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효이재 Aug 02. 2017

갈길바쁜 스타트업 앞에 놓인 덫

성장할수록 퇴보하는 스타트업 문화와 조직에 대하여.

혁신의 무게


BGM | Flume & Chet Faker - Drop the Game


'관리'와 '혁신'



 비즈니스 혁신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유통/운영의 혁신, 상품의 혁신, 경영 전략의 혁신, 관리 혁신 등.. 각각의 혁신은 기업의 성공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혁신을 그 영향력을 준거로 계층화해 본다면 조금 더 의미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전략 분야의 구루 중 한명이라 일컬어지는 개리해멀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비즈니스 혁신을 그림과 같이 운영 혁신 – 제품혁신 – 전략혁신 – 관리의 혁신 순으로 계층화했습니다. 상위 계층으로 갈수록 좀 더 높은 수준의 가치 창출과 경쟁에서의 방어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혁신 계층

 

그런데 주목할 점은, 모두가 ‘혁신’을 외치고 기업 리더들에게 ‘혁신의 챔피언’을 강조 하다 못해 ‘강요’하기까지 하는 현재 까지도. 정작 가장 높은 수준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관리 혁신’ 은 다른 종류의 ‘혁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더디게 진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리혁신이 경쟁자를 뛰어넘는 성과를 가져온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음에도, 끊임없는 관리혁신 프로세스를 갖고 있는 기업들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매우 이상할 따름이다… 지난 70년이 넘도록 ‘기술혁신’과 관련된 논문은 5만 2천건 이상, ‘제품 혁신’은 3천건 이상, 상대적으로 최신이론인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포함한 ‘전략 혁신’은 600건 이상이다.. 이에반해 ‘관리’혁신, ‘조직’혁신 등과 관련된 논문은 300건 이하로 검색될 뿐이고 그마저도 새로운 경영에 대한 창조나 발명보다는, 베스트 프랙티스의 전파와 보급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개리해멀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첫째,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스스로를 발명가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나 마케터, 전략가들과달리 관리자들의 역할 중심에는 혁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아서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관리자들은 선발과 동시에 교육을 받고 같은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에 대해 보상을 받는다. 따지고 보면 아무도 관리자가 혁신가가 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남들의 훌륭한 아이디어를 성장과 수익으로 연결해주는 역할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둘째, 많은 경영진들은 대담한 관리혁신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연구개발 종사자와 제품 개발 전문가들은 빅 히트작이 곧 생겨나리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과는 상반된 인식이다.. 이상하게도 관리자들은 기술의 약진에도 놀라지 않으며 심지어 관리의 실패에도 담담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모순에 직면했을 때, 많은 경영진들은 인사이동과 구조조정 등 실현 가능한 것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거나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도가 늘어나거나 직원을 믿을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거나 직원 스스로 일에 대해 의미를 찾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한계가 실체가 있는 것이든 상상에 의한 것이든 경영진들이 이런 한계를 처음부터 전제하기 때문에 관리자들의 상상력은 부족해지고 그 결과 관리혁신에도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개리해멀_Gary Hamel, 경영의 미래_the future of management 中


 

 개리 해멀 교수의 지적은, 대기업 중심의 국내 기업 환경의 맥락에서도 한번쯤은 진지하게 되짚어 봄직한 통찰이라 생각합니다. HR 컨설턴트로서의 직접 경험과 이 과정에서 접한 기업/조직 관리에 대한 많은 과거 데이터 /자료를 보아도, 조직관리에 대한 방법론과 지식,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연구개발(R&D)은 다른 혁신 분야에 비해 정형화되어 있고 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성장' 국면의 스타트업 앞에 놓인 '관리'의 문제: '기회'인가 '덫'인가



 그런데 이같은 ‘관리혁신’의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대상은, 대기업군이 아니라 고생의 터널을 지나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하는 스타트업입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장기에 직면한 스타트업은 관리 혁신을 현실적으로 주도/실험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기 특유의 에너지가 조직내 응축되어 있고, 고정된 조직논리나 문화가 갖춰져 있지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관리 체계 및 문화 구축과정에서 구성원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고 창조적 실험이 가능한 조건입니다.


 빈곤한 ‘관리혁신’ 분야의 일종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단골 기업인 ‘구글’, ‘넷플릭스’, ‘자포스’ 등 모두 ‘스타트업’에서 출발했고 여전히 자신만의 ‘스타트업’ 다움을 유지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들은 주로 성장하면서 많아지는 인력과 기타 리소스를 ‘관리’해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이전의 관습을 답습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조직 철학에 맞게 비틀거나 기존 컨벤셔널한 조직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과감한 시도를 하면서 정착하고 이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이같은 유리한 ‘관리혁신’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국내 스타트업 대다수는 ‘관리혁신’의 길을 걸을 시도 조차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가 밖에서 보기에 ‘혁신’을 주도하고 또 어느정도 일궈낸 ‘성공’한 스타트업이라 여기는 회사일지라도, 그 내부 운영 상황을 들여다 보면. 실제로는 그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관리체계를 갖추게 되면서 조직 고유의 색깔과 내적 동력을 잃거나 잊고 컨벤셔널한 조직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실제 많은 스타트업은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이 반응을 얻고 수익을 창출하면서 약 50~100명 규모를 넘어서는 성장기에 직면하는 순간 일종의 ‘패닉’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투자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과 두려움, 이제 본격적으로 성장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설레임이 교차하는 상황속에서 빠른 속도로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조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갑작스럽게’ 창업자에게 덧붙여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급하고 초조함을 노출하고, 그러한 부정적 아드레날린은 조직 전체적으로 빠르게 감염됩니다.


