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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일.

by 단어

나는 요즘 크리스마스를 기다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이고, 들어가는 가게마다 캐롤이 들리는 요즘이야. 온 세상이 들썩이는데 어떻게 안 기다리고 배기겠어? 오늘은 일하는데 캐롤이 아주 크게 들리는 거야.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 분명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해서 너무 피곤했거든. 잠도 제대로 안 깬 상태에서, 지하철을 40분이나 타야 했거든. 그런데 캐롤이 들리자마자 너무 신나는 거야. 아 같이 신나 할 누군가가 있었다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춤을 췄어. 분명 나와 같이 춤을춰줄 하하와, 설레하는 나를 바라보며 더 큰 춤을 출 네가 생각이 났어. 그런데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냐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얘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나 싶었어. 왜 기다리냐니. 크리스마스니까 기다리지. 크리스마스는 그냥 신나고, 즐겁고, 설레고, 기다려지잖아. 그런데 그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어. 나도 궁금해진 거야. 우리는 왜 크리스마스를 기다릴까. 내 생일도 아니고, 너의 생일도 아니고, 우리의 특별한 기념일도 아닌데. 크리스마스가 된다고 해서 우리에게 선물이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12월 내내 그날만을 기다리잖아. 친구와 연인과 계획을 세우고, 좋은 숙소를 알아보고, 혹은 집을 예쁘게 꾸미기도 하고.


우리는 어쩌면 기다릴 게 필요했던 거 아닐까?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려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 평일에는 주말을 기다리고, 학생은 종강을 기다리고, 직장인은 휴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린다는 건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니까. 사람이든, 사건이든, 계절이든. 또 대부분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즐거운 것이잖아. 우리를 웃게 만드는 것들을 우리는 기다리잖아. 문득 기다리는 일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기다리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거든. 기다림은 나를 지치게 만들고 종종 슬프게 만들어. 아무래도 기다리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좋으니까. 성격 급한 나에게 기다림이라는 건 너무 힘든 일이야. 그런데 삶에는, 사랑에는 기다림이 필수더라고. 기다림 없는 삶도 사랑도 없더라고. 나는 너를 기다리며 기다리는 일에 대해 생각해. 지금 당장 볼 수 없는 너. 기다려야 볼 수 있는 너. 기다림 끝에 있는 너. 그런데 그 기다림 끝에 있는 게 너라면 나는 기꺼이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다리면 오는 너. 기다리면 오는 삶. 너도 크리스마스도 기다리기만 하면 오는 거잖아. 너무 기쁘지 않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 한가지 확실한게 있다면 네가 결국은 나에게로 온다는 거야. 네가 너무 분명한 행복이라 더 기다리기 힘들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 잘 기다릴 수 있어.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넘어진 날에는 다시 일어날 날을 기다리며 살고, 헤어진 날에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살고, 우는 날에는 다시 웃을 날을 기다리며 사는 거야. 기다리기만 하면 그날은 반드시 오니까. 우리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이상, 기다림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으니까. 삶은 기다림이니까. 기다린 만큼 우리는 더 행복할 테니까. 지금 당장 기다릴 게 없다면 나랑 같이 크리스마스 기다리는 거 어때? 크리스마스잖아. 큰 이유 없이도 크리스마스는 그냥 신나고, 즐겁고, 설레고, 기다려지잖아.


기다림을 싫어했던 나는 기다림은 숙명 같은 일이라는 걸 널 만나고 깨달아. 그리고 너를 기다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좋은 날을 기다리며, 내일을 기다려. 너에게 마지막으로 이 시를 소개해 주고 싶어. 스무 살에 만났던 이 시는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네. 너를 알지 못했던 날에도, 너를 아는 지금도 나는 언제나 너를 기다려. 너를 기다리는 내내 나는 행복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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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일은 즐겁지 않습니까


꼬마는 명절만 기다립니다. 이내 하교를 기다리는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토요일만 기다리는 고등학생이 됩니다. 대학생이 되길 기다리다 여름학기를 기대하고 졸업을 기다립니다. 주말을 고대하는 직장인이 됩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한 사람의 집이 되었다가 한 아이의 품이 되었다가 자유를 기다리고 가끔 어른이 되었습니다. 단아한 끝을 기다립니다. 어른이 되면 무얼 기다리지 않아도 될 줄 알았습니다.


여태 기다립니다. 이따끔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기다림을 본능 같다가도 습관 같습니다. 자꾸 오늘의 밖을 올려다봅니다. 기다림을 기다리기로 하자 잠시 덜 슬펐습니다. 덜 슬퍼하는 일과 무관하게 나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숙명같은 일이라 맹신했습니다. 아니, 어느 숙명을 기다렸겠습니다. 신뢰는 나를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몇 개의 나를 더 기다려야 할까요. 가끔 내가 내 생의 수청을 드는 것 같습니다.


서둘러 삶을 들고 일어나 자리를 벗어납니다.


기다리던 일이었습니다.


-숙명, 이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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