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효이재 Apr 01. 2018

경력직 채용과 조직문화의 속살, 그 상관관계에 대하여

조직이 끝까지 채용에 실패하는 진짜 이유_경력직 채용을 대하는 태도 3


[BGM] Wolf larsen, If I be wrong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프란츠 카프카, 변신-



MAINSTORY


*Story구성은 실제 기업 사례를 토대로 하되, 보안상의 이유로 일부 세부 내용/정보를 각색한 것입니다. (이 글을 좀 더 잘 이해하시려면 전편 '경력직 채용 그 태도에 관하여''경력직 채용 그 태도에 관하여2' 를 먼저 읽어주십시오. 그리고 매번 죄송스럽게 말씀드리지만, 매우 깁니다. 감안해주십시오.)


상효이재)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말씀을 나누다 보니 회사의 Sink or Swim 정책에 따른 조직 적응 실패가 그 이유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여쭤봅니다. 


C, 前 N社 해외영업 팀장)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요. 간단한 회사 행정 교육 외 특별히 조직의 기류를 파악할 시간이 주어지진 않았기에 처음부터 부딪혀 가며 적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둘 정도의 스트레스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까지 속했던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회사에선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해도 좋겠습니다.


 서먹하거나 조금 비협조적이었던 팀원들을 설득하고, 그렇게 만든 전략이 시장의 좋은 피드백을 얻고..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생각보다 그런 성공 경험들이 빨리 쌓여 나가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C팀장이 온 이후로 회사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어’ 사장님께서 다른 임원에게 그리 말했다는 것을 전해듣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자만 섞인 생각 이었지만.. 2~3개월을 넘어가는 시점에 ‘적응했다, 여기서 잘할 수 있겠다.’라 생각 했습니다. 


 한편 그렇게 적응해가면서 동시에 조금씩 회사의 실체적 구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겉으로 표방하는 가치와 실재가 어긋나는 일도 직접적으로 겪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소위 ‘4차산업혁명’ 군에 속하는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 만큼 문화 역시 보다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형태를 추구한다고 표방했습니다. 한 미디어에선 임직원 친화적인 대표적 기술기업으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1) 어느 날, 해외영업을 위한 시장분석을 기획하고 팀원들과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하던 중이었습니다. 팀원 M이 전화를 받고 끊더니 안색이 바뀌었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물었습니다. 인접 홍보 팀장 E가 잠깐 도와 달라고 하는데 난처하다고 했습니다. 홍보팀장 E와 친한 메이저 신문사 기자가 영어번역을 부탁했는데 그 것 좀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저도 공적 목적이 아닌 사적 심부름(대학원 숙제)이 었습니다. 해당 팀원은 과거 마케팅/홍보팀장 아래에서 잠시 같이 일했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한다는 이유로 제가 오기전에도 종종 그런 부탁들 받고 마지못해 해왔다고 했습니다


2) 하루는 국내영업을 총괄하고 (해외영업 전문성은 없지만) 명목 포지션 상 저의 상관이시기도 한 영업이사 G께서 일과시간이 다 끝나갈 때 즈음 팀원 W에게 ‘너 당첨, 오늘 나랑 같이 좀 가자.’라 하셨습니다. 저는 놀라서 무슨 일이신지 물었습니다. 오늘 중요한 영업 미팅 겸 술자리가 있는데 W를 데리고 가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W는 이미 체념한 얼굴이었습니다. 제 표정이 어쩔 수 없이 일그러지는 걸 눈치채셨는지 그는 저를 따로 조용히 불러 내셨습니다. "C팀장 내가 자네한테 먼저 허락 안 받고 W ‘가져간다’고 기분나빴나? 허허 미안하네. 원래 영업이라는게 그래 술자리에 양기만 있으면 재미도 없고 될 일도 안되거든. 예전에 W 사진을 한번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꼭 데리고 오라고 하더라고. 걱정마 내가 뭔일 안나게 잘 지켜줄게. W도 나랑 그런자리 또 몇번 가봐서 익숙할거야 그 친구가 그런 술자리가면 싹싹하고 술도 잘따르고 사람들한테 잘해. ".. "아 언제한번 우리도 좋~은 데 한번 가자. 시원하게 내가 쏠게" "사실, 여자는 왜 회사를 다니는지 모르겠어. 나이 한살이라도 어릴 때 이태원에 가서 앉아있어야지, 시집 잘가게"


3)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새로 출시되는 제품/서비스의 해외영업/마케팅을 위해 그 서비스 명칭을 짓고 브랜딩을 하라는 과제를 부여 받고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우리 팀은 좀 더 객관적인 접근을 위해 우리가 이미 진출해 있거나 진출하고자 하는 해외 시장의 공중/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후보군들이 도출되었습니다. 사장님을 포함한 경영진께도 틈틈이 보고 드렸고 그 과정에 만족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선택지를 좁혀가던 도중 팀장급 이상 전략회의에서 사장님께서 갑자기 기존 모든 프로세스를 뒤엎는 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 C팀장님. 그 서비스명 관련해서 내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최고다’ 어떤가요? 이거 아주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그걸로 하시지요.” 과제는 종료되었습니다.


상효이재)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셨고 그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그만두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C, 前 N社 해외영업 팀장)


1-A) 전 홍보팀장에게 정중히 타 팀 직원에게 업무협조를 부탁할 때는 그래도 담당 팀의 리더인 제게 상의해달라 부탁드렸고, 이번 건은 더욱이 공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성격의 지원은 아니므로 거절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E가 말했 습니다. “아 팀장님, 홍보일을 안해보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 이런거 이상한거 아니에요.  다 기자관계 연장선상이고 이전까지 M이 기꺼이 도와주던 일인데 좀 아쉽네요. 우리 회사가 일하기 좋은 회사로 선정된게 뭐 그냥 된거인 줄 아세요? 네네 뭐 다른 직원 찾아보죠.”


2-A) 영업이사 건은 좀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대체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상사의 지시니까 조용히 따르면 되나?’ ‘차라리 나보고 따라오라 할것이지..’ 난처했습니다. W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팀장님 솔직히 매우 불쾌하고 간혹 수치스러울 때도 있어요, 근데 정말 그런 것 까지가 제가 해야 할 일 맞나요?’ 이번에도 역시나 정중히 영업이사님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사님, 죄송합니다만 W는 보내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W의 R&R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더욱이 그런 자리는 본인이 느끼기에 좀 불쾌하거나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자리이기에 위험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저와 같이 가시는 건 어떠신지요?’ G가 말했습니다. ‘이 친구 꽉 막혔네. 자네 전직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일했나? 자네가 나오겠다고? 참네 가슴달고 나오든가. 그리고 같은 영업인데 니 일 내일이 어딨어. 해외영업이라고 고상한 척 하는 건가? 참 사람을 이상한 사람 만드는 구만. W,이거 그전까진 끽소리 안하고 잘만 따라 나서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나? 이래서 여자는 믿을 게 못된다니까.’


3-A) 서비스 명에 대해선 사장님께 따로 찾아갔습니다. ‘사장님, 좋으신 의견입니다. 다만 저희가 지금까지 추진한 과정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사장님께서 최초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근거기반의 어프로치였고 유의미한 진전이라 평가하시기도 하셨는데, 이게 갑자기 뒤집어 지면 고생한 직원들이 조금 허탈해하지 않겠습니까?’ 사장님께서는 일순간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핀 후 짧은 한숨과 함께 짧게 한 말씀하셨습니다. ‘C 팀장님, 원래 항상 그런 식으로 일하시나요? 그냥 하세요.’


