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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 Apr 29. 2024

츠키지 시장의 아침

2024.01.28.

 아침에 호텔 체크아웃 시간보다 일찍 로비로 내려와서 카드키를 반납하고 캐리어를 맡겨둔 채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도쿄에서의 닷새 간 일정을 마무리하고 니가타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마침 숙소 근처에 츠키지 시장이 있어 시장 골목에 있는 초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떠나기로 했다.

 호텔은 대로변 가장자리에 있었다. 보도를 따라 반대편 모퉁이를 향해 걸어가면서 거리의 풍경을 느긋하게 즐겼다. 카페, 드럭스토어, 자동차, 사람들, 쌀쌀한 아침 공기, 바람.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수 잎사귀들이 경쾌하게 흔들렸다.

 길 끝에서 모퉁이를 돌아 두 블록을 더 이동하자 횡단보도 건너로 츠키지 시장의 입구가 보였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색 간판을 배경으로, 큼지막한 참치 모형이 매끈한 자태를 뽐내며 수산 시장에 활기를 더하고 있었다. 오전 9시 반. 문을 연 가게들마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맛집은 좋아했지만 줄을 서는 건 웬만해선 사양하고 싶었기에 그대로 메인 골목을 지나쳐 미리 구글맵으로 봐둔 ‘츠키지 스시’로 향했다. 가게는 시장 외곽의 길목 부근에 자리해 있었다. 간판 대신 가게 이름이 적힌 빛 바랜 남색 천이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아래서 펄럭거렸다.

츠키지 스시 외관

 개점 시간까지는 아직 1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마침 출입문 위쪽이 유리로 돼 있어 슬몃 내부를 들여다보니, 니은 자 구조의 바 테이블 안쪽에서 노부부가 재료준비를 막 끝마친 참이었다. 주인 남자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려 내가 안으로 들어가도 되느냐고 손짓으로 묻자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후 정확히 10시가 되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문을 열었다. 그녀는 우리를 곧바로 안으로 들이지 않고, 마치 통행증을 확인하는 문지기처럼 고압적인 자세로 첫 마디를 내뱉었다.

 “온리 캐시!”

 응? 우리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지만 간단히 오케이라고 대답한 뒤에 안으로 들어가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자리였다. 등 바로 뒤에 외벽 창문이 있었다.

 “실례합니다만,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도 괜찮을까요?”

 남편이 일본어로 직원을 향해 정중하게 요청했다.

 “노!”

 우씨. 그녀의 강경한 거절에 나는 빈정이 약간 상해서 입을 삐죽거렸다.

 “온 순서대로 바깥쪽부터 자리를 채우는 게 우리 가게의 원칙이에요.”

 그녀는 무뚝뚝한 말투와 표정으로 부연 설명을 한 뒤에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냥 처음부터 이유를 얘기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혹시 예전에 외국인에게 돈이라도 떼인 적이 있었나? 나는 남편을 향해 궁시렁대는 것으로 상황을 일단락 지었다.


 “어떤 메뉴를 주문하시겠어요?”

 테이블 안쪽에서 주인 남자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로 우리를 향해 물었다. 바투 깎은 머리와 흰색 가운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모습에서 자연스레 관록이 느껴졌다.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입간판을 보고 점찍어둔 대로 ‘투데이 런치’를 주문했다. 1800엔에 초밥 여덟 점과 마끼 네 점이 나오는 구성이었다. 여기에 미소시루까지 더해져, 얼마 지나지 않아서 테이블 위에 먹음직스러운 한 상이 차려졌다.

 “와, 이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는데!”

 남편이 먼저 초밥 한 점을 집어 맛을 보더니, 감탄을 연발했다. 내 경우에도 도쿄 최대의 수산물 시장 내에서 파는 초밥이니만큼 최소 기본은 하리라 예상했지만, 이 가격에 그 이상을 바라는 건 내심 과하다고 생각했었기에 만족감이 배가됐다.

 우리가 접시를 절반 정도 비웠을 즈음이었다. 뒤편에서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남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전부 네 명이었고, 동일한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주인 내외와, 직원과도 반갑게 알은체를 하며 왁자지껄하게 안쪽의 빈자리를 채웠다.

 “투데이 런치 네 개랑 생맥주 네 잔이요!”

 곧이어 맥주가 나오자, 작업반장으로 보이는 밝은 갈색 머리의 여자가 일어나서 건배를 외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아마도 근처에서 새벽 작업을 마치고 온 모양이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노동의 피로와 개운함이 엿보였다. 나는 문득 직원의 표정이 궁금해져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 역시도 그들의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한결 허물어진 그녀의 눈길에서 투박한 애정이 느껴졌다.

 나는 무리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초밥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신선한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주인 내외와 직원과도 인사를 나누고, 가게를 나왔다. 마지막에 직원이 우리를 마주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전했다. 그녀가 자주, 편안하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장의 아침은 떠들썩하면서도 고되고, 생생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츠키지 시장 메인 골목의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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