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쓴다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 위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안갯속 불안도
그저 쓴다
텅 빈 가슴 얼어붙어도
그저 쓴다
처진 슬픔 가누기 겨운
이 밤에도 그저 쓴다
찢긴 마음 감추려
이슬방울 훔치고 있던
그 손길로 그저 쓴다
쓰기로 버텨냈던 나날들의 연속이었던 그 언젠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휘둘리며 정신 부여잡기도 벅찼던 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나를 온전히 토해내고 싶어 선택한 방법...
쓰기였다.
그때의 마음 상태로는 쓰기보단 휘갈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이성선 시인의 그냥 둔다를 소리 내어 낭송해 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냥 두면 내 안의 소리도 자연히 들리겠지...
내가 보지 못한, 보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쓰며 피했던 것들도 보이겠지...
마음속 봄기운이 움틀 때도, 앙상한 마음 가지를 싹둑 잘라내고 싶을 때도
쓰기는 예나 지금이나 감정의 분출구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