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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문진 Apr 03. 2024

의문의 택배

응응. 언니 거기 시간 괜찮아? 응응. 그냥, 혼자 집에 있는 게 어색하긴 하지. 짐은 계속 정리하고 있고. 아니 이사 온 지 벌써 일주일이나 됐더라고. 여전히 실감이 잘 안 나. 사실 결혼 자체도 실감이 잘 안 나. 그래도 뭐 오빠 직장이랑 가까우니까 어쩔 수 없지. 나는 프리랜서로 일 하니까 지역에 크게 구애받지는 않고. 아직 집 주변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 정신없이 한 주가 지나가 버려서. 짐은 뭐 내가 그냥 오빠네 집으로 들어온 거라서 크게 정리할 건 없는데 어수선한 기분이 안 가셔. 꼭 뭔가 계속 여행 와있는 것 같은 기분 같기도 하고. 원래 신혼 초반엔 이런 기분 드는 거 맞지? 응응. 언니는 거기 어때? 미국 간 지 벌써 7개월 됐어. 언제 다시 오냐, 나 심심해. 남편더러 빨리 조기졸업해서 공부 끝내라고 해. 농담이야. 아니 근데 언니 나 오늘 아침에 이상한 문자 받았다? 아니 그건 아니고 오늘 중으로 택배 도착할 거란 문자가 왔더라고. 그런데 보낸 사람 이름이 좀 이상한거야. ‘아브라카’야. 뒤에가 길어서 잘린 느낌? 그런데 나 최근에는 뭐 산 게 없거든. 응응. 언니가 봐도 이상하지? 나도 그랬어. 딱 보자마자 뭐야 무슨 아브라카다브라야? 싶으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거야. 누가 나한테 저주를 보냈나? 싶었지. 만약  택배 뜯었는데 동물 사체 같은 거 나오면 어떡해. 아니면 내 사진이 칼로 패어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내가 버린 물건이 고대로 들어와 있다거나. 아우 말 하면서도 소름끼친다. 아니 예상가는 게 없어 진짜로. 궁금하긴 한데 그렇다고 오빠더러 같이 뜯어보자고 하기도 좀 뭔가 그렇고. 처음엔 핸드폰 알림에 뜬 미리보기로 봤을 때는 문자가 스미싱인가 했거든? 그런데 송장 번호 복사해서 택배사 홈페이지에 넣어 검색해봤더니 가짜는 아니더라고? 아니, 그런데 뭐 ‘아브라카다브라’일 것 같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기는한데. 응. 언니가 들어도 이상하긴하지? 그대로 버리자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아무리 봐도 사람 이름은 아닌데. 감이 안 잡혀. 에이 설마. 그때 걔가 똥차이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할라고? 아냐 아냐. 뚝배기를 던진 건 아니고 순대국밥 먹으러 가서였지. 갑자기 혼자 핀트 나가서 먹고있던 깍두기 내 순댓국에다 던졌잖아. 진짜 그런애 왜 만났었지? 응. 그때 나 안 때린다고 데이트폭력은 아니라고 넘어갔잖아. 분노조절을 내 앞에서만 안 한 것 같애 걔는. 어휴 생각도 하기 싫다. 걔? 걔는 애가 좀 거칠긴 해도 이렇게 귀찮게 나를 괴롭힐 애는 아닌데. 저주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안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아니, 아니. 그때 휴게소 들렀다가 다시 고속도로 진입할 때 주행하던 차가 클락션 울렸다고 계속 그 차 뒤 바짝 붙어서 간다고 브레이크를 계속 밟아서 내가 멀미할 뻔 했지. 그때도 무섭긴했어. 그래도 나한테 직접적으로 뭘 한 적은 없으니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지 뭐. 누구지? 아니면 진짜 옛날에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날 끝까지 자기 차로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던 그 남자인가? 아,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 집 주소를 모르지. 헐. 생각해보니까 여기 주소를 알만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 뭐야 갑자기 이렇게 생각하니까 더 소름 끼쳐. 오빠 오늘 퇴근도 늦게 한다고 했는데 무서워죽겠네. 아니면 나 분리수거장 가서 그냥 거기서 아예 택배 뜯어볼까? 응응. 어. 언니 알겠어. 다시 통화하든가 하자. 응응. 얼른 가봐. 응. 그래. 알겠어. 나도 다시 연락 할게. 어. 들어가.


연희는 전화를 끊고 택배가 도착했나 문을 열고 확인했다. 문 앞에는 제법 부피가 큰 상자가 배달 완료되어있었다. 카디건을 걸치고 택배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15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멀게만 느껴졌다. 분리수거장 앞에서 심호흡을 세 번 정도 하고 실눈을 뜨고 최대한 상자를 몸에서 멀리 한 상태로 테이프를 뜯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경비원 아저씨께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상자를 열었다. 마침내. 연희는 내용물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안에는 손바닥만한 작은 상자가 하나 더 들어 있었다. 그 상자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있었다. ‘아브라카다브라 지방타파’. 3주 전 SNS를 통해 공동구매로 구입한 다이어트 보조제였다. 정신이 없어서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데다가 보내는 이의 이름도 공동구매를 연 인플루언서의 이름이 아니어서 상상조차 못 했다. 허탈함에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고, 아무도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사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어서 안도했다. 다행인 일이었다. 큰 상자 위에 붙은 송장 테이프를 깔끔하게 뜯어서 버리는 대신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고 택배 상자만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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