지만, 해경은 그들에게 퇴거 통보를 했다. 해양경찰청장은 "민간잠수사들에게 산업재해에 준하는 치료와 보상을 약속"했지만 시늉만 하고 곧장 중단했다. 해양수산부장관은 민간잠수사에게 의형제를 맺자고 말했지만 검찰은 최선임자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민간잠수사 하루 일당은 100만원이고, 시신 한 구당 500만원을 받는다'고 없는 말을 공중에 떠벌렸다.
다음으로 화물기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동수씨는 제주와 육지를 오며가며 일하는 화물기사였고, 참사 하루 전날 세월호에 화물차를 실었다. 그가 "사람들과 소방호스로 승객들을 구출"하고 있었을 때, 선내 스피커에서는 "나가지 말고 기다리라"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더이상 구조가 어려운 상황이 됐고, "객실에 있던 단원고 학생들은 구출될 것을 믿으며" 배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승객을 버리고 탈출했고, 해경123정은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고 선원들만 태우고 멀어졌다."
화물기사 김동수씨 딸은 이야기했다. "아빠는 세월호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도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늘 괴로워했다. 수많은 언론사와 세월호에 대해 인터뷰를 했지만 대부분 언론은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 아빠는 점점 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죄책감과 분노. 이것이 아빠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트라우마는 계속됐지만 국가기구는 방치했다. 병원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가 해경이나 해군도 아니면서, 공무원도 아니면서 사람들을 구출했다는 게 원인이었다.
2014년 4월 16일에 국가는 없었다. 공무를 담당하는 사람도 없었다. 선원들도 해경도 퇴선을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 줄을 몰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눈치만 보고 책임지려하지 않았다. 그들이 VIP라고 칭하는 자에게 보낼 영상만 찍어댔다. 상황이 안타까워 뭐라도 해보겠다고 뛰어든 민간인들을 이용만 해먹고 버렸다. 참사 후 여러 후유증과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생존자들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그 흔한 고맙다는 말도 애썼다는 말도 법이 허락하는 선에서만 했다.
2022년에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재난, 사회적 참사를 이야기하고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는 건 무슨 의미일까. 참사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참사 몇 주기를 말하고 그즈음 잠시나마 숙연해지는 것 말고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국 피해자들만 남고 피해자들만 싸워야하는 현실에서 계속되는 사회적 재난들을 마주해야하는 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 참사가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예전 피해자들처럼 분노하고 예전 피해자들처럼 고통받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