 스타트업의 출발과 초기 성공은 대부분 ‘혁신’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존 기업이 간과한 어떤 부분을 찾아내 매우 세련되게 혁신하는 과정을 통해 시장에 자리잡습니다. 그러나 초기 성공을 가져다주는 혁신은 대부분 ‘운영 프로세스’이거나 ‘제품’에 대한 것이거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것입니다. 창업자는 1차적으로는 그러한 혁신에만 몰입하면 됐습니다.


 현실적으로 한두명으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혁신의 최상위 계층인 ‘조직’/‘관리’에 대한 혁신을 제대로 대비하거나 몰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1차적으로 자신이 시장 진출을 위해 고민했던 핵심 전략과 그와 관련된 혁신에 몰두하기에도 벅찬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직이 커지는 순간. 즉, 제품 혹은 운영 프로세스 혹은 비즈니스 모델을 다루는 ‘인력’이 더이상 몇명의 창업자 그룹의 개인적 소통과 통솔의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 이들은 필연적으로 ‘관리’의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몇몇 스타트업 경영진 혹은 관계자를 인터뷰 해보면, 실제 상당수는 이 ‘관리’의 문제를 미처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한 스타트업의 창업 멤버 중 한명으로 일하고 있는 K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우리는 서비스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막연히 잘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고 정말 지금 얘기하기에는 벅찬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실제 우리 서비스는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어요.


 어떤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지, 직원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고 이들에게 어떻게 책임과 권한, 역할을 부여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평가해서 얼마만큼의 보상을 해야 하는지.. 서비스를 다루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그 시점에서 우리는 결코 하지 말아야 할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막연히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자랑스럽게까지 생각했습니다. 유명 대기업(S그룹)에서 조직을 다룬 경험이 많다는 사람을 데려온 것이지요. 그땐 그것이 하나의 훈장이자 스타트업 성공의 척도로 느끼고, 자랑삼아 주변에 전파하기까지 했습니다. 여하튼 그는 자신이 경험한 조직의 체계를 충실히 우리 조직에 이식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렇게 ‘관리’하는 순간 조직이 더 ‘관리’되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구성원의 턴오버는 좀 더 심해졌고, 일에 대한 만족도도 눈에 띄게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끈끈한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건 저마저 회사가 재미없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나간다는 직원(매우 유능한 친구였습니다)을 붙잡고 왜 나가려 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머리를 한 대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친구가 한말은 뭐 별거 없습니다. 한마디였죠.


“더이상 ‘스타트업’이 아닌 것 같아서요.”

  

 물론 많은 친구들이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에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또다른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역시 사람들이 ‘스타트업’하면 떠올리는 ‘기대’에 부응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비전이 막연하지만, 반드시 있었기에. 당신이 질문한 ‘관리’의 문제에 대해서 성장초기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K에게, 회사의 빠른 성장과 그에따른 규모의 확장은. '관리혁신'을 통한 도약의 '기회'가 아니라, 잘나가다가 엉겹결에 걸린 '덫'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은 비단 개인의 차원을 넘어 성장기에 있는 국내 스타트업이 현실에서 보편적으로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맞다. 질문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일시에 해소할 수는 없다. 다만 질문은, 답을 구하는 시도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좋은 질문은,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한다. 그리고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첫번째 발판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낙원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것을 꿈이라고 부른다. 낙원에 도달하려면 일단 떠나야 한다. 어떻게? 호기심이라는 배에 올라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수밖에.


 돌이켜보면, 내 내면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질문처럼 절박하고 명확한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따라가는 과정에서 널찍한 신작로는 아니지만 나만의 샛길을 발견하곤 했다. 호기심이 싹틀 때 "원래 그렇다"는 말로 억누르지 않았으면 한다. 삶의 진보는, 대개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


우리가 '살아간다' 하는 것이 어디 '사(私)'생활 뿐일까.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公)'적 공간인 회사, 그곳에서의 삶, 관계, 나아가 이뤄지는 체계, 관리, 경영. 작가의 말을 다시 한번 빌리자면. 그곳에서의 더 나음을 위한 누군가의 '물음'을. "원래 그렇다"는 말로 억누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잘나가는 스타트업 앞에 놓인, 세가지 덫


BGM- CODE KUNST, Beside Me (Feat. BewhY, YDG, Suran) 



