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인간이 해야 하는 수많은 타의적 선택에 관하여
물론 좋은 대학이 좋은 인맥과 좋은 교육환경 등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지난 1년 동안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도 못한 마당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사립학교 한 학기 학비와 기타 부대비용들을 평균 500만 원으로 잡았을 때 학교를 선택하는 대신 4년 동안 들어가는 학비 4,000만 원을 다른 곳에 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지나고 보니 학벌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던가. 특히 나처럼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웬만해선 아무도 몰라주는 "북경체육대학교"를 나왔다. 중국의 체육대학교인데, 나의 전공 '우슈'로 치자면 이런 명문이 없지만, 체육대학 중에서는 전 세계 랭킹 2위라고 한다지만, 한국에서는 일명 '듣보잡' 대학 중 하나다. 그러므로 이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한국에서 사는 나의 여생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물론 중국에서는 유명한 학교이다. 이 학교를 졸업한 중국 학생들은 각 지방의 대학 교수나 체육회의 임직원이 되거나, 초, 중, 고등학교 교사를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도 있다. 외국인인 내가 이 학교를 선택하며 그런 혜택을 애당초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학교가 정말 좋은 역할도 많이 해 주었다. 일단 북경 체대에서 우슈를 전공했다고 하면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주목을 피하기가 어렵다. 여자가? 무술 전공을 했다고? 취권이나 태극권 같은 우슈를? 학교를 다니며 내 전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좋은 친구들을 만났으며 우슈 실력은 물론 중국어를 마스터하는 이점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 했을 때는 0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본과 4년 과정과 욕심을 부려 대학원 3년 과정을 마친 후에 계산을 해보니, 학비를 포함하여 7년 동안 쓴 돈이 7,000만 원가량이 되었다. 당시 중국 물가나 학비가 비싸지 않았고 (매 학기 학비가 150만 원가량, 거주했던 1.5룸 아파트 렌트비가 한 달에 15만 원가량) 아껴 썼기 때문에 이 정도의 금액이 들었지만 한국에서 웬만한 사립대를 졸업하려면 1년에 돈 천만 원 이상 쓰는 것은 쉽다. 실제로 동생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을 때 국립대였음에도 나의 1.5~2배의 비용이 들었으니까.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해 주셔서 우리 자매는 비교적 편하게 학교를 다녔지만, 많은 20대들이 학비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며 알바를 해야 하고,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 그 몇 푼 안 되는 월급을 쪼개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애써야 한다. 20살이 되면 당연한 듯 대학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만일 대학 대신 다른 걸 선택한다면 인생의 빈 공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 자유로움은 얼마나 클까? 그리고 대학을 포기한다면 10대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유로움을 갖게 될까? 압박받는 대신 실컷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배우며 악기를 실컷 연주할 수도 있을 텐데? 국영수 대신 프랑스어 하나만 멋지게 한다면? 장사를 배운다면? 그 시기에 게임을 하거나 놀기만 한다고 해도 얼마나 큰일이 일어날까?
만일 20살이 되었던 해에, 부모님이 나에게 4년 동안 4,000만 원을 지원해 줄 테니 대학을 가든 장사를 하든 너 알아서 살라고 한 번 만이라도 기회를 주었더라면 나는 과연 지금처럼 사는 삶을 선택했을까?
아끼는 후배 중 한 명은 20살이 되어 대학을 갈 여력이 되지 않자 부사관으로 군대를 가서 4년 동안 모은 장교 월급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필 문제로 골치 썩을 일이 없었고 20살과 23살이 본 공부와 미래에 대한 시각도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예전에 우리 회사에 다녔던 직원은 19살에 면접을 보러 왔는데 당장 가고 싶은 대학이 없어서 돈부터 벌고 싶은데 빠른 생일이어서 취업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다고 수줍게 말하는 모습이 예뻤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가는 대신 돈 벌고 디자인 관련 일을 하다가 방통대 일본어학과를 다니며 일본어 실력을 늘렸다. 그런데 그런 그녀 때문에 어느 날 문득, 나도 덜컥 따라 방통대 등록을 해버렸다.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고 싶은데 더군다나 시골로 이사를 온 바람에 마땅히 다닐 수 있는 학원도 없고, 한 학기 단돈 30만 원대의 학비로 4년 동안 영어 책 뽀작뽀작 공부하면 영어라는 또 다른 전공이 생기니 참 멋진 일일 것 같다는 자기 만족도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었고 학교를 좀 다녀본 탓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개론이나, 문화 관련 과목보다는 다른 학과의 이를테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수업을 들으며 일반학점을 올리고 있는 요즘 나는 무슨 다시 어학에 목숨 거는 20대 초반이 된 기분으로 뇌의 언어 스위치를 딸깍 딸깍 바꿔 가며 각 과목의 과제들을 수행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물론 대학교 때 맺은 인연들로 사업에 큰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때 배운 것들로 지금까지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만일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그에 맞는 다른 유용한 일들이 많아졌겠지. 다른 것을 차치하고 20살부터 재정 상태를 플러스는 못 만들어도 마이너스로 까먹진 않았겠지. 그리고 학비로 쓸 4,000만 원을 다른 곳에 투자를 했더라면, 쪽박이 나면 대학 때 쓴 돈만큼 까먹는 거고, 혹시 대박이 날지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때 참 다양한 옵션이 있었을 것이고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한 가지밖에 생각을 못 했지. 왜 아무도 나에게 이런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은 거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그러니까 왜 천재들은 학교를 그렇게 쉽게 때려치우는지. 왜 나는 학교를 때려 칠 용기도 갖지 못했는지. 어쩌면 후회 잘 안 하는 내 인생에 유일한 후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정 시기'를 놓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던 결혼과 출산도 시기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데 (네 저도 아직 결혼 안 했습니다) 대학을 가야 하는 시기도 좀 더 다양해져야 하지 않을까? 20살에 대학입시에 '실패'했다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큰 일로 다가오는 줄도 안다. 하지만 안 되면 쿨하게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 때문일까 사회의 분위기 때문일까?
