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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시와 Feb 28. 2024

발리, 안녕합니다.

프롤로그: 왜 다시 발리인가.

두 번째 발리 여행을 결심한 연유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았다.


약 6년 전, 가족과 함께 처음 발리에 갔었을 때, 발리가 남반구에 위치한 줄, 그러니까 동남아시아로 분류되는 인도네시아가 한국에서 그렇게 먼 줄, 또한 발리가 제주도의 3배에 달하는 넓은 면적의 섬인 줄 몰랐다. 고백하건대 당시 인기가 많았던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에 힘입어 여름 휴가지 중 성급하게 발리행을 결정했던 것 같다.


대만 국적의 항공사를 이용한 탓에, 10시간이 넘는 여정 끝에 발리에 도달했건만, 발리 공항 인근은 혼잡하기 그지없었을 뿐 아니라, 덥고 습했다. 기후야 그렇다 치고, 발리 공항에서 첫 번째 숙소로 가는 길, 열악한 도로 위에서 만만치 않은 트래픽 잼을 겪으며 다소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고, 5일간의 여정은 이 섬을 느끼기에 턱없이 부족하리라 짐작했다.

2017년의 발리 거리. 곳곳엔 오토바이가 즐비하다.

더욱이 발리에서 인근 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 숙박하는 일정까지 있었으니 (그렇다. 이 역시 예능프로그램에 낚인 탓이었다) 이동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리라는 것은 자명했고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콕 적중했다. 심지어 발리 인근 섬 길리 트라왕안으로 가기 위해, 새벽에 발리의 한 숙소에서 출발하여 작은 봉고(?)에 몸을 싣고 도달한 항구에서,  출항 직전 배의 엔진이 고장 났다는 공지를 들었다.


전 세계 다양한 여행객들과 함께 항구 앞, 어느 작은 카페에서 5-6시간을 기다렸다가 결국 석유 냄새가 폴폴 풍기는, 과도하게 무거운 짐들을 떠맡은 (그러니까 과적이 분명한) 안쓰러운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목적지인 섬으로 향했다. 정말 큰 파도 한 번이면 모든 게 끝장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울렁대던 가슴을 부여잡고 아슬아슬 섬으로 향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6년 전의 이 인상적인 경험 덕분에 발리는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렸고 발리를 다시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발리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짜낭사리. 신들의 섬 발리에서 신에게 봉헌하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그러나 역시 시간 앞에 사람은 무뎌진다. 작년에 또다시 발리 여행에 관한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됐고 (심지어 첫 번째 낚였던 프로그램과 동일한 연출자가 만든) 결과적으로 묘하게 마음이 누그러지며 ‘그래! 지난번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충분히 발리를 느껴보자!‘ 는 오기가 발동하여 결국 발리행 티켓을 끊어버렸다. 물론 첫 번째 발리 여행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들을 좀 더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2017년 길리 트라왕안의 해변

발리가 발리인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 매력이 무엇인지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 이번에야 말로 알고 말겠다는 굳이 불필요한 투지로 또다시 발리행 티켓을 끊었다.


모르겠고, 어쨌든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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