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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n 05. 2024

"공부 좀 해" 잔소리 안 하겠다는 아빠의 다짐

"부모의 기대와 불안, 잔소리가 좋은 영향을 줄리 만무합니다"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짐한 게 있습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하지 말자!'입니다. 저희 남매 역시 자랄 때 부모님께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 없었기에 비슷한 교육 방식을 고수하고픈 마음도 있었습니다. (저보다는 누나가 알아서 참 잘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전, 1월 중순에서야 시작한 수학 선행 때문에 괴로워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공부해'라는 말을 최대한 아끼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본인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없는 잔소리로 치부될 게 분명할 테니까요. <관련 글: 수학 선행 안 시켜서 망했다던 고딩 딸의 반전 매력>


딸아이는 중학교 때 설렁설렁 공부했습니다. 시험 전날에 온종일 태권도 단증 심사에 참가해 부모 마음을 초조하게 한 이력도 있습니다. 심지어 시험 전날 남친이 생기기도 했고요. 아무튼 공부를 좋아하지도 어려움을 느끼지도 않고, 적당히 공부하며 적당한 결과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수준이 다르다는 거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3모(3월 모의기사)를 봅니다. 중학교 때 실력으로 보는 시험이라 어느 정도 수준인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시험을 본 딸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역사 1등급 나머지는 폭망."


삼모를 보면 많은 학생이 충격을 받아 각성하고 중간고사 대비를 한다고 합니다. 며칠 뒤 성적표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닌데 딸아이는 당당했습니다. 포인트는 하나. 자기보다 국어 잘 본 3명을 반드시 잡겠다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성적이네."

"ㅋㅋㅋ 그건 아니지만 가능성은 보이는 정도라고 생각해요? 국어는 앞에 3명 잡을게요."


본인의 기대보다 좋은 성적이었을까요. 뭔가를 깨달은 듯한 씩씩한 말투였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라는 스트레스를 더이상 얹 않았습니다.


주말에 놀면 '노는구나', 자면 '자는구나', 스마트폰 붙잡고 누워 있으면 '인스타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수학이 부족하면 공부를 많이 많이 해야 할 거 아냐?'라는 말이 입 밖으로 새 나올까 봐 매일 꼭꼭 씹어 삼켰습니다. 


딸아이가 쇼핑을 가자면 함께 갔고, 영화를 보자면 함께 봤습니다. 고등학교 첫 시험을 망치면 뭔가 깨닫는 게 있겠지 싶었어요. 딸아이에게 해줄 말도 미리 생각해 두었습니다.


(가상의 대화)

"이번에 열심히 했어?"

"아니요."

"그러니까 시험을 못 . 학창 시절에 한번쯤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가상의 시나리오도 생각해 두고, 중요한 시기이니 만큼 조금은 따끔하게 조언을 해줄 참이었죠. 중간고사 기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 달 전부터 공부 시작해야지라던 딸. 대체 언제 시작할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죠.


시험일이 촉박해지자 주말에 하루 정도는 공부를 하더라고요. 학교 끝나고 스카도 가고. 딸아이는 중학교 때부터 '국영수는 며칠 더 한다고 실력 안 늘어요'라며 거의 손을 놓았습니다. 학원에서 시키는 국영수 외에 남은 건 역사 한 과목뿐. '그럼 역사만 공부한다는 건가?'


아무튼 학원에서 시키는 공부도 하고 스카도 가면서 본격적인 수험생활에 돌입한 듯 보였습니다. 어느 날은 스카에서 새벽까지 공부하고, 다른 날은  길이 무섭다며 일찍 귀가하고. 주말 밤에는 스카에 사람이 많다고 낮에 가기도 하고. 뭔가 어설퍼 보였지만 나름 고딩 생활에 젖어가며 자신만의 패턴을 찾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딸아이가 공부하다 늦게 오면 안쓰럽고, 놀러 나가 늦게 오거나 주말에 늘어지면 마음이 불안 초조하고. 부모 마음이 오락가락 참 간사해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딸아이는 중학생 때부터 시험을 보면 항상 점수를 찍어 톡으로 보내줬습니다. 고등학생 시험에서는 기대도 안 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의 습관 때문이었을까요.


첫날 영어시험 점수를 알리는 카톡왔습니다. 


"중학교 때 점수랑 비슷하면 잘한 거지. 잘했네!"


영어는 고등학교 입학 전 치른 모의시험을 망쳐서 많이 의기소침했는데, 나름 잘 극복한 결과였습니다.


다음날은 수학. 시험 보기 전에 카톡이 왔더라고요.


"수학은 포기할게요."


시험 후에도 본인 입으로 점수를 말하지 않은 건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니까요. 수학은 학원에서 본 첫 모의 중간고사에서 43점을 받았는데, 실전 중간고사에서 두 배에서 조금 빠지는 점수까지 끌어올렸으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말을 끼고 국어와 역사 시험이 남았습니다. 국어 공부는 필요 없다는 딸. 일요일에 남자 친구한테 차인 역경을 극복하고 이틀 동안  두 과목 모두 잘 치러냈습니다. <관련 글: 고1 딸이 남친에게 차인 다음날 중간고사를 보았습니다>


"국어랑 역사 너무 쉬웠어요."

"반어법이니?"


국어는 자기보다 앞선 3명 잡는다는 다짐을 실천했고, 외울 게 많아 지겹다던 역사도 잘 봤습니다. 예상보 좋은 결과였습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한 덕은 아니겠지만, 내심 '잔소리 안 하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아이가 자기 패턴을 찾아가며 알아서 하고 있었는데, 괜한 조바심에 의심했던 거죠. 


(사연) "부모의 조언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반발이 심해 쉽게 조언을 하기가 힘듭니다. 부모의 조언에 반발이 심한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의견을 절충할 수 있을까요?"


(답변) "아이가 원한 조언이었나요? 아이가 원하지 않았는데 내가 조언이라고 하는 건, 결국 잔소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즐겨보는 입시 솔루션을 다루는 유명 유튜브 채널에 한 부모님이 보낸 사연과 입시 전문가의 답변입니다. 원하지 않는 조언,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잔소리일 뿐이라는 걸 당사자만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래도 괜찮습니다. 학생을 향한 잔소리는 결국 부모의 욕심과 기대, 불안의 표출 아닐까요. 경험해 봐서 알지만 학창 시절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부정적인 잔소리는 저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딸내미가 기말고사를 한 달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제 방에 찾아와 말하더군요.


"아빠 학교를 꼭 다녀야 할까요?"

"왜? 검정고시 고 싶어?"

"아뇨, 그냥 학교 가는 데 너무 소모적인 거 같아서요."


이럴 때 부모는 멘탈이 휘청이면서 잔소리를 쏟아내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그냥 한번 내지르고 본인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다 대고 '학교를 왜 안 다녀. 어쩌려고! 정신 차려! 아이고 큰일 났네' 해버리면 진짜 큰일이 시작됩니다. 


"이번 중간고사가 고등학생 인생에서 제일 잘 본시험이 될지도 몰라요."


공부하기도 싫고 공부도 안 된다던 딸. 며칠 뒤에는 기말고사 준비한다며 스카 50시간을 끊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이렇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렸을 때처럼) 그저 어렵고 힘드니까 잠시 멈칫하는 거죠.


어른들이 자라면서 그랬듯이 아이들도 부모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괜한 잔소리와 다툼으로 거리만 벌리지 말고 (쉽지 않겠지만) 공부 얘기를 쏙뺀 대화를 많이 그리고 자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들이 의외로 혼자 알아서 잘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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