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하고 세계여행 12
버터워스 역에 내려 페리를 타고 페낭 조지타운으로 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옛 시가지다. 1786년 영국이 이 지역을 식민 통치하며 주석광산을 개발했는데 인도, 중국에서 많은 노동인구가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중국인들은 세금을 피해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수상가옥이 지금까지 남아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지금도 도교 사원이나 중국 식당이 많다. 영국식 건물과 한자 간판, 모스크와 힌두 사원이 공존하는 도시. 특히 음식 문화는 섞이면서 발전하는 것 같다. 각자의 장점만을 더한 듯 맛집 즐비하다.
숙소 근처의 호커센터에 가본다. 푸드코트와 비슷한 개념으로 다양한 식당이 입점해 있다. 면요리, 볶음밥부터 고기나 해산물, 피자에 카레까지 등 세계 모든 요리가 모여있는 것 같다. 말그대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자릿세처럼 음료를 꼭 시켜야 하는데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게 주요 일과였다. 미슐랭이 인증한 식당이나 구글 평점이 높은 곳도 찾아다녔다. 집단지성은 옳다. 아쌈락사는 특히 맛있었다. 아쌈은 시다는 뜻. 락사는 생선이나 닭으로 우린 매콤한 국물을 이용해 만든 쌀국수를 말한다. 듣던대로 꽁치김치찌개 맛이 난다. 낯선 음식을 맛봐도 내 경험 세계에서 비슷한 무언가를 꺼내어 비유하는게 재밌다. 경험이 넓어질수록 낯선 경험이 전입해 올 수 있는 품도 넉넉해진다. 생선이 들어가 감칠맛이 좋은지 입에 넣자마자 숟가락은 다음 국물을 뜬다.
차퀘테오는 해산물 볶음인데 느끼하지 않고 식감이 좋다. 납작한 쌀국수를 해산물, 달걀, 야채, 간장 등과 함께 볶아 불맛과 짭짤한 맛이 특징이다. 원래 어부와 농부들이 남은 음식을 모아 빠르게 만들어 먹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나시르막도 빼먹을 수 없다. 코코넛 밀크로 지은 밥에 삼발소스와 말린 멸치, 땅콩을 비벼 먹는 간단한 음식이다. 삶은 계란과 오이도 있어 훌륭한 반찬이 된다. 삼발소스는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도 즐겨 먹었는데 고추장과 비슷하면서도 텁텁함이 덜해 아주 좋았다. 바쿠테는 한약재를 많이 넣은 갈비탕 느낌이다. 색도 보약처럼 진하다. 향이 풍부해 음식으로 먹기에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다. 건강해지는 느낌이라 맛있게 먹었다. 크리스피 포크 덮밥과 완탕은 이곳이 아니라도 맛볼 수 있는 메뉴였지만 아주 맛있었다. 완탕은 한자로 운탄雲呑으로 쓴다. 구름을 삼킨다는 뜻인데 참으로 낭만 넘치는 중국식 명명이다.
음식 문화가 발전한 지역은 디저트도 맛있는 법이다. 방송에 나와 유명해진 카야 토스트도 먹었다. 식빵을 화로에 구운 뒤 버터와 카야잼을 발라먹는 단순한 간식이다. 바삭한 식감에 버터의 고소함과 카야잼의 달콤함이 조화를 이룬다. 연유와 홍차를 섞어 만든 시원한 떼따릭도 매일 한 잔씩은 마셔줘야 한다. ‘떼’는 홍차, ‘따릭’은 끌어당긴다는 뜻인데, 뜨거운 차를 두 개의 컵이나 주전자 사이에서 높이 들어올려 따르는 과정을 반복하며 거품을 만든다. 공기가 섞이며 차가 부드러워지고 맛은 더욱 깊어진다.
로작은 참 재밌는 맛이었다. 파인애플, 망고, 사과 등 과일과 오이, 콩나물, 양배추, 당근 따위 채소를 깍둑 썰어 튀긴 두부와 땅콩을 더한 후 소스를 섞는다. 이 소스는 간 새우, 고추, 설탕, 라임 주스 등으로 만든다. 대체 이 재료의 조합은 뭐람, 무슨 맛인지 상상이 안 될 것이다. 따로 먹으면 맛있는 음식들을 한데 섞어 마구 비벼버린 기괴한 디저트였는데 딱히 맛없지는 않았지만 또 먹고 싶지는 않았다. 백종원 아저씨가 왜 가끔 ‘재밌는 맛이네’라고 표현했는지 알겠다.
초기 중국인들이 정착하며 만든 수상가옥, 클랜제티(clan jetty)를 구경했다. 부두나 선착장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제티(jetty)’라는 이름이 붙은 집성촌이다. 림제티는 임林씨, 츄제티는 주周씨 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인 셈이다. 부실한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바다로 향하는 길을 만들었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늘어선 상업화된 관광지 느낌이다. 뻘이 드러난 바다에는 온갖 쓰레기가 가득해 악취가 심했다. 큰 쥐도 보였다. 더 깨끗하게 관리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조지타운은 벽화의 마을이다. 걷다보면 어김없이 벽화가 나타나는데 생각보다 역사가 깊지는 않았다. 2012년 조지타운 페스티벌에서 리투아니아 출신 아티스트인 어니스트 자카레빅(Ernest Zacharevic)이 실제 사물과 혼합해 유화와 스텐실, 스프레이를 이용해 페낭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벽에 그리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벽화가 추가되었고, 지금은 페낭의 대표 관광코스가 되었다.
페낭에 오면 다들 간다는 페낭힐이나 뱀사원은 관심이 없었다. 자연을 좋아하는 우리는 ‘페낭 보타닉 가든’을 찾아간다. 1884년 만들어진 야외 식물원으로 다양한 동식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오후 느즈막히 도착했는데도 4월의 페낭은 무척 더웠다. 식물원을 한바퀴 돌며 땀을 많이 쏟았는데 초록 잔디와 나무를 보니 눈은 시원했다. 가끔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원했다. 찌는 더위에는 바람 한 자락도 고맙게 느껴진다. 식물원에는 원숭이가 많았다. 바투 동굴에서 봤던 원숭이와 달리 이곳 녀석들은 온순했다.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고, 먹이를 던져주는 관광객도 없었다. 지천으로 널린 열매를 따 먹이로 삼았다. 새끼 원숭이들은 몰려다니며 개울에서 물놀이를 했다. 원숭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벤치에 앉아 지켜봤다. 자연 안에 들어와 있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자연을 좋아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