또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자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는데, 만일 아빠가 우리를 위해 한 푼도 쓰지 않았다면 아빠의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 기타 옵션들이 생겼을까? 아마 평생 일해서 배 한 척을 포함 사고 싶었던 것을 다 샀을 테고 (https://brunch.co.kr/@wushuwriter/38) 훨씬 더 좋은 것을 많이 하고 좋은 것을 많이 먹고 덜 늙으셨을 텐데. 스트레스도 고민도 생각도 많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결혼 후 자식이 너무 빨리 생겨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는 아빠. 아빠 인생에 갑자기 내가 끼게 되면서 수많은 정말 수많은 밤을 고민으로 날 새우다 투잡 쓰리잡을 강행했고 어린 우리를 어떻게 키울까 고민이 되어 우리가 어릴 적에는 우리가 그렇게 예쁜 줄도 모르고 지나가 버렸다는 아빠. 그래서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아빠, 아빠 인생에 나라는 존재는 꼭 필요했을까? 그렇게 고생해서 키워 놓은 자식은 자기 생각밖에 안 하는데. 일 년에 아빠 보러 몇 번 가지도 않는데, 일 년에 아빠 용돈 얼마 드리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평생 그럴 텐데. 물론 아빠가 나를 사랑했을 테고 내가 아빠에게 큰 기쁨이었겠지만 모두 결혼하고 모두 아이를 낳는 시대가 아니어서 결혼과 출산이 정말 가벼운 '선택'이었다면, 아빠는 과연 딱 그 시기에 결혼을 선택했을까? 아빠는 아빠가 원하는 시기에 계획대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평생을 살면서 선택하는 이 많은 당연한 것들에 단 한 번의 진지한 선택의 고민이 있었다면? 이런 선택들에 과연 내가 개입될 때가 있었나, 당연히 학교를 가야 하고 당연히 아이를 낳아 그 아이를 키우는 데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데 너무 엽기적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한 선택이 빠져 있지 않냐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고통이라는 종교적인 말도,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정부의 부르짖음도 과연 진실일까? 너무 단면만 드러났던 것은 아닐까. 출산율은 과연 왜 높아져야 하는가? 우리나라 세금이 걷혀야 하기 때문에? 인구수가 많아야 국방력이 세어져서? 그렇지만 범 지구적으로 생각하자면 인간 때문에 지구가 병이 들어 화성으로 이주를 해야 할 판인데, 세계 인구의 절반만 줄어들면 지구를 좀 더 깨끗하게 오래 쓸 수 있지 않을까? 소비가 줄어들면 산업화 현장이 축소될 테고 공장이 가동되지 않으면 지구는 좀 덜 아프게 되는 것 아닌가? 코로나가 인류에게는 재앙이었지만 덕분에 생태계가 살아났다는데, 지구 입장에서는 인류가 바이러스, 코로나가 백신 아니고?
여러모로 생각이 미쳤을 때의 결론은 그래서 과연 억지로 고통스럽게 행복하지 않게 살아야 할 이유라는 게 어디 있냐는 것이다. 대학을, 공부를, 결혼을,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 동정받아야 하는 일인가? 인간의 선택 아니고? 살겠다고 하는 여러 선택에 박수를 보내주면 되지 않을까? 80년대에는 쪽방에서 깔세로 시작해도 살림을 합쳐 결혼이라는 것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살기 싫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면 결혼을 미루겠다는데 그것이 다포 세대라고 하며 혀를 끌끌 찰 일일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남들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 것은 가족 친구 동료 등 인간으로 얽힌 사회다. 그 사회에서 완벽하게 탈주할 순 없지만 그 굴레에서 아주 살짝만 벗어나면 인생을 설계하는 모양이 아주 달라질 수도 있다. 전 세계가 얼어붙은 바이러스가 휘젓고 간 판에 많은 것이 달라진 지난 일 년을 돌이켜 보며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행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한 템포 늦추며 생각이라는 것이 많아져서 봇물 터지듯 꼬리를 무는 생각을 글로 정리하자니 이렇게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