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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직장인 Jul 01. 2024

한 해의 절반을 지나며 느낀 것들..

'24년 상반기 투자 생각

해당 글은 개인 블로그에 먼저 올린 바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r123k120/223495301960)


1. 시간에 대한 생각


한 해의 절반이 지났고, 세월의 흐름이나 나이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직 젊지만 예전처럼 누군가 나이를 물었을 때 바로 대답을 하기 어려워졌다. 만 나이, 한국 나이, 빠른 나이 등 사회적인 도량형(?)의 혼란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이듦'에 대한 무던함이 가장 크게 작용할 것이다.


한때는 어려 보이는 것이 싫어 나이를 올려 이야기할 때도 있었고, 한때는 낮춰 보이고 싶어 만 나이를 얘기하며 위안감을 느꼈다. 때때로 어린 것을 자부로 생각하며 우쭐댄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30대가 되었을 땐 일종의 서글픔이 있었는데, 이젠 또 그렇진 않다. 인간의 감정 변화란 때론 참 우습다.


물론 10대 때 1년, 1년은  매우 크다. 12살 소년과 13살 소년은 지적, 신체 능력에서 엄연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적은 나이 차이라도 일종의 상하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이로 인해 생겨나는 다분히 한국적인 하이럴키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30,40대의 언저리의 나이, 그리고 40~50대가 되면 나이 차이는 사회적인 시그널 이외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정 구간이 지나면 생물학적인 생장과 기본적인 사회화의 러닝커브는 점점 0으로 수렴하고, 객체의 한계성장(Marginal growth)은 각자의 삶의 방향성과 노력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특히 자본과 탐욕의 중심에 있는 투자의 세계에서는 어른이지만 어른 같지 않은, 나보다 어리지만 훨씬 성숙한 이들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어른다움, 인간다움, 탁월함, 지적 성장 등은 이제 모두 각자의 몫이다. 


2. '24.1H에는 어떤 것들을 배웠는가


시장과 호흡을 함께할 준비가 돼있는 투자자였다면 올해 상반기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나 또한 여러 가지 운이 따라준 덕분에, 목표했던 것 이상의 만족스러운 수익률을 낼 수 있었다. 대단한 부를 이룬 것은 아니나 원하는 만큼의 시간적 자유를 가지게 되었고 나름의 새로운 도전을 계획해 나가고 있다.


a. 정발상에 대한 생각


투자의 세계에서 '역발상'이 하나의 상징적 단어로 자리 잡고 있지만 이 자체가 멋이나 패션과 같이 소비되진 않길 바라고 있다. 투자자로서 올해 시장이 편안했던 이유는 이미 모종의 답지가 제공되었고, 정발상에 입각한 '해석 게임'인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평소에 공부를 해둔 투자자들에게는 뒤늦게라도 따라갈 시간적 여유를 시장은 충분히 제공했다. AI라는 엄청난 조류 속에서 반도체도 전형적인 바닥 신호를 나타냈고, 전력기기는 놀라운 수주잔고와 실적으로 증명했다. 일부 뷰티, 소비재 등도 부지런히 추적했다면 무위험 수준의 차익 기회를 제공해 준 듯하다. 이 밖에도 유명 바이오 기업들의 유의미한 수주 공시, 수출입 데이터 특이점 등 시장에는 수많은 정답지가 있었다. 나 또한 게으름 또는 편견으로 답지를 보고도 놓친 것들이 꽤 있었고, 이에 반성하는 차원에서 한 토막을 남겨본다. 


하반기에도 이러한 정발상 기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우주/방산, 에너지, 조선기자재, 뷰티, 로봇 쪽을 유심히 챙겨보고 있다. 


b. 이익의 질 


기업의 이익에도 질이 있듯, 투자자의 수익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시장에서 관심을 갖는 소수의 종목에 열광하며 포트를 몰아넣었다가 갑자기 아닌 것 같다며 뒤집고, 시장이 어둡게 보인다며 포트를 비우고 하는 등의 방식은 매우 어지럽게 느껴진다. 물론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나는 해당 방식의 작동 원리조차 모른다. 


