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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Jan 31. 2024

주제 : 우정

미션 : 다 쓰고 3시간 뒤 다시 보기


우정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단정한 단발머리를 오른쪽 귀 뒤로만 넘기던 아이.

"앗, 난 오늘 돈 없어. 그냥 너희들끼리 갔다 와."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어린 내 눈에 그 아이는 용사로 보였다.


환하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던지던 그 말.

나는 할 수 없었던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린 나는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언제나 나는 간식을 사 먹고 장난감을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용써야 했다.

"엄마가 불량식품이라고 먹지 말랬어. 너희들은 그런 것도 모르니?" 눈에 힘을 주고 잘난 체를 했다.

'나도 같이 먹고 싶어. 근데 용돈이 없어.'라는 말 대신 내 입에선 늘 배배 꼬인 말들만 튀어나왔다.

싸늘해지는 아이들의 표정을 뚫고 한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미정아, 근데 그 집 떡볶이 지인~짜 맛있어. 다음에 나랑 같이 먹으러 갈래?"

"어?.... 어!" 내 본심이 툭 튀어나왔던 순간. 평생 잊지 못하는 장면이다.

먼저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은 못 하지만, 누군가 손 내밀어 주길 바랐던 어린 나. 질문 하나에 속마음을 내보이고 말았다.


불가 용어 중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무척 애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의미다.


꽈배기처럼 꼬일 대로 꼬였던 그때의 나에게 시절인연처럼 다가온 아이. 김민정.

이름도 비슷하다며 깔깔깔 웃으면 어깨를 툭 치던 아이는 어딜 가나 나를 챙겼다.

"미정아, 술래잡기 하자."

"미정아, 떡볶이 먹으러 갈래?"

"미정아, 집에 같이 가자."

"미정아, 나 오늘 돈 없는데 한 입만 줘."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상 용돈은 10원 하나 없던 나는 친구들에게 들키기 싫었다.

내가 용돈도 없는 가난한 아이라고 놀림받을 거라 생각해서, 늘 뾰족하고 날카로운 말로 나를 방어했다.

그 가시덩굴을 뭉툭한 낫으로 툭툭 쳐내며 다가오던 아이.

민정이가 돈 없다고 말해도 반 친구 누구도 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거 같이 먹자." "내 거 한입 먹어."라며 친구들은 정을 나눴다.

민정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내가 차마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들.

내 눈에 민정이는 엄청 용기 있는 아이였고 용사였다.


어느 날, 갑자기 민정이는 전학을 갔고 나의 용사는 사라졌다.

하루 이틀 슬펐고, 하루 이틀은 그리웠다.

다시 배배 꼬이려는 심보는 민정이를 생각하며 꼬지 않았다.

"실은 우리 집 용돈 안 줘."

용기 내서 고백했고, 아이들은 자기 일처럼 광분했다.

"말도 안 돼."

"너네 집 가서 내가 말해 줄까. 용돈 달라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니? 민정아?

지금도 배배 꼬인 어른들 틈에서 용사처럼 살고 있겠지?


니 덕분에 나는 사람 됐다.

내 심보가 배배 꼬였을 때 너를 만났고,

너를 만난 덕분에 나는 주위 친구들과 우정을 나눴어.

고마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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