“인간성의 핵심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George Orwell, In front ofyour Nose: 1945~1950]



사람의 무게



 꽤 오랫동안 비즈니스 세계는 테일러식의 ‘합리주의’ 기조 아래 경성과학적 시각에서 ‘사람’을 표준화하고 데이터화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언제 부턴가 기계를 분석하듯 피상적인 ‘재원’과 정량적 비교분석 만으로 사람을 파악하고 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사람’의 무게는 ‘기계’ 혹은 거대한 ‘기계’ 속 ‘부품’ 정도로 다뤄져왔습니다. 데이터 세계 속의 ‘0’과 ‘1’의 조합으로 다룰 수 있고, 아니 그리 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표면적으로 ‘사람’이 중요하지 않은 적은 그 언제도 없었습니다. ‘인재 전쟁’, ‘핵심 인재’니, 다양한 용어를 통해 비즈니스는 ‘사람’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인간/임직원 개개인이 가진 진실한 업무동기나 이를 둘러싼 맥락/양상(Context/Aspect*)이 우선시 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동시에 리더들은 ‘사람’에 대한 책임을 부던히 자신으로부터 떼어놓기위해 부던히 노력해 왔습니다. 때로는 역술인/비선에, 때로는 복잡다단한 시스템/ 프로세스에, 회계장부의 손익계산 숫자에, 외부전문가와 시장논리에, 이제는 아직 적어도 HR영역에 있어서만큼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알고리즘에. ‘사람’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판단’을 떠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Aspect: 객관적으로 측정/분석 가능하거나 눈으로 보이는 속성(Properties)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어떠한 상황에 대해 인간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맥락, 인간이 경험하는 방식에 주목하는 현상학적 용어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스, 센스 메이킹-이것은 빅데이터가 알려주지 않는 전략이다 참조]


 일련의 ‘사람’에 대한 합리주의적 관점의 비즈니스 흐름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연금술’의 역사와 교훈이 떠오릅니다. 금(꿈)을 만들 수 있는 완벽한 화학식은 불가능했던 것처럼,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기계처럼 예측하고 다룰 수 있는 완벽한 모델링, 과학은 현존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영인들은 현존하지 않은 현실보다 ‘마땅히 그렇게 될 것’이라는 잘못된 가설에 기대어 사람의 무게를 축소시키고 말았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비즈니스 리더라면 당신에게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 ‘당신 직원 한명한명의 무게/가치는 어느정도 입니까?’ 혹시 그저 ‘내 (소박한-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사실 불가능한-) 기대대로만 딱 움직여주는 완벽한 기계’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기업문화 구축의 핵심: '사람'



 결국 사람이 문제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보고 운용할 것인지 판단하고 행하는 과정이야말로, 스타트업이 초기 기업 문화를 구축함에 있어서 세심하게 신경쓰고 또 써야 할 대목입니다.


 1. ‘어떤 사람과 함께 할 것인가?’,

 2. ‘그 사람들과 무엇을 할 것인가?’,

 3. ‘그 사람들에게 무엇(가치)을 줄 것인가?’

 

 비즈니스 전략과, 제품/서비스의 혁신과 운영 프로세스의 효율을 고민하기 이전에 저 ‘사람’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마련하시라, 스타트업 리더들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략, 제품/서비스, 운영 프로세스에 대한 고민과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도 싶습니다.


 성장의 변곡점에서, ‘사람’의 무게를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은채, 먼저 고삐를 풀고 달리기 시작한 스타트업은 앞서 언급한 사람에 대한 세가지 질문과 관련해 유사한 패턴/위험(Pitfall)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1. 어떤 사람과 함께 할 것인가? – 리크루팅의 덫


 

 구글의 전 HR 책임자 라즐로 북은 구글의 People Management(구글은 HR이라는 용어 대신 이것을 밉니다)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채용’이라고 말합니다. 오랜기간 자체 People Analytics 결과 담당 직무에서 '영리하고 성실하며 겸손한(smart, conscientious, and humble)' 적임자를 초기에 공들여 찾는 것이, 평범한 직원을 그렇게 만드는 것 보다 훨씬 가능성 높고, 비용효과적이며,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고유 문화를 유지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성장기 스타트업이 초기 가졌던 고유의 매력과 문화를 잃고 여느 일반 중견/ 대기업과 같은 평범한 조직으로 변질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어떤 사람과 함께 할 것인가?’, 즉 ‘채용’에 대한 진지하고 세심한 고찰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관찰한 – 그런 고유 색깔을 잃거나 혹은 잊은 – 스타트업 출신 기업들에서 눈에 띄는 실수는 ‘채용’의 핵심과 무게를 외적인 조건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두가지가 1) 대기업 출신 스카웃과 2) 실리콘밸리 출신 외국인(혹은 그에 준하는 인력)에 ‘천착’하는 경향입니다. 사실 얼핏보면 그것은 매우 매력적이고 합리적인 채용요건으로 보입니다. 1) 대기업 출신 스카웃에 대해서는 크만큼 큰 조직을 관리해 봤고, 대기업일수록 선진적인 시스템을 많이 보고 접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 실리콘 밸리 외국인/현지인에 준하는 인력 역시 본토의 선진적 시스템과 문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맞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기대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왜일까?’ 자신도 모르게 ‘대기업’ / ‘실리콘 밸리’ 라는 네임택 자체에 경도되어 다른 검증없이 그것만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끝내는 것에서부터 문제의 싹이 발아합니다. 이런 유형의 기업 채용담당자 몇분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의 대화/메세지는 유독 ‘출신’에 대한 키워드가 반복되고 강조되었습니다.


