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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시와 Mar 06. 2024

발리, 안녕합니다.

리조트의 맛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베트남, 태국 등 주로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했다. 파릇파릇했던 그 시절에는, 가방을 짊어지고 유럽의 길거리나 박물관 등을 기웃대는 배낭여행객을 자처했으나,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여행지도, 패턴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일본을 제외한 다낭, 방콕, 푸껫 등 동남아시아의 여행지들은 알다시피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다. 한국에서는 쉽사리 머무를 수 없는 호사스러운 리조트에서 깨끗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받는 것은 물론, 현지 레스토랑에서 가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메뉴를 즐기며 부담 없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안락함. 언젠가부터 그런 맛을 들여버렸다.

발리를 다시 선택했던 이유도 사실 이러한 비교우위의 충족감을 얻고자 하는 목적이 밑바탕에 깔려있었고, 이번 발리 여행에서도 리조트 안에서의 휴양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첫 사흘 동안 머문 리조트는 짐바란의 해변에 위치했다. 짐바란은 공항에서 택시로 20분 내외면 도착가능한 발리의 중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이동이 비교적 수월하리라는 지레짐작으로 택했다. (물론 짐작일 뿐이었다.) 평화로운 휴식을 원했기에 스미냑, 짱구, 쿠타 등 팬시한 샵들과 비치클럽, 젊은 서퍼들로 핫한 동네들은 제외하고 선택한 결정이었다.

도착한 첫날, 비행으로 인한 피로 따위는 제쳐두고, 온수풀로 채워진 6개의 수영장들을 골라 다니며 지칠 때까지 수영을 했다. 배가 고프면 나시고랭이나 햄버거를 먹었고, 풀바에서 음료수를 들이켜기도 했다. 쉬고 싶을 땐 해변을 따라 쭉 뻗어있는 썬베드에 누웠다. 바다에서 솔솔 불어오는 미풍을 맞으며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낮잠의 맛이란. 액정 화면에 혹사당한 눈의 피로가 가셨다. 더욱이 날이 흐렸음에도 불구하고 노을 맛집인 발리 해변의 뷰는 감탄스러웠다.

이국적인 정취를 조금이라도 더하고 싶어 일부러 한국인 여행객들이 거의 없다는 리조트를 택했는데 역시나 만족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현지인 여행객들과 마주친 건 아니고 리조트를 채운 대다수는 백인 여행객들이었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발리 현지인들은 호텔 스텝들 뿐이었다. 투숙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업인 이들 말이다. 어찌 됐든 부족함이 없는 휴양을 만끽한 첫날이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대규모 리조트에서 리스크 적은, 표준화된 접대를 받았다.

그러나 다음 날, 발리의 유명 관광지로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섰고 리조트 밖을 걸어 나가니, 지난 여행의 불편함을 연상시키는 상황을 또다시 마주쳤다.


변하지 않은 건 발리인 거니 내 마음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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