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이나 지면이 아닌, 어떻게 찾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우연히 들린 한 블로그에서였다. 나는 그때 작가를 꿈꾸던 어리숙한 문학도였고, 어리숙한 이가 으레 그러하듯, 아집을 겹겹이 두른 채 나의 허섭스레기 같은 글이 여느 작가의 글보다 부족하지 않다고 자위하고 있었다. 그런 나였는데, 그 시인의 시를 읽고 나서는 졌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을 관통하는 감정의 다발에 어찌할 바를 몰라 허우적거렸다. 시인의 시는 내가 ‘시’라고 여기던 먼 어딘가에 가장 인접해있었다. 모든 시들 중에서 최고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내가 원하던, 내가 쓰고 싶었던 시에는 가장 근접한 시인이었다. 나는 저 먼발치에서 간신히 방향만 가늠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시인은 이미 내가 닿고 싶어 하는 그것에 손끝이 닿은 듯 보였다. 부러웠다. 질투가 났다. 내가 뭐라고, 살리에르만큼의 재능도 없으면서 나는 모차르트를 시기한 영화 속 살리에르처럼 시인을 질투했고, 또 존경했다. 나보다도 어린, 당시에는 시집도 나오지 않은 낯선 시인이었지만, 나는 인터넷의 바다에 시인의 이름을 던져가며 그 이름이 적힌 시는 모두 읽었다.
그로부터 오늘에 닿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작가를 꿈꾸던 문학도가 문학의 달콤함보다 매 달 열리는 월급의 과실을 빨아대며 그 과육을 즐길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도 우연히 시인의 시를 읽었다. 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싶을 정도로, 여행 서적을 뒤적이다가 한 책에 리뷰를 남긴 사람의 글을 따라가다가 그가 남긴 리뷰에서 익숙한 그 시인의 이름을 만났다.
"희준"
희귀한 이름도 아니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름이지만, 나는 그 이름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그 시인임을 알았다. 시집이 나왔구나, 나는 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시집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분이 묘했다. 그 옛날 그때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였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너무나도 시인의 글이 읽고 싶었기에 나도 모르게 시집을 클릭했고, 곧 시집 소개에 적힌 짧은 문장을 읽고 말았다.
그 시집은 시인의 유고 시집이었다.
교통사고였다고, 빗길에 미끄러져 유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시인의 문장이 그리워 잊을 만하면 시를 찾아 읽었었는데, 어쩌면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 한 귀퉁이에 놓인 기사에는 오래전 보았던 시인의 그 얼굴이 담겨 있었다.
멍했다. 온몸에 핏기가 빠졌고, 몸이 차가워졌다. 옆의 동료가 무슨 일 있냐고 묻는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예로부터 천재는 단명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나는 이 시인에게도 그 말이 해당될 줄은 몰랐다. 나는 시인이 내 질투와는 상관없이 더 거대해지고, 더 유명해져서 내가 평생을 노력해도 가닿을 수 없는 곳에 가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질투를 하면서도 내가 저 사람이 시집이 나오기 전부터 눈여겨보았다고 으스댈 만큼 오래 살 줄 알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학교의 교과서나 하다못해 대학의 강의에서라도 시인의 시가 쓰일 줄 알았다. 나는 이 시인이 더 많은 글을 쓰기를 바랐다. 질투하면서도 빼먹지 않고 시인의 글을 탐독하고 언젠가는 시인의 앞에서 나는 당신을 증오하지만, 그보다 더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세상에는 시인의 숨결이 없다. 시인의 유작으로 나온 시집만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숨결이었다.
나는 온종일 멍하니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점에 들러 시인의 시집을 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시집을 읽었다. 많이도 울었다. 타인의 죽음으로, 타인의 글로 이처럼 울어본 게 처음이었을 정도로 울었다. 시인의 시는 여전히 훌륭했다. 시인은 나의 노력이 무색하리만치 더 앞서갔고, 내가 반했던 막힘없는 문장들과 번뜩이는 시어들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은가, 모든 삶은 귀중하고 우열을 나누기 불가능한 것이지만, 이런 사람은 조금 더 남아있어야 하지 않나, 더 많은 글을 쓰고, 많은 이들에게 시를 읽을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나. 나는 오래전부터 글을 쓰거나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실 때면 언제나 욕을 섞어 시인의 글을 추천하곤 했다. 엄청나다면서, 불공평하다면서, 마치 보석을 발굴해낸 광부처럼 희열을 안고서 말이다.
나는 오늘 시인을 기리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 글을 읽을 이들에게 시인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시인의 이름은 김희준이고, 2020년 7월 24일 불의의 사고로 영면했으며, 같은 해 9월 10일에 유고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이 나왔다.
아래의 시는 내가 시인의 시들 중에서 가장 처음 만나고, 가장 사랑하는 시이다.
「머메이드 구름을 읽어내는 방식」 - 김희준
나는 반인족
안데르센의 공간에서 태어난 거지
오빠는 속눈썹이 가지런했다 컨테이너박스를 잠그면 매일 같은 책을 집었다 모서리가 닳아 꼭 소가 새끼를 핥은 모양이었다 그 동화가 백지라는 걸 알았을 땐 목소리를 외운 뒤였다 내 머리칼을 혀로 넘겨주었다는 것도
내 하반신이 인간이라는 문장
너 알고 있으면서 그날의 구름을 오독했던 거야
동화가 달랐다 나는 오빠의 방식이 무서웠다 인어는 풍성한 머릿결이 아니라고 아가미로 숨을 쉬었기에 키스를 못한 거라고 그리하여 비극이라고
네가 하늘을 달린다
팽팽한 바람으로
구름은 구름이 숨 쉬는 것의 지문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누워서 구름의 생김새에 대해 생각하다가 노을이 하혈하는 것을 보았다 오빠는 그 시간대 새를 좋아했다 날개가 색을 입잖아, 말하는 얼굴이 오묘한 자국을 냈다
사라지는 건 없어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
오빠에게 오빠의 책을 읽어준다 우리가 읽어냈던 구름을 베개에 넣으니 병실 속 꽃처럼 어울린다 영혼이 자라는 코마의 숲에서 알몸으로 뛰는 오빠는 언제나 입체적이다 책을 태우면서 연기는 헤엄치거나 달리거나 다분히 역동적으로 해석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