 [대기업 출신 스카웃에 대하여.]


 회사가 규모있게 성장하기 때문에 이미 규모있는 회사를 경험한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기업의 성격과 문화, 즉 맥락적 측면을 전형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사고입니다.


 HR과 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턴트로서 이들 기업을 경험해보면, 대기업은, 특히 국내 유명 대기업의 특성은 대체로 ‘수직적/관료적’ 특성이 강합니다.(인더스트리에 관계 없이!) 더욱이 이들 조직은 규모의 증대와 함께 철처히 세분화/매뉴얼화 되어 있습니다. 종종 이에 속한 구성원들은 자신들을 ‘거대한 기계속 부품’으로 자신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스타트업에 인사적 측면에서 전통적 대기업의 시스템과 문화를 적극 도입 하거나 차용하라 권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만약 대기업 출신 인사담당자가, 그저 대규모 기업을 운영해본 경험을 살려 그가 경험한 시스템을 선진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면. 스타트업 조직이 가진 유연성, 생동성은 자칫 그 색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께서 단기적 재무지표가 기업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기업이 ‘문화’를 잃는 것은. '좀비'가 되는 재앙에 다름 아닙니다.


사례 1) IT/유통 분야의 스타트업으로 빠른 성장을 기록한 X사 역시 그랬습니다. S사 출신 인력들이 임원으로 투입되어 소위 그들이 쓰던 Stack Ranking 중심의 성과관리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였는데, 그 부작용이 상당합니다.


 복수의 임직원을 인터뷰해보면, 경쟁적이고 터프한, 그 과정에서 무형의 정치게임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변해버렸 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는 규모는 좀 작더라도 예전처럼 사람 걱정 없이 마음 편하면서도 자발적 동기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리콘 밸리 등 본토 인력 스카웃에 대하여]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실리콘 밸리 영입 인재들입니다. 특히 글로벌 진출을 꾀하는 스타트업일수록 기술인력을 중심으로 실리콘 밸리 출신 인력(특히 현지 외국인 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1차적으로는 긍정적인 입장입니다. 그들이 겪은 실리콘밸리 기업문화나 시스템에 대한 경험적 디테일은 인사적 측면에서 그들이 가진 기술력 자체만큼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역시 현실화되기 보다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경영자들은 정작 그들의 경험을 People Management 관점에서 스타트업의 맥락에 맞게 지혜롭게 활용하고자 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습니다. 조직운영의 기본 시스템은 대기업의 그것을 얹어놓은채 실리콘 밸리 출신 인력 등 특별 영입한 인력들에 한해서만 우대정책을 적용함으로써 오히려 조직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세우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사례 2) Healthcare분야에서 공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 Y사의 한 직원은 이와 관련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저 외국 인력들의 서포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적용되는 대우나 제도도 달라요. 저역시 국내 최고 학부를 나왔고 역량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음에도. 여기는 처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반 직원들은 위화감과 박탈감을 느끼고, 본토 인력들은 오만하고 무례한 점령군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쯤에서 좀 더 정교하게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대기업’, ‘실리콘 밸리’ 출신 인력을 찾지 말라 말씀드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것에 ‘천착’하지말라는 것입니다.('SKY'로 상징되는 출신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보다 실제 필요한 ‘컨텐츠/역량’을 가진 사람, 우리 기업이 갖고자 하는 ‘문화’에 Fit한 사람을 찾고 다각도로 검증한 후 신중히 의사결정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의식적으로 철저히 스스로를 경계하고 경영진 상호간에 철저히 점검 해야 하는 민감한 사안이라고까지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 그렇듯 Title/Spec은 매우 달콤해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욕망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사례 3) 얼마전 매우 핫한 핀테크 기업 채용담당자를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귬 투자유치 이후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채용하고 있었는데 물론 Spec역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현명하게도) 문화에 Fit한 – 최고의 성과를 추구하면서도 유연하고 상호 수평/존중의 애티튜드를 가진 – 인력을 찾는다고 직접 말씀주셨습니다.

 

 저는 후자를 말씀 주신것이 인상깊었다고, 제 네트웍에서도 추천할만한 분이 있는지 찾겠다고 기분좋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리크루팅 그룹이 최근 채용한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아무래도 ‘덫’에 걸린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해당 포지션은 기업/서비스에 대한 홍보와 동시에 관련 규제나 위험에 대응하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혼자 관리해야 하는 난이도 높은 역량을 필요로 하는 Job이었습니다. 그들이 최근 채용한 사람은 외국계 홍보 대행사의 IT 당당 이사 출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의 네트워크 안에서도 검증이 가능한 인력 이었는데 내부 임직원 평가는 이랬습니다.  