.. 저는 그날 회사가 자랑하는(조직문화를 상징하는) 화려한 사내 까페에 멍하니 앉아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이상하다’고 느끼는 내가 정말 ‘이상한’ 것인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상효이재) 답답하셨겠군요. 혹시 HR 팀장 K와는 상의해 보셨습니까?


C, 前 N社 해외영업 팀장) 


 네. 물론이죠. 하도 답답해서 HR팀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래도 과거 지원시기부터 오랫동안 컨택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었고, 조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해서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한참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HR팀장이 말했습니다.

 
  "에고 C팀장님 관점에선 마음고생이 좀 심하셨겠네요. 영업이사님은 알고보면 심성이 착하신 분인데 좀 표현이 좀 과격하셔서 종종 상처받는 직원이 있긴해요. 저도 그 부분은 한번 말씀드리고 싶은데 사실 이 회사의 창립초기 멤버 중 하나시거든요.. 사장님이 굉장히 아끼시는 임원이세요. 제가 HR팀장이라지만 아무 힘이 없어요. 그런데 정말 나쁜 분은 아니니 C팀장님께서 먼저 술도 한잔 하자고 하시고 한번 풀어보세요.."


  "..E팀장님도 주변에서 워커홀릭이라 할정도로 일을 사랑하시는 분이에요. 아마 좀 더 일을 잘하려고 하시다 보니 그런 부탁까지 한 것 같네요. 사실 지금까진 별 문제 없던 일인데.. C팀장님을 배제하고 M에게 일을 시킨 건 좀 그랬네요. 제가 E랑 친하니까 언제 술 한잔 하면서 좀 신경 쓰라고 한마디 할게요.."


 그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과 무슨 일 있으셨어요? 제가 대뜸 사장님께 혼이 났어요. C팀장님 일하는 방식이 왜 그렇게 독선적이냐고, 확인 제대로 했냐고.. 그런데 사실 다른 팀장들로부터도 좀 여러 얘기가 들리거든요.. 팀장님이 너무 뻣뻣하고  괜히 팀원들 듣기에 좋은 말만 해서 자기정치, 인기관리 한다는.. 제가 조금 부탁 드릴게요. 조직이 100% 좋은 회사가 어디있겠어요. 오셔서 맘에 안드시는 부분도 있겠지만 너무 부정적으로 사고하시 마시고 좋은 점을 봐주세요. 솔직히 우리회사만큼 좋은 회사가 어디 있겠어요. 가족적이고 복장도 자유롭고, 출퇴근도 어느정도 자유롭고, 인테리어나 사내 까페 같은 복지시설도 빵빵하고. 팀장님 오셔서 열심히 일하시는 거 저는 진짜 잘 아는데 그래도 너무 진지하게 심각하게 모든 걸 생각하지 마세요. 즐기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상효이재) 그 상담이.. 도움이 좀 되셨나요?


C, 前 N社 해외영업 팀장)


솔직히 말해서, 전 오히려 K와의 대화에서 무너진 것 같습니다. 그나마의 기대마저 상실했다고 해야할까.. 솔직히 무형의 정신병원에 제가 갇힌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이상하든 이 조직 전체가 어떤 이상한 기운에 사로잡혀 있든 둘 중 하나는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는 내가 이상한 것이리라 되뇌었습니다. 1년도 채 못되어 겉으로 보기에 아주 멀쩡하고 유망한 회사를 단지 이런 이유들로 그만둔다.. 생각하면 누가 이해할까 싶었습니다. 그리 생각하니 어느 순간은 정말 제가 이상하다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순응하자..순응하자..’ 수없이 중얼거리며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상효이재) 참아보시기로 한 것 같은데.. 왜 결국 회사를 나오시게 된 것인지요?


C, 前 N社 해외영업 팀장)


 그런 일련의 사건들 이후 회사에서 저를 좀처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그렇게 느꼈습니다. 사장님의 그 말씀 한마디 이후 저를 향한 조직의 기류가 순식간에 뒤집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더 이상 제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나 논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 팀원을 따로 불러 그 팀원에게 과제를 주셨습니다. 혹은 제 역할/책임의 과업이 잘 진행된 것인지 아닌지를 본디 평가권이 없는 다른 인접 팀장에게 평가하고 수정/보완하라는 지시도 내려왔습니다.


 홍보팀장 E와 영업이사 G는 마치 보란듯이 저희 조직의 팀원들에게 경계가 애매모호한 업무(?)를 부여했습니다. ‘사장님께도’ 말씀 드렸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사장님께 당장 이라도 정말 그러셨는지 여쭙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저 스스로 제가 혹여 조직의 ‘불만’ 꾼으로 비춰지지 않을지 ‘자기검열’하기 시작했습니다. 팀장들 사이에선 제가 오자마자 인기관리, 자기정치를 하다가 사장님께 팽당했다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퍼졌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이 시간도 언젠가 지나겠거니 하며 눈감고 귀와 입을 닫고 버텼습니다.  그러다 사직을 확고히 결심한 것은, 일전 영업이사의 부당한 지시를 겪었던 여성팀원 W의 사직서 때문이었습니다.


짐작했던 것보다 W는 많이 곪아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팀장님, 전 여기가 첫 직장이에요. 작지만 비전이 있어 보였고 제가 좀 더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 같았고 실제 그렇다고 만족하며 열심히 일하던 때도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와 다짐한 게 있어요.."


 "..월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출근이 설레는 사람이 되자. 조금만 더 부지런하고 조금 더 몰입하자.. 상사들께 좋은 평가도 받고 승진도 하고 나름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구나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지난주 아침 눈을 떴을 때 정말 회사에 나오는 것이 끔찍하게 싫은 거에요. 언제부턴지 모르게 감정이라는 것을 닫고 살다가 제가 인지한 감정이 ‘끔찍하다’는 감정이라는 사실이 무척 당황스러웠어요. 아프다는 핑계로 팀장님께 휴가를 며칠 내고 찬찬히 생각해 봤어요. 문제가 뭘까.."


 "그냥 생각해보면 천천히 무뎌진 것 같아요. 지난번 영업이사님께서 저녁 술자리에 절 데리고 가시려 했던 것 기억하시죠? 다행히 팀장님께서 막아 주셨었지요 고백하자면 그런 행위가 명백한 잘못이라고 얘기해주신 것은 팀장님이 처음이었어요. 사실 입사해서 그런 유사한 일들로 저 많이 힘들고 울기도 많이 울었거든요. 그런데 주변에 말을 해도 그건 여자가 사회생활 하려면 겪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네가 성장하려면 어느정도 경계가 애매모호한 성희롱적/ 성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웃고 넘길 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이 다였어요. 회사 내 여자선배들조차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래?’ 라는 식이었죠. 다른 부당함에 대해 얘기해도 리더들로부터 돌아오는 궁극적인 대답은 항상 하나였어요. ‘그래도 우리 회사가 얼마나 좋은 회사인데.'.."


"..몇 번은 공식적으로 회사에 문제제기하고 제대로 된 개선을 요구해보려고도 했어요. 적어도 성희롱 적인 부분만이라도. 그런데 사내 성과관리 칭찬게시판에는 언제나 제가 가해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요. 왜냐면 사내 실권자이거든요. 홍보팀장 E, 영업이사 G 서로 칭찬하고 아래 달리는 칭찬 퍼레이드는 사내 그런 이슈가 있어서는 결코 안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죠.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게 뻔하니까요.."


