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증후군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날래

by HeeSoo
그녀는 큰 아들인 아버지와 큰며느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였다. 어릴 적 명절이면 할아버지 의 사 남매부터 손주들, 작은 할아버지네 가족들까지 대가족이 모였다.
제사, 명절... 철부지 어릴 적엔 사촌들과 우르르 몰려나가 놀고 맛나 것도 먹고 마냥 좋기만 했다.
아마도 그때 엄마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던가를 알았다면 그렇게 마냥 즐겁지 많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혼 후 첫 명절이 다가왔다.

명절 전 주에 그들 부부는 크게 말다툼을 하였다. 너무 화가 난 그녀는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 친정엄마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정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다 잘하는 줄 알았어. 근데 며느리가 나한테 우리 아들 흉을 보는데 '아 우리 아들도 이렇게 못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 너도 시어머니랑 한번 얘기를 해봐."

이렇게 해서 며느리랑도 더 가까워지고 '우리 아들이 잘하겠지'란 일방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셨다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시어머니에게 연락을 했고 만남을 가졌다.

그녀는 속마음을 시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시어머니는 다 들어주었다. 자신의 아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놀라는 듯했다. 그러기를 한참 뒤, 시어머니는 그동안 그녀에게 서운했던걸 털어놓는다. 자신의 생일에 생일상을 차리지 않은 것, 삼계탕을 가져온 날 지하주차장으로 마중 나오지 않았던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많이 왔는데 잘 도착했는지 안부전화를 하지 않았던 것 등등을 늘어놓는다.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의 아들 때문에 힘들어서 이렇게는 못살겠다 찾아온 며느리한테 정작 자기 자신이 서운한 이야기를 하고 있네... ' 물론 그녀는 청소를 하느라 지하주차장으로 내려 가지 않은 것, 그녀가 살던 동네는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던 것 등 그녀의 사정을 설명한다.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 첫 명절이라 그녀와 동서를 주기 위해 '앞치마' 두 개를 사놓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웬 앞치마? 아무리 명절 때 며느리들이 일하러 시댁에 간다지만...' 그녀는 기분이 그렇게 썩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헤어질 때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명절 때 일찍 와..OO(아들)은 자기 방에서 있으면 되고 너는 일하면 되니까.."

'헐,,, 대놓고 자기 아들은 원래 방에서 쉬고 넌 와서 일하라는 얘기를 하다니..'

좀 충격을 받았던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꼭 하고 싶던 이야기를 덧붙인다.

"어머님. 다음부터 저희 집에 오실 때 며칠 전에 전화 주세요. 당일 아침에 전화하고 오시는 거 너무 불편해요."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명절 당일 그녀는 지난주의 일도 있고 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과 시댁에 갔다.

미리 준비를 다 해놓겠다던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가르치기 위해선지 몇가지들을 남겨놓았고 하나둘 시켜가면서 가르쳐주었다. 아마도 제사를 넘겨야 하니 그랬을 것이다.

다른 가족들이 도착하고 음식 준비를 하는데 특이하게도 식탁을 주방으로 옮겨 서서 전을 부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친정에서는 앉아서 전을 부쳤는데 다리를 다쳐 불편함이 있던 그녀는 서서 하는 것이 좀 내키지 않았다.

동서가 말을 건넨다.

"형님은 항상 서서 일하시니까 힘드시죠?"

"응, 그러고 요즘 다리가 아파서 좀 걱정이네. 보호대를 가져올걸 그랬나 봐."

보호대 얘기에 의자를 주었으니 중간중간 앉아도 된다고 남편이 끼어들어 말했다.


잠시 전들을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을 때

"그러면 얼굴에 기름 다 튄다." 시아버지가 의도를 알 수 없는 옅은 웃음기 있는(?) 얼굴로 말한다.

'머지? 조심하란 소린가? 앉지 말란 소린가?'

그러고 보니 동서인 선희는 앉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일을 하던 중 시어머니가 두번이나 같은 말을 꺼냈다.

"난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날래."

"......"


그렇게 여느 집처럼 3시간 가량 전을 부치고 일을 마쳤다. 솔직히 세 시간 동안 전을 부치는 건 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족들이 같이 나눠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이니 생각하기에 따라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친정에서의 명절을 생각해보면 동생네 부부와 수다를 떨면서 전도 먹어가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세 시간쯤이야 후딱 지나가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자주 못 보는 가족들이 그렇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그녀에겐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집에서의 느낌은 달랐다.

시어머니의 말을 남편에게 했던 탓인지 남편은 그녀의 눈치를 보는 듯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소파에서 지겹도록 티브이를 보고 조카와 중간중간 놀며 시간을 보냈고 미안한지 두 어번 주방을 기웃거리면

"작년보다 많은 거 같은데.." 너스레도 떨어본다.


거실과 부엌이 완전히 분리되어 여자들만 주방에서 일을 하고 남자들은 앉아서 쉬는 분위기...

그녀에게 정말이지 몇십 년 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친정엄마는 남자도 전 정도는 부칠 줄 알아야 한다며 그녀의 남동생에게 같이 일을 시킨 지가 20년은 넘은 것 같으니 말이다.

'왜 도와줄 딸도 없이 아들만 둘인데 어머님도 아들들에게 좀 시키시지...
혼자 왜 저러면서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걸까?'


그녀는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결혼 전 시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주변에서 자신에게 보살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혼자 너무 힘이 들면 다 내려놓고 침대에 가서 누워 마음을 다지고 또 다시 나와 일하고... 그런 시간을 보냈다던 이야기...