 

 “교묘하게 업무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책임지지 않기로 유명하다. 왜 IT  Industry 담당인지 모를정도로 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공부하려는 마음도 없다. 영어를 잘한다. 사내정치와 함께. 회사나 클라이언트가 실질적 으로 잘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Taker*다.”

 *taker: 조직심리학자 아담 그랜트(Adam Grant)는 조직내 구성원의 유형을 GiverMatcher, Taker로 구분합니다. 대부분은 Matcher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조직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가져다 주는 유형은 소수의 Giver이며, 동시에 조직을 송두리째 말아먹을 수 있는 인력 유형은 Taker 라고 말합니다. Taker은 상대방과의 관계가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에만 그 관계를 유지하며 교묘히 자신의 이득에만 집중하는 이기적 행위자를 의미합니다. Adam Grant는 다양한 실험결과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Giver를 찾아 더 투입하는 것도 아니고 Taker를 찾아 제거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Adam Grant, Give and Take 참조]


 어렴풋이 알고 말하는 것과 그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는 것에는 이토록 간극이 있습니다. 많은 기업은 알면서도 시간에 쫒겨, 단기적 성과 압박에 Global기업의 경우 당장 소통해야할 언어적 필요로, 사실상 가장 경계해야 할, ‘화려하지만 교활한 Taker’를 자신의 손으로 들여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 환경은 더더욱, 한번 들이는 것은 쉬워도 내보내는 것은 어려운 구조 입니다.


 Taker 한명이 조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은 단순히 몇명에 미치는 범주가 아니라, 조직 전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조직 리더는 유의해야 합니다.   



일이란 단순히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은 개인의 인격형성이나 정신활동과 밀접하게 연계되는 매우 섬세한 것입니다. ‘사는 보람’, 개성의 창조 혹은 ‘나다움의 표현’이며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사회를 대하는 태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인생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이것은 우리 개개인이 생각해볼 것이기도하지만. 기업이, 조직의 리더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말그대로 ‘사람’ 그리고 ‘인생’ 이 어울려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2. 그 사람과 무엇을 할 것인가? – 운용의 덫


 

 한 기업이 우여곡절 끝에 조직에 진짜 필요한 인재를 영입했다고 가정합시다. 그것으로 모든 덫이 제거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기업은 여전히 그 인재와 함께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그를 ‘어떻게’ 동기부여해 결과를 낼 것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례) 실리콘밸리에 근간을 둔, 대표적 혁신기업으로 분류되는 Global Healthcare 기업의 한국지사에 최근 영입된 한 구성원의 하소연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속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분명 인터뷰 과정에서 채용되지 않을 것을 각오하고 ‘저 역시 이 회사를 면접본다는 마음’이라는 것을 밝히고 제시된 포지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과 기여할 수 있는 바와 제시된 요구 사항 중 우려되는 부분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했고 모든 것이 조율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출근해보니 제 전문성을 살릴수도, 제가 이해한 R&R을 제대로 수행할 수도 없는 환경에 놓여있었습니다. 과거 이 회사가 이 업무를 어떻게 수행했나 싶을 정도로 관련된, 유의미한 데이터나 채널분석이 전무했습니다. 이를 통해야 소위 근거중심의 이해관계자 대응 논리 개발이 가능한데 말이지요. 그것까진 괜찮습니다. 제가 하면되니까요.


 더 큰 문제는 제가 할수있는데도 할수 없게끔 혹은 하려는 의지를 꺾는 조직 분위기에 있었습니다.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업무를 시작하려하니 유관부서 동료들은 ‘그런거 없이도 잘해왔는데, 왜 굳이 일을벌리려고 해?’ 경영진은 ‘무슨말인지는 알겠는데 일단 기다려봐’, ‘들어왔으면 너무 튀지말고 회사가 요구하는것부터 해줘’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입니다.

 

 최초 인터뷰 프로세스를 통해 저와 커뮤니케이션 했던 조직 헤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퇴사절차를 밟고 있었구요. 저 역시 입사하면서 회사가 어떻게 하면 잘될지 진심으로 고민했고, 그 생각하는 마음만큼 기여하고 싶었고 때문에 적어도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건의도 했는데 조직은 오히려 그 동기와 로열티를 꺾어 버렸습니다. 밖에서 보이는 팬시하고 혁신적인 기업 이미지를 감안해 숨죽이고 버텨야 하는건지.. 그래요 지금은 그저 하루하루 ‘버틴다’라는 표현이 맞는것 같습니다”


 HR 영역에 몸담아 오면서, 그리고 저 역시 한 회사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농담반 진담반 수없이 들어온 동료, 후배들의 하소연이 있습니다.


 “왜 존경할 만한 분들은 다 나가시는 건가요?”