  "..그렇게 몇 년 지나다 보니 저 역시 익숙해지고 둔감해 지려는 찰나였어요. 그런데 팀장님이 여기서 어떻게든 신념을 지키시려고 발버둥치시고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예전의 제 생각과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거 있죠. 감사해요.. .. 알아요. 다른 회사에 가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거라는 걸. 다만 제가 손해를 보더라도 좀 더 당당 해지려구요. 저 자신에게 지금처럼 부끄럽게, 비겁하게, 영혼 없는 좀비처럼 하루하루 연명하는 생활은 하지 않을래요.."

먹먹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W, 미안합니다. 팀장으로써 제대로 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해서. 감사하는 말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 전 반대로 어떻게 든 조직에 순응해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W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면. 저 역시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짓고 좀비로 변신해 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W의 퇴사가 확정되었습니다. 우리 팀원들, 그리고 W와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던 동료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리더십 그룹은 W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W가 괘씸하다, 우리를 배신했다는 느낌이 팽배했습니다. 어떤 중간 리더는 ‘이 바닥 좁아. 레퍼런스 체크가 중요한데.. W는 별로 상관 없나봐? 똑똑한 여자는 질색이라니까.’ 실실 비아냥거리며 말합니다.


그 후로도 저는 몇 달 더 버텼습니다. 생각했습니다. 제 나름의 업무 철학과 윤리, 쓸모 없는 자존심과 정의감, 양심 등 돈 안드는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내려놓고 조직의 권력 지형도에 맞게 고개를 조아리면 꽤나 쏠쏠한 보상에 일과 삶의 균형에, 4차산업혁명 선도 기업이라는 그럴듯한 명성에.. 얻을 것이 훨씬 많아 보이는 게임이었지만. 결국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회사가 절 선택했듯, 분명 저 역시 회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여전히 제가 비겁하다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떠나질 않습니다. 전 그런 조직까지 변화시킬 자신은 없었습니다. 문제가 있어서 문제라 말하면 (그것도 두 번 세 번 자기검열 해가면서 아주 신중하고 정중히) 문제가 되는 조직에 계속해서 문제아로 남아 버틸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제 정체성을 내려놓고 철저히 동화되고 그들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더 끔찍하고 두려웠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적인 사람이었을까요? 제가 이상한 사람이었을까요?




“설득력 있게 거짓말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거짓말도 목소리를 키우다 보면 진실이 된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땐 효과가 입증된 도구적 폭력을 사용한다.. 감정 따윈 느끼지 않아야 한다. 감정이 있는 척 꾸미는 것도 성공의 고정 레퍼토리이다.”


-사이코패스 핸드북(Babiak & Hare, 2006)-



'이상(理想)'적 경력자 눈에 비친 '이상(異常)'한 조직


통합 intergration 노력의 역설


  자, 이제 C팀장의 물음에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 제가 다시한번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찌 생각하실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여러분 중 누군가는 “너무 이상적인거 아냐? 나는 저거보다도 더한 상황을 많이 겪었는데 별문제 없는데 ‘팀장’씩이나 되어 가지고 그렇게 회복탄력성이 없어서 되겠어?” 라 생각 하실 것입니다. 실제 W가 겪은 일은 ‘윤리’ 혹은 ‘도덕’에 어긋날 지언정 그것이 심각한 '불법', ‘폭력’이라 말할 수 있는 사례는 없었으니까요. 솔직히 사회는 다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사건 하나하나에 감정이입 되어 답답함, 무기력함을 호소할 지도 모릅니다. W에게, C팀장에게 "It’s not your fault"라 위로하고 싶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나름의 판단을 ‘결정’하기 전에 지난 ‘경력직 채용, 그 태도에 관하여II’에서 다룬 ‘기업의 통합’ 노력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합니다.(이 장은  ‘경력직 채용, 그 태도에 관하여II’읽으셔야 좀 더 정확한 파악이 가능합니다.) 즉, N社가 C팀장을 채용한 후 조직의 실제 맥락과 문화, 정치적 구도를 C의 관점에서 잘 이해/파악되도록 성심 성의껏 통합/온보딩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이 때 적용될 또하나의 가정은 N社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곱게 포장하고 그럴듯한 좋아보이는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들이 행하는 '문화'적 행동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통합’/온보딩 프로그램에 덧입히게 됩니다.


 아래는 N社의 공식 비전과, 앞 글 ‘경력직 채용, 그 태도에 관하여II’에서 제시드린 통합/온보딩을 위한 두가지 프로그램 프레임워크에 위같은 가정을 반영해 N社 조직의 실체적 문화를 적용한 것입니다. (아래 표의 디테일 내용을 꼭 읽어봐주시기 바랍니다.)


N社 '비전 선언'

: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파괴적 혁신을 추구한다.

: 우리는 투철한 윤리의식원칙을 향한 집념으로 정도를 걸어 업계의 귀감이 된다.


통합(intergration) 프로그램 Frame-work N사의 실체적 문화 적용


프로그램 A (Dan Cable, Francesca Gino, Bradley Staats가 실험에서 제시한 온보딩 프로그램 항목)

프로그램 B (Mark byford, Michael D. watkins, Lena triantogiannis가 제시한 통합 프로그램 항목)


자 어떻습니까? 여러분께서 N社가 '홈페이지'에서 찾던 이상적인 경력자라고 생각해봅시다.

N社의 지원자였다면? 혹은 이미 입사해 위와 같은 교육을 받았다면, 무엇을 느꼈을까요?


C팀장이 퇴사 이후 우리에게 던진 질문을 되짚어 봅니다.


"묻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이상적인 사람이었을까요? 제가 이상한 사람이었을까요?"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제 변명은 그만 내려두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존재와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리처드 탈러, 노벨 경제학 수상자-



인간, 조직은 '감정적'이다.


  본디 ‘명백히’ 있는 것을 없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요?  


 비가 많이 오는 날 차를 타고 산비탈길을 오르던 도중 산바위가 굴러 떨어져 도로 앞을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차를 잠시 세우고 ‘저 돌은 없는 거야, 허상이야.’라 되뇌고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를 힘껏 밟는 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영과 조직을 다룸에 있어 오랫동안 이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경영활동이 조직간 조직 내 인간의 상호 교류, 교감속에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제도를 구축하고 의사결정을 내려 왔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리더의 의사결정은 대부분 ‘감정’적이라는 것이지요. ‘감정’이 굴러떨어진 ‘바위’처럼 물리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오류는 좀 더 쉽게 해소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보고서를 주고 받는 한 사무실의 풍경입니다. 상사 F가 부하직원 T에게 말합니다. ‘야, XX 넌 이게 읽히니?, 발로 그렸니? 다시해와.’ ‘너 이바닥에서 레퍼런스 체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알아서 잘해.’ ‘너 너희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니? 왜 개념이 이토록 없니?’ ‘상사가 말을 하면 공손히 들어처먹어 똥씹은 표정하지 말고.’’야, 상사가 담배피러 가면 눈치껏 따라와야 될 거 아냐. 야 불! 내가 이런 것까지 가르쳐줘야 되냐?’.. 그렇게 보고서를 얻은 F는 다시 그의 상사 U에게 보고합니다. U가 말합니다. ‘어? 수고했네. 역시 자네 보고서 실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F가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력 많이 했습니다.’ F는 올해의 보고서 상을 받고, 사내 칭찬게시판에 당당히 게재되고 연말 성과급도 두둑하게 받았습니다.