후에 알았지만 시아버지 때문에 그녀가 원하는 방향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다음날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 제사상을 차리고 음식을 먹고 미쳐 다 치우지도 못하고 산소로 간다는 것이다. 그녀는 의아했다.

남자들이 산소에 다녀오는 동안 그 사이 여자들은 남은 것들을 치우고 누워 한잠 자고 피로를 풀었던 그녀의 친정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산소까지 다녀오려면 제사 지낸 것들을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다녀와야 했고, 알다시피 차가 막히고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그제서야 남아있던 설거지거리들을 치웠다는 것이다.

그녀는 코로나로 인해 산소에 안 가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여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 날 제사까지 지내고 설거지며 정리를 다 마치고 나니 정말 피로가 밀려왔다. 명절 전날까지 일하고 다음날 어색한 시댁에서 일하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제사 지내고 정리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는데 점심까지 먹고 가라는 어른들 말에 제대로 누워있어 보지도 못하다 점심 차리고 설거지 하고... 그제야 집으로 향 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눈을 부치라고 말했다. 나중에 들으니 코를 골며 잤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한 시간반만 자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침대로 향했다. 결국 그녀는 4시간을 잔 뒤에나 일어났고 배고프다고 뽀롱퉁해 있는 남편 얼굴을 보고는 '밥 좀 차리고 나 좀 깨워주지...' 속으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미안, 너무 오래 잤네. 배고프지? 얼렁 밥 먹자" 라며 부엌으로 향했다.

대신 건조기에서 꺼낸 수건을 잘 개어놓은 남편에게 고맙다며 칭찬을 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후에 '며느라기'를 책으로 사서 보면서 '앞치마'에 대한 에피소드를 보고는 역시 드라마나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다 사실이구나... 란 생각을 했다.

왜 하고 많은 선물 중에 '앞치마'란 말인가? 며느라기의 무구영도 전혀 그 뜻을 이해 못해서 '왜? 앞치마 집에 있어서 그래?'라며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으니 말이다.

그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앞치마가 머 어때서? 일할 때 옷에 묻지 말라고 하는 건데..' 그녀의 남편의 말이었다.


차라니 고생했으니 바르라며 핸드크림이나 화장품을 선물했다면 어땠을까?

이왕이면 말이다. 이건 어디까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그 말은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날래'란 말속에 담겨 있는 의미 말이다.

그녀의 눈 속에 남자는 참 세상 사는 게 맘대로 편하게 보였을까? 나도 남자로 태어나서 이런 밥하고 빨래하고 명절 때 혼자 죽어라 고생하는 것 안 하고 싶다는 뜻이었을까?


집으로 오던 차 안에서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제사 지내는 것까지는 집안 행사니까 어쩔 수 없지만 산소 가는 건 잘 생각해봐. 여자들도 쉴 시간을 주어야지. 그리고 어머님이 왜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지 한번 생각해봐..."


우리는 어머니 세대의 힘듦을 알아챈다. 이제야 그 어깨의 짐을 깨닫는다.


한 친구를 예로 들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나이 들어가시고 힘들어하셔서 자식들이 아이디어 하나를 제안했다고 한다.
제사란 가족들이 모이는데 의미가 있으니 각자 먹을 것을 사 와서 또는 준비해와서 상에 올리자는 것이었다. 지금 그 친구네는 제사상에 조카들이 좋아하는 피자, 친구가 좋아하는 소고기, 어머니가 준비한 과일 등 각자 음식들을 준비해서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먹으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또한 그녀의 친정집도 동생의 건의로 아버지와 논의한 후에 제사를 없앴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너무 편하다고 말씀하시고 가족들도 제사 지낼 돈으로 차라리 맛있는 음식을 먹던가 여행을 가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처음 결혼하고 일 년에 12개씩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그 횟수를 줄였고 드디어 45년 만에 제사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제사를 지내는 건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로서의 의미와 떠난 이를 기억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각자 바쁜 시대에 가족이 모일 수 있는 하나의 이유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는 이유로 한쪽의 성(female)에게만 그 짐이 지워진다면 그건 불공평하지 않을까?


퇴계 이황 종가 불천위 제사상 (출처: https://blog.naver.com/a10000du/221364251860)


'B급 며느리'에서 보면 저자는 말한다. 원래의 제사 풍습은 다른 성씨를 가진 아내나 며느리가 지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성씨인 아들들이 모여서 지냈다고 한다. 또한 실제로 종갓집에서의 제사상을 보면 딱 필요한 제사음식 외에는 그렇게 많이 차려져 있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위의 사진 참조>


B급며느리와 같은 다큐멘터리나 책, 다양한 기사나 글 들을 통해 이미 많은 이 시대의 며느리들은 자각을 해가고 있고 겉으로 표현하지 못해도 불만을 갖고 있는 여성들도 꽤 있을 거라 예상된다.


어느 시점이 되어야 이런 문제들을 터놓고 얘기하고
보다 합리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점차 주변에서 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는 없어질 꺼야라고 말을 하거나 조상덕 본 사람들은 명절에 인천공항에 모여있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매년 명절만 되면 명절 후 높아진 이혼율이니 명절 증후군이니 하며 메스미디어에서 떠들어댄다. 지난 몇십 년을 볼 때, 이것은 그저 그 시기만 되면 뉴스거리로 등장하는 고정 멘트 같은 느낌이다.


이제는 '며느라기'에서 처럼 같은 성씨의 남자들은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다른 성씨를 가진 여자들만 부엌에서 노동력 제공하는 이런 왜곡되어진 문화를 다시 한번 되짚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질문을 던져본다.



이미지 사진 출처 : 웹툰 며느라기 [수신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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