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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04. 2020

궂은날이 좋아진 이유

 올여름은 유독 징그럽게 비가 많이 왔다.

비 오는 날이 좋다는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연일 폭우가 멈출 줄을 몰랐다. 일기예보는 일단 일주일 앞을 내리 비 오는 날씨로 내다보았고 때에 따라 잠시 개는 날이 있을 때 실시간으로 슬그머니 날씨를 바꾸었다. 비가 지겨워질 즈음이 되어도 습함 보다는 비 갠 후의 폭염을 더욱 두려워했다. 예상대로 비가 갠 후에는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정도로 더워졌고 열대야에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나는 여름이 좋다. 얼마나 여름을 좋아하냐면 영어 이름이 'summer'이고 회사 이름은 'ete'(프랑스어로 여름)로 지을 정도다. 태양이 열정적으로 내려쬐는 여름, 활기차게 물놀이를 하며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여름을 좋아한다. 뜨겁고 정열적인 분위기의 여름이 좋다. 반면에 겨울에는 내내 오돌오돌 떨며, 깃털처럼 가볍다는 거짓말을 한 두꺼운 롱 패딩 때문에 늘 미세한 두통을 달고 산다. 추운데 비나 눈까지 오면 더욱 우울해졌다. 외출도 일절 하지 않은 채 겨울이면 항상 움츠러들었다. 매년 추운 계절이 가고 따뜻한 계절이 오기를 기다리며 산다. 그래도 아주 어릴 땐 눈이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낭만도 좋아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계절 편애는 엄마가 장사를 하고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동네 슈퍼 장사를 하면 뜨거운 여름 낮이면 땀 뻘뻘 흘리며 시원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덥석 덥석 집어가는 손님들이 많았고, 더운 밤이면 시원한 생맥주를 들고 삼삼오오 공원이나 가게 앞 평상에 앉아 밤늦도록 노는 어른들이 있었다. 더운 날 밖에 갔다 들어와서 음료수 냉장고를 열어 등허리의 땀을 식히는 건 슈퍼집 딸인 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여름에는 장사가 늘 바빠서 여름방학이면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앉아 함께 가게를 봤는데 작은 동네 슈퍼 계산대에 두 줄이 늘어서면 손 빠른 계산으로 엄마를 돕는 것이 난 참 신이 났다.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새벽 1,2시까지 장사를 하는 날도 있었고, 문을 닫으려 하면 멀리서 반바지에 쪼리 차림으로 담배 한 갑만 사자며 달려오는 손님이 있었다. 가게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5분 남짓이었는데 엄마와 함께 느긋하게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맥주 집에 들러서 엄마는 맥주를, 나는 사이다를 한 잔 들이켜고 가는 날도 있었다. 오래도록 내가 느낀 여름은 이런 풍경이었다. 햇볕이 쨍할 때마다 더위를 피해 가게 안으로 뛰어오는 손님들. 하지만 장마가 온다면 한 여름의 대목도 없어진다. 그리고 꽁꽁 언 겨울도 여름보다 늘 매출이 저조했다. 20년 전의 날들이었으니 지금처럼 어딜 가든 냉난방기가 빵빵하게 돌아가지 않았고 외풍이 많이 들던 옛날 건물이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는 계산대의 양옆에 전기난로를 켜는 것이 전부였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와 아빠는 밖에 갔다 돌아올 때면 그 전기난로 하나 앞에 한참 서서 몸을 녹였다.  


 엄마 품을 떠나 멀리 유학을 가 있으면 잠도 안 오는 밤, 가끔 부모님 생각이 사무칠 때가 있었다. 추운 날이거나 태풍이라도 몰아치는 때면 나는 종종 집 걱정에 베갯잇을 적시며 잠이 들곤 했다. 엄마가 손님이 없는 슈퍼에 혼자 앉아서 '아이고 오늘은 왜 이리 손님이 없지' 하며 걱정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꽁꽁 언 날씨에 가게 셔터를 닫고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잠이 못 들기도 했다. 내가 살던 북경의 칼바람보다 더 마음을 에이는 것이 집 걱정이었다. 유학을 마친 나는 또다시 집을 떠나 혼자 서울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북경이나 서울이나 모두 겨울이 춥기는 매한가지여서 가을부터 시름시름 가을을 타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떠돌아다니며 살다가 지금 정착한 곳은 시골이라 불러도 좋을 곳이다. 처음으로 면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시내가 아닌 읍내에 나가서 필요한 것을 사 와야 한다. 쿠팡 로켓 배송이나 홈플러스, 이마트 배송이 전혀 지원되지 않는 곳이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이 보이고 계절마다의 장단점이 분명한 시골에 살다 보니 비 오는 날은 비 오는 날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날씨가 가진 표정들이 보여 비로소 사계절이 모두 그리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내가 시골까지 와서 감수성도 풍부해졌구나, 드디어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나이가 된 걸까? 그게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겨울 공포증을 이긴 것은 바로 엄마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을 시점부터였다. 가난한 사람의 마음이 더 추운 것일까? 일을 그만둔 엄마가 집에 있고 싶을 때에 집에 있을 수 있고, 나도 스스로 돈을 벌며 더 이상 겨울철 보일러비를 크게 걱정하지 않고 쓸 수 있었을 때, 그리고 자가용이 생기면서 더 이상 비 오는 날이나 추운 날이 그렇게 이전처럼 진저리 처지지 않았던 것이다. 여유로운 마음은 여유로운 잔고가 바탕이 된다는 말이 속물적 이게도 딱 들어맞았던 것 같다. 내 입에 풀칠을 할 여력이 되니 춘하추동의 희로애락이 드디어 보인다. 심지어 하얗게 눈이 내리면 뒷동산에서 개들이 폴딱폴딱 뛰어다닐 것을 생각하니 눈 오는 겨울이 기다려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엄마가 가게를 그만두고부터 비 오는 날도, 추운 날도 좋아졌다고. 엄마는 나에게 어렵던 시절을 왜 자꾸 생각하냐고 했다. 엄마는 원래 뭘 하든 장점부터 보는 긍정맨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투덜대기보다 재빨리 적응해서 즐긴다. 10년 동안 하루도 못 쉬고 가게 문을 열었으면서, 힘들다는 말 대신 가게는 엄마의 놀이터라고, 이 일을 그만 두면 나는 이제 일을 못 할 거라며 즐겁게 일하던 엄마다. 그런 엄마야말로 일을 그만두고 온갖 날씨를 제대로 즐기는 듯하다. 가게를 그만둔 후 엄마에게는 산에 가는 취미가 생겼는데 그 전에는 날 궂으면 아무 데도 안 나가시던 분이 비가 오면 굳이 우비까지 사 입고 가고, 그 추워 죽는 통에 뭐하러 또 눈 구경하러 산에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좋은 거겠지. 십 년 만에 온 자유가. 비가 와서 신발에 물이 들어가면 재밌다고 웃겠지, 비 때문에 가게에 물이 새서 걱정하는 대신. 

 아직도 아주 가끔씩 내가 슈퍼 카운터를 보고 있는 꿈을 꾼다. 20여 년이나 지난날들인데... 그 시절의 오돌오돌 떨면서 장사하던 엄마 덕에 지금 내가 따뜻한 방에서 컴퓨터 붙들고 글을 쓸 수 있다. 

 엄마가, 앞으로도 사계절을 다 좋아할 만큼 여유 있게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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