 객체로서 글을 읽는 여러분께 저 상황은 분명 불편할 것입니다. 부조리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우리 조직 어딘가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조직 내에 속한 플레이어들이, 그들이 가진 시스템과 리더십으로 실제 조직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감정이 없는 ‘알고리즘’의 눈에 칭찬 게시판 피드를 상당수 차지하고 올해의 보고서상을 수상까지 하며 U로부터 항상 최고점의 평점을 받는 F는 고 성과자이자 핵심 인재입니다. 그의 언행으로 인해 조직 전체가 ‘명백히’ 큰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양적근거로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치고 또 거쳐 증명되지 않는 이상. T한명의 고발이나 퇴사로 그가 Penalty를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다고 ‘감정’이 모두에게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은 의사결정자, 조직내 권력자들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들 중 한명은 분명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조직이 다 그런 건데, 사회생활 처음 해봐? 우리 T, 회복 탄력성이 좀 약하네. 나 때는 맞기도 했는데. 그리고 내가 시간이 지나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땐 어느정도 다 이유가 있는 거야.. 한번 스스로를 잘 돌아봐. 너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잘 판단 하라구.’


  Main Story 역시 감정의 맥락을 배제한 ‘이콘’ ’ (호모 이코노미쿠스: 감정이 없고, 정확하고 논리적인 이상적 경제적 동물)의 ‘눈’ 으로는 상황의 ‘부조리’, ‘비합리성’을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애초 ‘문화’를 규정하기도 논하기도 어렵습니다. 인격모독, 성희롱, 기업 내 인권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마음’을 토대로 이루어진 개념들 이며 이 ‘마음’의 총체가 다시 한 조직의 ‘문화’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공감능력이야 말로 인간, 사피엔스의 뛰어난 지혜라 말합니다. 인간에게 생존력을 부여한 것은 기술, 지식이었을지 몰라도 그조차 ‘교감’이 없었다면 제대로 작동하거나 정교해지지 못했을 거라 분석합니다. 그는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류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감정지능’ (Emotional Intelligence)와 ‘마음의 균형’(Mental Balance)라고 말합니다. ‘인류’의 역사에 ‘기업’ 그리고 ‘기업’ 구성원이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기업은 더 이상 상상 속 ‘이콘에 현실 속 구성원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시스템을 추구해선 안됩니다. 더욱이 기업(권력) 그 자신은 철저히 ‘감정’을 향유하면서 말입니다. ‘이론’의 세계는 어떨지 몰라도 ‘현실’의 세계에서 ‘가치와 무관’하고 ‘온전히 객관적’인 독립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우리는 지금까지 분명히 존재해 왔고, 존재하며, 앞으로도 명백한 구성원 개개인의 감정, 나아가 조직 차원의 ‘감정’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역설적이게도 조직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조망할 가능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조직의 '비합리성'을 받아들이고 그 실체를 들여다 보아야 다시금 조직 구성원에게 조금 더 ‘합리적인’ 조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과학(학문)’은 과도하게 이성적인 뾰쪽귀 미스터 스포크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이성적인 부함장—옮긴이)가 들여다보는 컴퓨터 이미 지를 연상시킨다. 모든 열정이 제거된다. 학문(과학)이란 가치와 무관하 며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공식 독법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시대 사람들이 들었다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라고 혀를 찼을 말이다.”


-파울 페르하에어,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조직 내 감정 기본값(Defualt Value):'배타성'



 이제는 우리가 그동안 명백히 ‘있었음’에도 ‘없다’고 가정하거나 무시하고 운영했던. 조직의 어두운 ‘감정’, 혹은 이를 조장하는 ‘메커니즘’ 일부를 ‘경력직’ 구성원의 유입과 맞물려 조망해보려 합니다.  


 대표적인 감정이 시기/질투/열등감 등에 비롯한 적의(敵意), 즉 ‘배타적 감정’ 입니다. 성인이 되는 시점부터 우리는 시기/질투의 감정을 어떻게든 숨깁니다. 명백히 ‘유치하고 미성숙’해 보이기 때문에, 인정하기엔 부끄러운 감정 이라고 생각합니다. 짐짓 없는 것으로 치부합니다. 그 ‘감정’이 조직 경영에 공식적으로 반영되거나 관리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의 장벽은 그와는 정반대로 너무도 당연하고 보편적이며, 실체적으로 광범위 하게 조직에 퍼져 있습니다. 케츠 드 브리스(Manfred F.R. Kets de Vries)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리더를 포함해 거의 모든 직원은 사내에서 시기/질투를 숨기기 위해 온갖 자기 기만 행태를 벌이지만 결국 어느 상황에서나 고개를 든다..  시기/질투는 매우 파괴적이다.”


조직의 배타적 감정 기류는 조직외부에서 새로운/낯선 사람이 진입했을 때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원초적 감정과 만나 좀 더 증폭됩니다. 경력자가 회사에 오기도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누군가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든 과장/왜곡 되어 구성원에게 선입견을 심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업무 동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예컨대 ‘스타’ 가 온다는 소식은 ‘처우’의 ‘차별’과 같은 소문을 낳고(기존 직원들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고 데려온다) 그것의 진실 여부를 떠나 조직의 응집력을 저해하는 실체적 위협이 됩니다. 누군가 의식적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많은 구성원은 미소를 띠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닫고 ‘대체 얼마나 잘하나 보자.’, ‘어떻게 하나 보자.’라는 냉정한 방관자로 경력자를 맞이합니다.


 심지어 이러한 사전 오해가 없더라도. 단지 우리와 조금 다르거나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거나, 우리 조직 고유의 용어를 잘 못 알아듣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력자는 충분히 기존 조직구성원의  ‘짜증’과 ‘불평’을 유발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비합리적인 ‘텃세’를 낳습니다.


 경제학자 로베르토 베버(Roberto A. Weber) 와 콜린 캐머러(Colin Camerer)는 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피험자들의 컴퓨터 스크린에 16개의 사무실 장면이 담긴 화면을 담았습니다. 피험자들은 무작위로 두명 씩 짝지어 각각 ‘관리자’와 ‘종업원’ 역할을 맡았습니다. 관리자들은 종업권들에게 순서대로 여덟 장면의 내용을 인스턴트 메시징으로 전달했습니다. 각 종업원은 관리자가 묘사하는 그림을 찾아냈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20회 반복한다는 이 모두를 끝낸 시간을 기준으로 돈을 받았습니다.


 20회가 진행되면서 구성원은 업무 속도를 좀더 빠르게 하기위해 자연적으로 그림을 설명하는 그들 만의 ‘약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베어와 캐머러는 이것이 일종의 미시적 문화(Micro Culture) 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종업원을 투입했습니다. 이후 관리자로 하여금 부하직원 두 명에게 동시에 여덟 개의 장면을 요구하라는 묘사를 받았습니다. 관리자들은 그 두 가지 임무를 해내는 평균 속도에 따라서 돈을 받았기 때문에 대부분 원래 부하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한 ‘약어’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그러자 새로 합류한 종업원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 약칭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끼리의 감정적 오해가 발생하고 갈등 양상이 관찰되었습니다. 실험자들은 여기에 종업원 한 명을 더 추가했습니다. 팀에는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실험 후 설문조사에서 최초의 종업원은 새로운 종업원 그룹에 비해 관리자에게 후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관리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들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인정하면서도 조사결과엔 감정이 드러났습니다.


