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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섬, 발리로 가자

휴직하고 세계여행 13

by 하라 Feb 10. 2025

비행기에서 만난 인연     

장기여행은 이동이 반이다. 페낭에서 비행기를 타고 쿠알라룸푸르에서 경유해 인도네시아 발리로 간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발리로 가는 비행기는 어찌된 일인지 아내와 자리가 떨어져있다. 당연히 붙어갈 줄 알고 기내식도 볶음밥 하나, 과일 하나를 시켰는데 아내는 과일만 먹게 생겼다. 아내는 앞자리, 나는 뒷자리에 앉아 간다. 옆자리에 앉은 말레이시아 중년 여성과 대화를 나눴다. 이름은 와니. 알고 보니 AFC(아시아 축구 연맹)에서 일하는 분이다. 발리에서 여자축구대회가 있어 업무 차 떠나는 거라고. 관심 있으면 티켓을 보내준다고 한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기에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역시 세상은 넓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무궁무진하다.

무슬림과 힌디, 화교와 본토 말레이인이 뒤섞인 이 나라가 참 다채롭고 신기했는데 나는 그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서로 안 싸우냐고 물으니,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를 인정한다고.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어디 가봤어?”

“바투 동굴. 원숭이가 많더라. 한국에는 원숭이가 없거든.”

“뭐? 원숭이가 없다고? 정말 놀라운데?”

그렇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원숭이가 없는 게 놀라운 일이다. 아내와 1년 동안 세계여행 중이라 하니 또 놀란다. 베트남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튀르키예 그리고 유럽…. 점점 멀어지는게 두렵다했더니,

"뭐가 두려운데?"

"집에서 점점 멀어지고, 난 영어도 잘 못하고."

"아냐. 다른 사람들도 한국말 못하잖아."

이쯤에서 난 꽤 감동했다.

"근데 말레이시아 사람은 다 영어 잘해?"

"영어와 말레이어는 기본으로 하고 힌두계는 힌디어, 중국계는 중국어까지 하지."

아, 여긴 기본이 3개 국어구나. 비영어권 시민의 두려움은 모르겠구나. 더듬거리는 영어지만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대개 기분이 좋아진다. 호의와 친절을 장착한 채 서로를 대하고 상대의 생각과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유쾌한 와니 덕분에 말레이시아의 끝인상과 발리의 첫인상마저 좋아진다.      



밤의 해변에서 둘이      

신들의 섬 발리에 도착했다. 사실 전에는 발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다. 신혼여행 많이 가는 비싼 휴양지 정도로만 인식했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섬 중에 하나다. 세계 인구 4위(2억 8천만 여 명)의 큰 나라 인도네시아는 17,508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 섬, 왼쪽의 수마트라 섬,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보르네오 섬 등이 대표적인 섬인데, 발리는 자바섬 오른쪽에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섬이다. 작다 해도 제주도의 3배 정도나 된다.

발리는 지역색이 특히 강하고, 이슬람을 믿는 대부분 인도네시아인과 달리 발리힌두라는 토착 종교를 믿는다. 적도 남쪽에 있고, 7, 8월이 건기여서 가장 시원하다. 호주와 워낙 가까워 호주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중국과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여행지다.

운집한 택시 기사들이 호객에 한창이다. 어플과 비교해 보고 몇 번을 더 흥정 후 택시를 탔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스미냑. 얕은 해변이 바다를 향해 수백 미터 펼쳐져 하늘이 그대로 반사되고, 그 끝에는 집채만 한 파도가 끊임없이 친다. 처음 보는 황홀한 풍경. 서핑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파도를 타기 좋아보였다. 모래는 부드럽고 해변은 끝없이 이어져 있다. 더운 날씨에 낮에는 호텔 방에서 쉬다가 오후가 깊어지면 밖으로 나섰다. 해가 넘어간 발리는 시원했다. 서늘한 바람이 먼 데서 불어왔다. 

풍경이 얼마나 좋냐면 위 사진은 무려 위아래를 뒤집은 사진이다풍경이 얼마나 좋냐면 위 사진은 무려 위아래를 뒤집은 사진이다

스미냑은 발리의 서남쪽이어서 바다로 떨어지는 노을을 볼 수 있다. 하늘 높이 솟아있던 태양이 비로소 눈높이까지 내려오면 바다에는 황금빛 길이 생겼다. 파도에 일렁이는 길은 우리를 바다 끝까지 데려다줄 것 같았다. 태양은 천천히 바다 또는 해무에 잠긴다. 사실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다. 해가 사라진 후 하늘에서 펼쳐지는 노을쇼.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 파스텔을 아이처럼 마구 섞으면 이런 색이 나올까. 세계 곳곳에서 만난 노을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감동이었다. 앞으로도 여러번 이 글에서 묘사될 것이다.

한밤의 해변을 걷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까만 바다가 철썩이고 우리는 맨발로 걸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파도가 발을 간지럽혔다. 파도가 지나가면 모래가 조금 꺼지며 발이 빠진다. 바다와의 귀여운 술래잡기다. 바다를 향해 백여 미터를 걸어가도 수심이 무릎밖에 안와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멀리 불빛이 보이고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별이 총총. 한국에서 보지 못한 남반구 별자리가 우리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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