“왜 회사에 애정을 가지고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할수록 조직은 어떤식으로든 그 동기를 꺾는거지?”


 동시에 산전수전을 다겪고 살아남은 선배들이 농담반 진담반 해주는 조언도 있습니다.


 “조직에 쓴소리, 바른소리는 절대 해선 안되는 거야. 아무리 옳은말을 해도 듣는사람 기분이 나쁘자나. 그럼 그게 네게 어떤식으로든 안좋게 돌아와. 그게 조직이야.”


 전쟁에 쓰는 무기도 각 무기별로 다른 제원과 특징, 사용법을 가집니다. 가용한 무기체계에 따라 작전과 전술도 달라집니다. 그저 무기만 수집해 놓고 각 무기의 특징과 사용법은 무시한채 무기를 운용해서는. 전쟁에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또한 그것을 알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해 전장을 돌파할 것인지에 대한 전술과 작전을 국면별로 계획하지 않으면 그것역시 필패입니다.


 하물며 사람입니다. 내가 뽑은 인재와 함께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추진할 것인지, 조직의 요구와 인재의 강점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그의 업무동기가 무엇인지를 대표부터, 경영진부터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어렵게 영입한 진짜 ‘인재’는 반드시 떠나거나, ‘인재’의 색깔을 스스로 지운채 복지부동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넘기기 앞서, 이와관련해 하나만 더 짚을 것이 있습니다. ‘벤치마킹’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는 또한 ‘맥락’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HR컨설팅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그래서 어쩌면 결코 빠뜨려선 안되는 해법은 ‘벤치마킹’입니다. “그래서 다른 기업은 어떻게 하는데?”에 대한 응답만 눈치껏해도 소위말해 컨설팅 반은 먹고 들어갈정도 입니다.

 

 그런데 여기엔 두가지 작은 덫이 있습니다. 벤치마킹에 의존하는 기업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와 맥을 같이하는 ‘혁신’도 당연히 힘들겠지요. 이런 기업은 조직의 맥락과 상황에 맞춘 해법을 아무리 정교하게 제시해도, 벤치마킹된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벤치마킹이라도 제대로 해야할텐데, 그 과정에서 ‘본질’은 빠지고 ‘피상적인 껍데기’만 겉핥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기서 또다른,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기실 그 조직 고유의 속성과 맥락이 반영된 ‘화학적’ 결과물입니다.


 그 컨텐츠의 구조와 내용, 그 속에 속한 맥락을 온전히 파악하지 않은 채 단순히 보이는 대로 혹은 미디어에 예쁘게 포장된 것으로만 접하거나 판단해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앞선 브런치 글 '포스트 성과주의, 평가의 본질을 묻다'에서 언급했던 사례로, '새로운 성과관리 패러다임으로 상시 성과관리가 떠오르고 있다고 하니 그렇다면 우리도 1년에 한번 하던 공식 평가주기를 1개월 단위로 당기자’와 같은 발상이 그 전형적 사례입니다.
 

 최신 유행 브랜드 옷을 쇼핑하는 것처럼 주변 모임에서, 혹은 친하거나 은근한 경쟁상대 누군가로부터 ‘이렇다더라’ 들은 것이 곧 피상적으로 내 회사에 적용할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최초 그 것의 취지와 적용환경, 맥락과 특성이 면밀히 검토되지 않은 채, 더욱이 그중에서도 우리회사에 당장 부담이 되는 어려운 것(투자가 필요하거나, 시스템의 전반적 개혁이 필요하거나)은 놔두고 쉽게 적용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도입하는 벤치마킹은. 직언컨대.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사례) 최근 1세대 스타트업에서 이제는 대기업화된 유명 게임회사의 인사부서에 하나의 미션이 생겼습니다. 직원의 불필요한 야근 문화를 개선하라는 것입니다.  T과장은 사수로부터 이를 담당해보라 지시받았습니다. 사수는 방법도 친히 일러주었습니다. 주변 기업들의 야근문화 개선 ‘캠페인’을 벤치마킹해 우리회사의 ‘캠페인’을 기획하고 이를 통해 야근문화를 개선하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T 과장께 기존의 소신대로 문화는 단순히 캐치프레이즈나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혹시 진짜 그 원인이 뭔지 진단해보고 좀 더 실질적인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자신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권한은 없고 방법은 정해졌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조직은 보수적이고 내가 건의한다고 해서 바뀔 수 없는 구조다.’라는 취지의 답변 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의 야근문화는 실질적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요?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김훈, 밥1]




3.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 – 리더십의 덫


 

 두 문제를 관통하는 이슈가 있습니다.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은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앞서 제기한 문제를 야기하는 근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곧 ‘사람’에 대한 철학과 관련된 것입니다. 한 조직의 리더가, ‘사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이, ‘어떻게 조직을 꾸릴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상이나 지향점을 그리지 않고 피상적인 자세로 People Management에 임하면. 제품/서비스 혁신과 이에 따른 매출호조와는 관계없이 조직은 안으로 곪게 됩니다.