베버와 콜린 캐머러의 실험은 조직 내의 모든 사람이 똑 같은 목표를 추구하더라도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불신의 문화로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또한 조직 구성원이 의사소통 과정에서 갖게 되는 ‘감정’, 그렇게 구성된 ‘문화’가 얼마나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를 추적하게 해준다는 관점에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 속 독한 시기와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해 교만하지 않기를. 진실을 거스르지 않기를.”


-야고보서 3:14-


“동료는 기껏해야 같이 ‘시스템’을 욕하는 남이 되고.. 서로를 두려워하는 경쟁자가 된다.. 결국 낮은 수준의 도덕만 남는다.. 낮은 수준의 품성은 부정적 정서를 동반한다. 그런 기업에서 일을 하면 병이 든다.”


-파울 페르하에어,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메타인지(Metacognition), 장애물, 그리고 리더십


 만약 관리자가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였음에도 갈등이 촉발되지 않고 문제 해결 속도는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의 실험은 여기까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유사한 맥락을 다룬 심리학자들로부터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심리학 자들은 위와 같은 감정/문화적 이슈에 대한 문제해결 방안이 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로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는 결코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벌써 한세기 전, 1970년대 발달심리학자 존 플라벨(J.H.Flavell)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인지 너머(beyond)의 인지’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생각/감정 등 인지적 활동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발자국 떨어져서 조망하고 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 실험에서, 관리자가 새로 들어온 종업원에 ‘짜증’을 느꼈다면, ‘짜증’을 내기 이전에 ‘짜증’ 이 난 원인/이유, 그 맥락을 조망하고 향후 ‘짜증’이 날 수 있는 조건을 조율하고 어떤 Rule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메타인지가 작동한 새로운 Micro-Culture를 생성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메타인지는 학습과 지식 개발 영역에서는 이미 널리 강조되고,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친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감정’ 의 영역에 있어서는, 특히 경영 조직 활동 내에서 이뤄지는 집단적 감정과 문화에 관해서는 여전히 제대로 다뤄 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뤄지더라도 역시나 기업내 지식과 기술 축적에 관한 부분이나 리더십 ‘교육’에서 스치듯 다뤄질 뿐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서두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주류 ‘경영’은 ‘감정’을 인정하는 것 자체에 서투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 스스로가 이미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스트레스 및 불안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킵니다. ‘방어기제’ 모두가 병리적인 것은 아니 지만 전문가들은 ‘방어기제’ 역시 우리가 ‘메타인지’적으로 이해하지 않는 이상 미성숙하고 신경증적 방어기제를 방치할 위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셋째는 이 문제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기업(그것도 한국)이라는 ‘특수한 조직’으로 차원을 달리 (확장)하는 과정에서 증폭되는 복잡성과 조직 메커니즘 때문입니다.


세번째로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기업’은 얼핏 굉장히 체계적이고 또 공적영역 조직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일 것 같다는 느낌을 우리에게 주지만, 실상은 거버넌스 상 ‘리더십’과 ‘권위’에 근본적으로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생이 ‘민영’이기에 국가의 삼권 분립 체계(그 마저도 잘 작동할까 싶을 때가 많지만)와 같이 조직내 다양한 다이나믹스를 창출하고 또 소화하는 실질적 견제/논의 장치 마련이 어렵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집단 문화는 여전히 리더십의 권위에 강하게 의존하고, 또 집단적이며, ‘문제’를 직접 대면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을 가지기에.(아래 그림 참조) 조직 차원에서 ‘메타인지’를 발휘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권력, 보스(리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문화

높은 권력 의존도(X축, OECD 국가 비교), 보스의 권위가 매우 큰 문화

집단주의적, 문제는 돌아가려는 문화

집단주의적(Y축, OECD 국가비교), 문제는 돌아가려는 문화

 1) Hofsted’s Findings on Individualism and Power Distance

 2) Yang Liu, Infographic


결국 기업의 ‘메타인지’에 대한 ‘가능성’의 시선은 결국 ‘리더십’으로 향합니다.  


‘리더십’의 의지가 곧 기업에 ‘메타인지’가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프로토콜’ 구축을 가능하게 하고, 또 ‘리더십’의 실천이 ‘시스템’/’프로토콜’의 실체적 작동을 담보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리더십'의 부재가 모든 '시스템/프로토콜'과 그 실체적 작동을 매우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메타인지’를 키우는 첫걸음은 ‘메타인지’에 대해 먼저 이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메타인지’를 막는 장애물에 대해 ‘메타인지’적으로 인식해 보는 것입니다.


'문화적 메타인지’를 구축하는 Key가 결국 ‘Leadership’에 있다는 우리의 논증에 혹여 동의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의 조직과 리더십을, ‘메타인지’ 적으로 조망하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조직리더의 문화적 ‘메타인지’를 막는 대표적 감정/심리, 그에 비롯한 악순환적 메커니즘을 다루고 이 글을 마무리할 까 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조직의 나르시시즘(Narcissism)



“모든 직원들은 절약하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다. 하지만 정작 엄청난 돈이 쓸데없는 일에 낭비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다. 새 이름과 그에 걸맞은, 하지만 누구도 믿지 못할(“우리는 당신을 위해 여기 있습니다!”) 슬로건을 생각해낸 자문 위원, 혹은 새로운(전문가들에게서 절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뿐더러 비용도 예상보다 두 배는 더 들 거라는 경고를 받은) 회계 프로그램을 개발한 자문 위원에게 포상금이 쏟아진다. 최고의 간병 인력, 중점 연구, 전문가 집단 같은 미사여구를 폭탄처럼 쏟아 붓는 것도 이들의 증상 중 하나이다. 정신과에선 그런 식의 증상에 나르시시즘적 인격장애라는 진단을 내린다.”


-파울 페르하에어,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대학시절 그는 매우 겸손했다고 합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공격적인 성격도 아니었습니다. 방어적인 성격에 가까웠습니다.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최고의 명문 대학에 입학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지역 은행에 입사했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첫 직장은 높은 성과를 보인 그를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시켰습니다. 이후 그는 컨설팅 회사를 거쳐 거대 에너지 기업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최고경영자(CEO)가 되었습니다. 언론의 평가는 찬양 일색이었습니다. 그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더할 나위 없이 똑똑하다.’고 했고 비즈니스 위크는 ‘산업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승승장구할수록 그의 성격은 변해갔습니다. 거만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부하직원을 사람이 아니라 물건처럼 다룬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냉혹 하고 위선적이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겸손했던 그가 왜 변했을까요? 그리고 그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훗날 정신심리학자들은 그의 행위가 전형적인 ‘나르시시즘적 성향’을 보였다 진단 했습니다. 정말로 본디 그의 성격이 그렇지 않았다면, 결국 그를 나르시시스트로 만든 것은 ‘권력’의 영향이 컸겠지요.