개인적인 포트 일부에서 단기 트레이딩을 하고 있고, 때론 숏포지션으로 헷징을 하고 있지만 이는 정확히 맞추기 보단 시장에 계속 머물러있기 위함에 가깝다. 시장을 다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수시로 Pivot하며 이러한 방식을 과시하는 형태는 나에게는 오히려 위태롭게 느껴진다.


적어도 나의 주변에 크게 성공한 이들 중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 또한 상반기 트레이딩 아이디어의 성과가 나쁘진 않았지만, 기업의 변화를 깊이 들여다 보고 그것이 시장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경우 투자했을 때 가장 큰 알파가 났다. 특히나 자산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이익의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목표는 점점 지속가능한 포트폴리오 구성과 펀더멘털 투자 쪽으로 기울고 있어 최근 해외 포지션을 추가로 늘렸다. 


3. 산에 오를수록 동료는 적어진다.


산에 높이 오를수록 함께할 수 있는 동료는 적어진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감정선은 매우 예민해서 성공에 대한 질투나 무언가 원망하는 감정은 쉽게 알 수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기운 같은 것들도 있다. 반대로 흠모하는 감정이나 존중 또한 그러하다. 


특히 남의 아이디어를 빌려 투자하고 손해를 볼 때 발생하는 원망의 감정에 대해서 나부터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친한 투자자 형님이 이에 대해 '매수 버튼을 누른 손가락이 누구 것인지 생각해야 된다'라는 말을 한적이 있는데, 이를 가슴 깊게 새기고 싶다. 냉정하게 10개의 투자 종목 중 진정으로 본인 스스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몇 개일까? 돈을 벌 때는 내 실력이고 잃을 때는 남의 잘못일 순 없을 것이다.


어떤 행위의 근원에 사랑('Love' 또는 'Affection')이 있을 때와 어떤 종류의 자의식 과잉, 질투, 욕망, 결핍 등 일때는 상당히 다른 형태의 에너지 발산이 나타난다. 물론 많은 경우 에너지의 강도나 파괴력은 후자가 우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힘이 과잉될 경우 주위를 불태우거나, 종국에는 본인 또한 태워버린다. 이와 관련하여 P.S.D(Poor, Smart, Desire to be rich)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는데, 아래 Seung님의 블로그를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


* Seung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tmdejr1267/223455931455


난 투자를 지금보다 훨씬 잘하고 싶고 부를 축적하고 싶지만, 절대로 주식에 내 자신이 먹히고 싶지않다. 이를 위해선 나의 갈증과 원동, 그리고 에너지 발산의 기저에는 사랑과 인본이 있어야하고, 공동체에 대한 포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고자 한다.


4. 때론 투자라는 일은 '사기적'으로 좋다


최근 친한 동생과 '주식 투자는 정말 사기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주식이 그저 쉽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투자자들은 젊은 날의 머스크처럼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이유도 없고, 야전 침대에서 일어나며 눈을 비비지 않아도 된다. 우리들은 현시대의 영웅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관에 운좋게 숟가락 하나만 잘 두어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사업은 틀렸다고 바로 접어버릴 수 없지만 투자자는 틀리면 손절하고 다음 기회를 찾으면 그만이다.


또한 투자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다양한 브랜드의 스킨, 앰플을 사서 직접 발라보고,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에 대한 공학적 원리를 살펴보고, 미국의 전력망에 대해 분석을 해보겠는가. 이러한 지적인 탐험과 유희는 투자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질적인 경험이다. 


물론 투자를 하면서 매번 돈을 벌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취미로 요리나 낚시를 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해서 대단한 결과가 남는 것은 아닐테니, 그 과정 속의 '즐거움'이 핵심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투자를 하며 수익이라는 결과가 설령 전혀 없다손 치더라도, 이 과정 자체의 충만감이 있기에 오늘도 투자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한 장면




※ '직장인 자본주의 생존기' 이전 글


- 내가 주식을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

- 월급은 오르는데 왜 더 가난해지는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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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 이 돈 받느니 장사나 해볼까?' 싶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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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주식이 저렴할까?' 직장인 투자자를 위한 조언

- 경제 전문가들은 주식으로 떼돈을 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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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균회귀와 역치, 그리고 DCF의 지평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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