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말고 낭독 아니 필사에 낭독 더하기
10년 전 《황홀한 글감옥》을 읽고 감동하여 《태백산맥》 필사를 결심했다. 조정래 작가의 며느리는 못되겠지만,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10권 전집을 호기롭게 구매하고 원고지도 넉넉하게 30매 2권 세트를 20권도 넘게 샀다. 하루에 책 한 페이지라도 필사하면 언젠가는, 죽기 전까지 10권 필사는 하겠지라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첫 1권의 필사를 마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1권을 완주한 것 같기도 하고 뒷부분에서 포기한 것 같기도 하다.
가물가물한 기억과 함께 남은 것은 새 책처럼 깨끗한 《태백산맥》 전집 세트와 당근마켓에 올려도 팔리지 않는 원고지 다발이다. 사실 《태백산맥》 전집 세트를 중고서적으로 팔까 고민도 했다. 10권이니 팔면 단돈 몇 만 원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읽지도 않은 새 책을 팔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변심해서 집어 들지 않을까?
글쓰기에 입문하며 칼럼도 베껴쓰고, 사설도 필사했다. 감성적인 글을 쓰고 싶어서 이병률 작가의 책을 필사하기도 했다. 최근 2년간은 하루 한 편의 시를 필사한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나는 필사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과연 그럴까?)
아무래도 필사를 하면 조금 더 글을 신경 써서 읽고, 필사하며 마음속으로 되뇌이니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래서 필사를 권하는 거겠지? 마음에 와닿는 표현을 따로 정리해 다른 글에 적용해볼 수도 있겠지?
낭독을 시작한 이유는 유튜브 때문이다. 효율적으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나는 주로 원테이크로 영상을 찍는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후편집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상을 제작할 때 말실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발음이 조금이라도 꼬이면 다시 녹음하거나 편집해야 하므로 한 번에 실수 없는 발성이 필요하다.
시 필사는 평소 하던 것이기에 여기에 낭독을 더했다. 음성메시지 버튼을 눌러 낭독하고 카카오 단톡방에 올린다. 누가 듣든 듣지 않든 나 자신과의 약속을 공적인 공간에 공유한다. 때로는 누군가가 듣고 공감을 해주기도 하지만 공감이 목적은 아니다. 매일 한 번이라도 시를 원테이크로 낭독하는 연습을 하면 유튜브 영상 제작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사실 강의에도 도움이 된다.
신기하게도 필사하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시를 낭독으로 깨닫는다. 낭독하며 '정말 내가 필사한 시가 맞나?'라고 생각할 만큼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다시 한번 시를 쳐다본다. 낭독 후 읽는 시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필사보다 낭독이 더 좋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필사를 하지 않고 그냥 눈으로 읽거나, 낭독만 하는 것과 필사 후 낭독의 느낌은 다르다. 필사하며 내 안에 시를 일부 다지고 낭독으로 완성한 것이다. 필사 말고 낭독이 아니라 필사에 낭독 더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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