나르시시즘적 성향의 특징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


1.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정도가 지나침

2. 성공, 권력, 탁월함,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람 등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음

3. 나 자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기에 오직 소수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그런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고 믿음

4. 타인의 인정을 지나치게 갈망

5. 비합리적이며 과도한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음

6. 다른 사람을 쉽게 착취하려 함

7.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의도적이기도 함)

8. 교활하고 거만하다는 평가를 받음


 이에 대해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 아일랜드 트리니티칼리지 심리학과 교수는 리더가 되면서 그가 얻게된 권력이 뇌의 화학적 작용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권력을 가지게 되면 뇌에서 도파민 수치가 높아집니다. 도파민은 사람을 똑똑하게 하고 목표에 집중하게 하지만 냉혹하고 위선적인 성격으로 변화시키며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위의 교훈은 리더가, ‘리더’로서의 ‘권력’을 갖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쉽고, 때문에 ‘메타인지’적으로 사고하기 힘들어진다는 우울한 결론을 시사합니다. 더욱이 저 사례는 ‘극적’이지만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실제 매우 작은 권력에도 사람의 뇌는 영향 받으며 따라서 보스는 언제나 위선적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1971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진행된 한 실험은 그 잔인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실험자들은 평범한 대학생 24명을 모집했습니다. 무작위로 ‘죄수’와 ‘교도관’역을 부여하고 대학 심리학 건물 지하에 있는 가짜감옥에서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구성원들은 자신이 진짜 교도관이 아니며 단순히 ‘실험’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막상 생활이 시작되자 ‘진짜’ 교도관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혹행위도 벌어졌습니다. 실험은 황급히 종료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르시시즘적 장애와 관련해 우리가 좀 더 큰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이 병리현상이 종종 단순히 몇몇 ‘개인’을 넘어 ‘집단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흔히 ‘광신도 종교집단’ 정도를 떠올리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당히 많은, 그것도 겉에서 보기에 매우 ‘잘나간다’고 하는 기업들에서. 심지어 매우 평범한 대다수의 기업들까지. 이러한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Main 사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언급된 등장인물의 대부분 이 이런 경향을 보입니다. 사장, 영업이사 G, 홍보팀장 E 뿐 아니라 조직에서 상대적 으로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래서 C팀장이 마지막까지 믿었던 인사팀장 K마저 동일한 증세를 보입니다.


 기업 밖에서 행했다면, 필히 엄중한 문제로 인식되었을 행위에 대해 그들은 매우 작은 것으로 치부해버립니다. 나아가 문제자체에 대한 인식을 거부합니다. 앞선 테이블에서 보여드렸던 바와 같이 그들이 ‘표방’하는 문화와 조직의 ‘실체적’ 문화에 극적인 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가 얼마나 좋은 회사인데..’ 라는 ‘자긍심’이 가득합니다. 이런 조직에서 문제제기하는 사람은 ‘쓸데없이 부정적인’ ‘조직의 화합을 망치는’ 불순분자로 낙인 찍힐 뿐입니다.  


아무리 ‘진짜’ 문제를 이야기해도 그들의 눈에 ‘문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를 말하는 사람만 '문제'로 보일 뿐입니다.


 특히 외적으로 급격히 성장하거나, 미디어를 포함해 주변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기업, 조직 내 힘이 있는 파벌, 그 중에서도 정치적 ‘승리’를 쟁취한 내 그룹(In-Group, Inner Circle) 등은 그들의 ‘성공’ 경험과 그로 인한 ‘자신감’이 어느 순간 도를 넘어 ‘집단적 나르시 시즘’과 같은 광기로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엄격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매우 힘들 것이지만... 말이지요.)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후천적인 나르시시즘의 근저에는 (그것이 개인의 나르시시즘 이든 집단적 나르시시즘이든 간에) 늘상 ‘불안’과 ‘긴장’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미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Christoper Lasch) 는 ‘나르시시즘의 문화’에서 나르시시즘이 ‘현대 사회의 필연적 병리’라 진단합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나르시시즘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새로운 나르시시스트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타인데 대한 의존의 두려움, 결합된 타인들이 제공하는 대리적 온정에 대한 의존, 내면적 공허, 무수히 억압된 분노, 그리고 충족되지 않는 갈망, 위장된 자기통찰, 계산적인 유혹, 신경질적인 특성을 보인다.”


2016년 유럽성격저널(European Journal of Personality)에 실린 집단적 나르시시즘에 대한 연구(Collective Narcissism Predicts Hypersensitivity to In‐group Insult and Direct and Indirect Retaliatory Intergroup Hostility) 역시 집단 나르시시즘에 빠진 조직의 구성원은 사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연구팀이 각 개인의 실질적인 ‘자존감’을 측정한 결과 집단적 나르시시즘 경향을 보인 조직 구성원은 오히려 상대적 으로 자존감이 낮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집단 나르시시즘 역시 집단 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불안감과 불확실성, 집단 구성원의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하는 피상적이고 과장된 자신감에 불과하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메타인지’를 막는 가장 강력한 ‘감정/심리’현상으로 ‘나르시시즘’을 제시한 것은 이 모든 연유 때문입니다. 우리의 ‘적극적’ 의지와 관계 없이, 우리 주변의 매우 자그마한 ‘권력’으로 인해, 현대인/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안고 살아가는 ‘불안’과 ‘긴장’의 문화로 인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누구라도 언제든 눈과 귀가 닫힌 괴물이 될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현대의 메커니즘은 본디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인 ‘거울’(메타인지)마저 또 다른 ‘덫’으로 삼아버릴 수 있다는 점을. 우린 잊어선 안됩니다.  


..아, 앞선 기업의 CEO는 누구냐구요? 엔론의 전설적(?)인 CEO 제프리 스킬링입니다. 현재 그는 감옥에 있습니다. 그리고 엔론은 그와 함께 침몰, 파산했습니다.



“현대인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외모에서부터 능력과 노력 등까지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혐오한다. 스스로가 취할 정도로 매혹적이지 못한, 그래서 ‘남들처럼’ 취할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에 빠지는 것이다.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은 누구보다 자신을 가꾸어야 하고 자신을 염려해야 한다. 매일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를 ‘계발’하고 ‘관리’해야 한다. 자신을 매혹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불안과 긴장이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에 비친 나에 만족하지 못해 학대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면서까지 아름답고자 노력하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진다. 나르시시스트가 자기성찰을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거울’이 이 시대에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에게 매혹되는 장치로 배치되어 우리를 옥죈다.”


-엄기호,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집단 침묵의 심리학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


-토마스 그레샴, 그레샴의 법칙-


 

 집단의 일부가 한번 (주로 권력이 있는 그룹을 중심으로) ‘나르시시즘’적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면 제대로 빠져 나오는 것은 요원하고 오히려 순식간에 조직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강력한 이유, 촉매가 있습니다.


조직의 ‘침묵’ 때문입니다. 학계 용어로 조직 침묵(Organizational Silence) 혹은 임직원 침묵(Employee Silence)이라고 불리는 이 특유의 집단적 ‘침묵’현상은 ‘조직의 상황에 대하여 개별 구성원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개인의 행위적, 인지적, 정서적 이유로 인해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Pinder&Haelos)을 뜻합니다.


침묵조직의 나르시시즘은 강화하고 메타인지는 약화시킵니다. 조직 내 ‘병리’로서의 ‘나르시시즘’은 주로 권력, 주류 집단에서 발현되는 경향이 많고, 이에 대해 구성원은 침묵합니다. 혹시라도 침묵을 깬 소수의 누군가는 ‘나쁜’ 혹은 ‘틀린’ 사람으로 간주되어 배제됩니다. 그것을 본 구성원은 더욱 침묵합니다. 그리고 그 중 다수는 어느덧 주류가 생산한 ‘나르시 시즘’에 의식/무의식적으로 ‘동조’합니다. 그렇게 ‘나르시시즘’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조직의 ‘메타인지’ 불씨는 사그러듭니다.