 ‘사람’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리더에게서 주의해야할 특징 중 하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리더는 그래서 듣는 귀도 거의 닫혀있습니다. (더 복잡한 문제는 대체로 이런 리더는 스스로 사람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고, 자신을 성찰할 줄 알며 스스로 열려있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리더는 조직의 문제 앞에서 ‘잘나가는 조직인데 대체 뭐가 문제지?’라며 오히려 힘들어하거나 불만족하는 구성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립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 느끼더라도 그저 ‘다른 곳은 그래서 어떻게 하는지’가 더 궁금할 뿐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조직운용에 대한 ‘오판’은 덮고 나아가 ‘사람’ 에 대한 ‘의사결정 책임’을 회피하게 됩니다.


 그래서 매번 문제에 대한 대안은 애꿎은 말단 구성원을 향합니다. 그들을 향한 정신개조 교육이나 관련한 캐치프레이즈, 캠페인이나 그들을 옥죄는 제도 개선으로 귀결됩니다. 리더십 개선방안 역시 있다하더라도 그 언저리에 머물뿐입니다.


 리더는 사람에 대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조직에 대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돈을 벌고 외적으로 성장하는 차원을 넘어. ‘어떤 조직’을 꾸릴 것인지에 대한, 그 ‘질(質)적 이상’이 있어야 합니다. 혹여 컨설턴트의 손을 빌린 거창하고 논리적인. 때로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기까지한 구조적인 가치체계 프레임(미션/비전/핵심가치/인재상 등)을 이미 손에 쥐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만약 리더의 진심을 관통하지 않는다면. 리더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순히 그럴듯한 것이라면. 그래서 조직의 행위와 시스템과 프로토콜이 언행일치 되지 않는다면. 쓰레기통에 들어가야할 휴지조각에 불과하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P.S 이렇게 말하는게 두렵지 않냐고요? 괜찮습니다. 경험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제가 자신이 속한 조직에 있다 맞장구 칠 지언정,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려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저 남의 얘기라 생각할것입니다. 비밀입니다.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다.


누가(Luke) 10: 24




'文化'와 '正義'에 대하여


[BGM]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21세기 사회는 소위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로 변모했다. 이 사회 속 성과주체가

가지는 질병은 면역저항이 아니다. 소화 신경적 해소 내지 거부반응으로 나타난다. 심리적 경색으로 이어지는 신경성 폭력은 내재성의 테러이다. 이 폭력은 '박탈'하기 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기보다

'고갈'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스템적인 폭력,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좋은 삶이란 성공적인 공동의 삶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거니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삶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생존 자체에 대한 관심에 밀려나고 있다.


 한병철, 피로사회 중



 괴(怪)문화의 잉태



 그 모든것이 일그러진 ‘문화’를 낳습니다. 조직 다수가 ‘책임 회피’적이고 ‘복지부동’ 하는 문화가 나타납니다.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다수의 침묵속에 교언영색(巧言令色), 아첨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습니다.


‘왜’라는 단어는 암묵적으로 금기어가 되어버립니다. 혹여 눈치없는 누군가가 묻더라도, ‘원래 그런거야’라는 대답하나로 찍어누르면 그만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 가져다주면, 혹은 정말 강한사람의 눈에 들기만 하면 내 언행은 어찌됐든 관계 없습니다. 후배가 맘에 들지 않아 윽박지르고 인신공격해도(Power Harrasement), 다른 여자 동료나 후배들에게 야릇한 농담(Sexual Harrasement)을 던져도 괜찮습니다. 밖으로는 ‘세련된’, ‘앞서가는’ ‘혁신적인’ ‘가고싶은’ 기업이라는 짙은 향수를 뿌리지만. 실상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전형적인 ‘꼰대’의 악취가 진동할 뿐입니다.


 이처럼 문화는 단순히 별도로 개선할 수 있는 독립과제가 아닙니다. (조직 문화에 대한 저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으시다면 ‘당신이 조직의 문화를 결코 바꿀 수 없는 이유’를 참고 부탁드립니다.) 발열이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으로 인해 생긴 결과적 징후인 것처럼, 조직문화 이슈는 조직의 복합적 문제가 겉으로 발현되는 ‘결과’에 더 가깝습니다.


 때문에 문화는 일회성 교육만으로, 세미나/워크숍만으로, 창의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동한한 커뮤니케이션 캠페인 만으로, 특정 제도개선 등 어느 하나만으로 손쉽게 개선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모든 것을 과제화해 큰 돈을 투입한 대규모 컨설팅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닙니다.