조직 침묵(Organizational Silence) 효과*


1. 조직 내 정보소통을 약화시켜 관리자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2. 조직 내 개방적인 토론을 막아 조직의 창의성을 저하시킨다.

3. 조직 내 발생하는 부조리를 묵인하게 한다. (Beer & Eisenstat)

4. 조직 내 특정 사안에 대한 침묵 행동으로 향후 더 많은 사안에 대해 침묵하게 한다.


상효이재) 조직 침묵의 가장 무서운 특징은, 마지막으로 언급한 ‘전이성’에 있습니다. 한번 시작된 침묵은 점점 그 범위를 넓혀 거의모든 사안에 대해 구성원이 침묵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감정은 전염됩니다.


*Milliken & Morrison(1,2,4), Beer & Eisenstat(3)


 조직 침묵은 거의 모든 조직-특히 한국기업이라면 더더욱-에 도사리고 있을 정도로 매우 광범위하고 강력합니다. 그렇다고.. 어떤 기업 리더께 말씀 드렸을 때 그분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말도 얼핏 듣기에는 일리 있어 보입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 직원들은 말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도 뒷담화요. 너무 이중적인 것 같아요. 겉으로는 웃는 척, 다 좋은 척, 상냥한 척 하면서 뒤로는 회사에 대한 불만, 사람에 대한 불만을 쏟아 냅니다. 들리는 말이 너무 많아요. 옛말에 ‘침묵은 금이다.’ 라 하지 않았나요? 요즘 직원들은 다들 너무 자기만 생각해요. 이기적입니다. 좀 참고 침묵하면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면 어련히 조직에서도 예뻐하고 알아 줄텐데, 꼭 그렇게 말 많은 친구들이 자기 할 일은 하나도 못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경영 리더께서 말씀하신 사안은 사실 ‘조직 침묵’ 이 가진 전형적인 특징이지 이를 부정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조직 침묵은 엄밀히 회사 내 ‘공(식)적인 소통의 장’에서의 ‘침묵’을 의미합니다. 구성원이 회사 내 공식적인 소통채널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수면 아래의, 때로는 건강하지 못한 채널이 대신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부작용으로 회사의 비공식 의사소통 통로에서 건강하게 자리하던 ‘친사회적 침묵’이라는 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조직 구성원의 침묵은 어쩌다 우리 기업의 ‘전형’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 역시 매우 다양해 보입니다.


 조직침묵 분야의 전문가 Van Dyne & Boteoro는 부정적 조직 침묵의 유형을 ‘체념적 침묵’과 ‘방어적 침묵’으로 구별했습니다. 체념적 침묵은 구성원이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단념하거나 회의를 느껴 자신의 발언은 조직의 변화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수동적 태도에 기인하여 선택되는 침묵입니다. 방어적 침묵은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발생되는 부정적 결과나 피드백을 우려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능동적 태도에 기인하여 선택되는 침묵 행위 입니다.


 ‘조직 내 침묵 현상’이라는 LGERI Report는 학술논문 근거와 우리나라의 문화적 요인을 정리해 조직침묵의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이를 준용하되 우리의 관점을 조금 덧붙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구성원은 커뮤니케이션 상에서 받게 되는 감정적인 손상이나 스트레스를 회피하기 위해 침묵합니다. 이는 특히 리더의 소통능력이 떨어질 경우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Main Story 상에서 영업이사 G나 홍보팀장 E가 내뱉은 언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럴 경우 구성원들은 모욕감이나 무시 받는 기분을 느끼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소모적인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피드백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발생해 결국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둘째, 말을 해봤자 반영도 안되고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란, 내 의지로 통제나 제어가 안된다고 생각하여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Main Story 상에서 퇴사를 결심한 W의 심리에 해당합니다. W는 메타인지적 사고를 바탕으로 조직의 문제점과 자신의 상황을 인식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조용히 자신이 퇴사하는 결심을 했습니다.
 
 “몇 번은 공식적으로 회사에 문제제기하고 제대로 된 개선을 요구해보려고도 했어요. 적어도 성희롱 적인 부분만이라도. 그런데 사내 성과관리 칭찬게시판에는 언제나 제가 가해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요. 왜냐면 사내 실권자이거든요. 홍보팀장 E, 영업이사 G 서로 칭찬하고 아래 달리는 칭찬 퍼레이드는 사내 그런 이슈가 있어서는 결코 안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죠.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셋째, 구성원은 조직 내 배신자 혹은 비주류로 찍히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침묵합니다. 조직의 나르시시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경우에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됩니다. 구성원은 집단 속에서 관계적 갈등을 형성하게 되면 결국 나만 피해자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결국은 대다수의 의견에 대한 비자발적 동조를 침묵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집단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Main Story 상 C 팀장이 겪은 일련의 과정을 돌아보십시오. 상식적이고 건강한 사고에 기반한 ‘목소리’라 할지라도 그것이 조직의 관습, 논리에 반하는 것이라면 배척되고, 조직은 그에게 비공식적인 보복을 가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다수의 구성원은 입을 더욱 굳게 닫거나 C의 반대편에 서서 ‘그가 이상한 것’으로 동조해 버립니다.


Main Story 좀 더 들여다 보기


다수의 구성원이 어쩌면 동일한 ‘피해자’일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C’의 반대편에 서서 함께 그를 비토한 것은 심리학적으로 ‘동조 현상’에 가깝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습니다.


[막대기 길이에 대한 오답 실험]


심리학자 Solomon Asch는 하나의 막대기를 제시하고 이어 길이가 각기 다른 세 개의 막대기를 제시한 후 처음 제시한 막대기와 동일한 길이의 막대기를 피실험자가 알아맞히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실험은 약 7~9명이 참가하여 원탁에 둘러앉도록 하고, 진짜 실험 대상자는 제일 마지막 자리에 앉혔습니다. 진짜 실험 대상자를 제외한 다른 참가들에게 일부러 동일한 오답을 말하게 한 후, 진짜 실험 대상자가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평균적으로 3명 중 1명이 앞서 참가자들이 답한 오답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들은 답이 틀렸음을 알았지만, 집단의 잘못된 견해에 동조했습니다. 이 때 집단의 압력이 더 강해지면 동조하는 비율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넷째, 어떤 구성원은 피해를 두려워하기 이전에 주류 집단 혹은 상사에 ‘좋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침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구성원이 내집단(In-group)에 속하지 못하고 외집단 (Out-group)에 속해 있다면 예상과 달리 그들은 더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내집단 사람끼리는 서로 관대하게 평가하고 친근함의 강도가 높지만 외집단 사람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외집단에 속해 있지만 내집단으로의 편입을 원하는 구성원은 설령 동조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침묵’함으로써 그들의 논리와 문화를 암묵적으로 ‘긍정’하게 됩니다.


 다섯째, 연구원들은 말을 아끼고 침묵하는 것이 미덕이자 예의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사회문화적 특성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미국에서는 상대가 누구든 커뮤니케이션 할 때 침묵을 하면 이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위로 인식하고 이를 매우 무례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들에게 의견을 말하는 것은 ‘말대꾸’로, 예의에 매우 어긋나는 행동이라 배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Power Distance, Indivisualism Index와 Infographic] 역시 이러한 우리 고유의 수직적/ 문화적 경향을 나타내는 근거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겉으로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며, 자유롭게 의사소통’하자고 하면서도 하위 구성원은 ‘반론’을 이야기하는 것에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고, 상위 구성원은 ‘권위적이며’ 이에 반하는 언행들에 ‘감정적’ 으로 반응하고 마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긴데 위로 스크롤하기 짜증나실까봐 다시한번 복붙합니다.)


권력, 보스(리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문화

높은 권력 의존도(X축, OECD 국가 비교), 보스의 권위가 매우 큰 문화

집단주의적, 문제는 돌아가려는 문화

집단주의적(Y축, OECD 국가비교), 문제는 돌아가려는 문화

 1) Hofsted’s Findings on Individualism and Power Distance

 2) Yang Liu, Infographic


 마지막으로, 이 모든 소모적 억제로 인한 '자아고갈 현상'(Ego depletion)이 조직의 '침묵' 문화를 강화시킵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 교수에 의하면 자아고갈 현상은 억지로 무언가를 하도록 하게 만들면 욕구를 억누르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하는 데 에너지를 대부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할 심리적 힘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자아고갈 현상이 강제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경우 못지않게 그저 단순하게 감정을 억누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유사한 정도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직 구성원을 침묵하게 하는 기제는 이토록 다양합니다. 다양하다는 것은 기업 구성원이 손쉽게 ‘침묵’의 ‘독’에 중독되기 싶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다시 그만큼 조직이 ‘나르시시즘’의 ‘우물’ 밖으로 나오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하며 이상(理想)적인 경력직이라도. 이런 조직에선 이상(異常)을 보고 탈출하거나, 그 역시 또하나의 이상(異常)한 일원으로 '변신'할 뿐입니다. 조직은 어쩌면 그의 퇴색적인 '변신'를 '성공'이라 자위할수도 있을테지요.


한편, TIME지는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을 선정했습니다. 


[] '성공'의 정의, '실패'의 이유.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


-영화 Matrix, 모피어스 대사 중-


“돈오점수(頓悟漸修), ”


-불교에서 선을 수행하는 방법 중 하나- 



앞선 경력직 채용에 대한 두 글부터 지금까지 긴 여정을 끌어왔습니다. 그 내용을 쉽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럴걸 이토록 길게 써서 죄송합니다.)


1. 경력직 채용은 장기 이식과도 같기 때문에, '속도'보다는 채용의 '질'에 초점을 맞추어서 조직에 적합한(Contextual fit), 제대로된 인재를 채용해야 한다. (경력직 채용, 그 태도에 관하여 I)


2. 적합한 '인재'를 '뽑았다고 해서' 채용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 인재가 제대로 조직에 '통합 integration' 될 수 있도록 하는 조직차원의 시스템/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력직 채용, 그 태도에 관하여 II)


3. 그런데, 당신의 조직(문화)가 애초에 '똥'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그 누가 와도 안된다. 안되는 건 안된다.

(경력직 채용, 그 태도에 관하여 III)


'채용'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일까요? 표준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을 골라서 씀.

2. 어떤 의견, 방안 등을 고르거나 받아들여서 씀


 '채용'에 대한 사전적 정의만을 놓고 본다면. 사실 '채용'의 '성공'이라 함은 정해진 수요만큼 필요한 '사람을 골라쓴 것' 자체로 성립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좀 더 양보한다고 해도 그 '골라쓴 사람'이 수습기간을 지나 갑작스러운 퇴사 없이 일정기간을 다니는 것으로 '채용'은 충분히 '성공'한 것일테지요. 그에 따른다면 사실 저희의 처음 글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무시해도 될 글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글은 더더욱 불편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이제 이야기해서 또 한번 죄송합니다.)


 하지만 모든 회사는 '공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경력직 채용'에 있어 '경력직', 특히 리더급일수록 그들의 역량이 회사에 얼마나 중요하고, 어떻게 회사와 경력자가 같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 높은 포부와 멋진 비전을 최대한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자고 말합니다.


 적어도 우리의 이번 글은 그러한 공식적인. 경력직을 향한 기업의 태도를, '선의', '진심'이라 가정하고 말씀드린 것이니, 깊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채용된 사람과 '함께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는. 곧 '채용'이 '뽑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통합'되어 함께 더 나은 조직을 만들자'는 이상(理想)이 내포된 것입니다. 조직이 그러한 태도를 '공식화'하는 이상, 우리는 '채용'의 '성공'을 사전적 '채용'에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진심으로' 우리는 그것이 '말 뿐인 거짓'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기업 역시 '진심으로', 조직 구성원이 오래오래 조직과 함께 웃고 울며 연대해 성장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바람'과 '실재'사이엔 언제나 균열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깨닫더라도', 그것을 다시 '실천'하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기에. '채용'은. 매번 '실패'하고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기업에게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도전' 이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필패' 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 하시겠습니까?


끝가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효이재 드림



“꿈은 좋은거지. 그런데 또 고통을 수반해. 다 알겠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꿈은 이루어지지 않거든. 그게 인생이다. 그러니까 또 노력하게 되는거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말이야.”

- 대학시절, 교수님의 편지 中 -





References


"on-boarding isn't enough", by mark byford, michael D. watkins, and lena triantogiannis, Harvard Business Review


"The Powerful Way Onboarding Can Encourage Authenticity", by Dan Cable, Francesca Gino, Bradley Staats Harvard Business Review


Yuval Noah Harari, 사피엔스(Sapiens), 2011


Paul Verhaeghe,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What about me? : the struggle for identity in a market-based society), 2015


Manfred F.R. Kets de Vries(INSEAD professor) 인터뷰, 조선일보, 2017


Manfred F.R. Kets de Vries, leaders, fools and impostors: essays on the psychology of leadership, 1993 


Ray Fisman, Tim sullivan, 경제학자도 풀지못한 조직의 비밀(The Org: The Underlying Logic of the Office), 2014


Hofsted’s Findings on Individualism and Power Distance


Yang Liu, Infographic


Ian Robertson(Professor of Psychology at Trinity Colleage Dublin), 인터뷰, 매일경제, 2013  


Stanford Prison Experiment, Wikipedia


 Christoper Lasch, 나르시시즘의 문화(The culture of narcissism), 1989


European Journal of Personality, Collective Narcissism Predicts Hypersensitivity to In‐group Insult and Direct and Indirect Retaliatory Intergroup Hostility, 2016


Elizabeth Wolfe Morrison and Frances J. Milliken, Organizational Silence: A Barrier to Change and Development in a Pluralistic World, The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2000


Craig C. Pinder, Karen P. Harlos, Employee silence: Quiescence and acquiescence as responses to perceived injustice, Research in Personnel and Human Resources Management, 2001


Michael Beer & Russelle A. Eisenstat, The silent killers of Strategy Implecation and Learning, 2000


Linn Van Dyne, Soon Ang and Isabel C. Botero, Conceptualizing Employee Silence and Employee Voice as Multidimensional Constructs, Journal of Management Studies, 2003


황인경, 박지원,  ‘조직 내 침묵 현상', LGERI Report, 2008


Roy E Baumeister, Ellen Bratslavsky, Mark Muraven, and Dianne M. Tice, Ego Depletion: Is the Active Self a Limited Resource?, 1997


엄기호,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2016




매거진의 이전글 갈길바쁜 스타트업 앞에 놓인 덫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