 여전히 조직에 대한 ‘최선’, 조직에 대한 ‘신화’ 적인 사례가 도처에서 소개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컨설팅/교육을 받으면 모든 조직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도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쩌면 조직개발, 이를 통한 성과관리는 매우 쉬울텐데. 정작. ‘왜 내가 속한 조직은 그렇지 않을까. 심지어 나는 외부에서 널리 소개되는 바로 그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앞선 글(‘당신이 조직의 문화를 결코 바꿀 수 없는 이유’)에서 문화는 디테일에서 잉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진짜 문화를 규정짓는 조직일상의 ‘작은’ 가치충돌 상황에 대해서 조직이 책임있고 일관된 대답을 할 수 있는 태도와 역량을 갖추는 것에서 ‘진짜’ 문화가 시작됩니다. 문화가 건강하지 않다면, 필시 그것은 그런 사소할 수 있지만 구성원 개개인과 일상에서 맞닿아 있는 가치충돌 상황에 대한 대응 프로코톨이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사로부터 인신공격을 당했을 때, 혹은 기분나쁜 성적농담/제스처를 당했을 때, 동료의 비위행위를 목격했을 때, 다른 동료나 후배에게 자신의 업무를 떠넘기고, 또 그들의 공로는 가로채는 사람들에 대하여. 클라이언트가 비윤리적인 접대를 요구할 때.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엄격히 따지면 좋지 않은 것이지만, 내가 총대를 매고 그들을 고발할 것인가 물었을 때. 침묵할 수 있을정도라 생각할 때. 조직 역시 ‘침묵’한다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프로토콜’의 부재나 오작동/미작동은 대체로 이를 담는 제도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특히 대기업일수록- 그럴듯한 관련 제도과 규정을 구비해 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결국 리더의 ‘사람에 대한 철학/생각’, 그 양과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멋있는 우리조직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조직의 리더십과 철저히 Linkage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장의 길목에 서계십니까?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렇다면. 조직전체를 책임지는 ‘리더 스스로’ 얼마나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그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를 철저히 사고하고 나름의 답을 도출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최고리더의 성찰이 빠진 공격적인 채용, 제도수립, 교육, 캠페인 등의 투자는 시작부터 죽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균형과 정의


 

쓸데없이 너무 긴 여정을 억지로 이끈 것은 아닌지 송구스럽습니다. 더불어 너무 무례하게 기존의 조직논리에 대립각을 세운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조금 강하게 말씀드렸다해서 기존의 모든 것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님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성장의 밀물 위에 계신 스타트업 리더, 나아가 모든 기업 리더들께 ‘균형’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시라 부탁 드리고 싶었습니다.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균형, 결국 ‘돈’과 ‘사람’의 균형, ‘철학’과 ‘현실’의 균형, 언(言)과 행(行)의 균형, 표준화/ 데이터화/기계화 흐름(합리주의 기반의)과 맥락(Context)/양상(Aspect)의 균형, 권위/질서와 존중/소통의 균형,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균형, 겉과 속의 균형, 강자와 약자의 균형과 같은 것 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균형’을 이야기하려다 보면. 이는 경영의 울타리 안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에 대해 논할수 밖에 없고. 이는 다시 경영 속에서 최소한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과 같은 가치판단 문제를 끄집어내어 다룰 수 밖에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경영에도 정의가 필요한가?’ ‘경영속 정의란 무엇인가?’ 조금은 머리아픈 정치철학적 과제가 경영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창업자 한두명이 비용 1원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재무/ 인사는 물론이고 잡다한 총무 업무까지 도맡아야 하는 정신없는 하루의 연속인 현실에서 너무 많은 요구와 심지어 철학적 과제까지 들먹이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누군가 그리 비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달게 발겠습니다. 그리고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그 ‘가능성’ 때문입니다. 아직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완전히 채색되지 않은 도화지같은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시도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혁신다운 혁신, 성장다운 성장, 나아가 ‘정의’로운 기업이 구축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이 글을 통해 작게는 스타트업의 리더가 회사의 성장과 함께할 ‘사람’, 그 ‘무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좀 더 나아가선 이 ‘사람’에 대한 운용철학을 직접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긴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기업을 비롯한 모든 조직이 사회의 기관이다. 조직 자체를 위해서 조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기능을 다하여 사회 커뮤니케와 개인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조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 조직이 무엇인지가 아니다. 그 조직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기능이 무엇인지이다.. 기업에 이익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는 목적이 아니라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이윤동기는.. 오히려 해를 준다.


피터 드러커, 매니지먼트

.

.

.

Warning. If you are reading this, then this warning isfor you. Every word you read of this useless fine print is another second offyour life. Don’t you have other things to do? Is your life so empty that youhonestly can’t think of a better way to spend these momnets? Or are you soimpressed with authority that you give respect and credence to all who claimit? Do you read everything you’re supposed to read? Do you think everything you’resupposed to think? Buy what you’re told you should want? Get out of yourapartment. Meet a member of the opposite sex. Stop the excessive shopping andmasturbation. Quit your job. Start a fight. Prove you’re alive. If you don’tclaim your humanity you will become a statistic. You have been warned… Tyler.


- 영화 Fight Club (시작전 매우 빠르게 나왔다 사라지는 경고문)


여기에서도 빠르게 튀어나왔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사진: 부산 앞 바다, 2010.


매거진의 이전글 평가, 죽어야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