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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Feb 12. 2024

좋아하는 일을 자원봉사로 만난다면

청룡의 기운이 도서관에도 깃드길 바라는 마음

어느덧 직장 생활 16년 차, 열정은 아무리 헤집어보아도 내 안에서 찾을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엔 일태기가 가득했다.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출근해야 한다는 한숨이 밀려왔다. 영혼은 신발장에 넣어두고 그저 퇴근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는 날의 반복이었다.


주말 도서관 봉사를 시작하면서 내 안에 새로운 활력이 차오른다. 낯선 일, 낯선 사람,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감은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아직 서툴고 실수연발이지만 그건 배워서 익숙해질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더구나 도서관에서 책이 흩뿌리는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직장에서 흔히 바라는 승진, 연봉상승,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인정 욕구 하나 없이 순수한 자원봉사만이 느낄 수 있는 보상이었다.


봉사 중 잠시 틈이 생길 땐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곤 한다. 꼬마 천사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책을 꼭 쥐고 그 안에 빠져드는 모습은 바라만 보아도 미소 짓게 만들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책장 사이를 오가며 어떤 책을 볼지 책을 꺼냈다, 집어넣었다를 반복하는 모습은 옛 시절을 자연스레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얼마되지 않은 용돈이 모이면 시장 한구석에 있었던 오래된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이라 쓰인 낡은 간판에 빠진 'ㅁ'는 그 긴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입구에 앉아 손님이 와도 별로 아는 척도 하지 않는 두꺼운 뿔테안경의 사장님을 지나 소설 코너로 가서 책도 꺼내보고, 저 책도 읽어보며 시계의 긴 바늘, 작은 바늘 모두 멈추는 마법의 시간을 보냈다.


반드시 운명처럼 한 권의 책이 다가왔다. 그러면 얼른 읽던 페이지를 놓고 책을 집고 얼른 가판대로 향했다. 뒷주머니에 넣어 둔 꼬깃한 지폐를 꺼내 계산하곤 그 길로 한걸음에 집에 달려가 나머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의 한 조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도서관이란 공간은 여전히 예스러움이 묻어나 있다. 현대인의 빈 틈을 완전히 잠식한 핸드폰에서 벗어나 뻣뻣한 촉감이 느껴지는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장면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틱톡, 스냅챗과 같은 숏폼이 유행하며 1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다른 영상으로 갈아타는 현실 속에 장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책은 지금껏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물론 갈수록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은 몹시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로 자원봉사의 기회가 생겼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봉사를 통해 책 읽는 사람을 돕는 일은 그보다 의미 있을 수 없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처럼 봉사를 하는 인원은 얼마나 될까. 행정안전부 e-나라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20세 이상 성인으로 1년에 1번 이상 자원봉사를 참여한 인원은 대략 160만 명 정도가 되었다. 참여율은 인구대비 3.9%였고, 증가율은 15.3%였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점은 코로나 시점인 2019년부터 줄었던 봉사 인구수가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단 점이다. 


'어떤 일을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도움. 또는 그런 활동.'이란 자원봉사의 사전적 의미처럼 강요 없이 스스로 해야 하는 활동이지만 한 번쯤은 용기를 내서 손길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면 어떨까.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이 크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1365 자원봉사 포털>


구정 연휴를 맞이해서 주말에 도서관이 휴관을 하며 한 달 만에 휴가를 받았다. 쉰다는 즐거움과 더불어 마음 한구석엔 그리운 마음도 들었다. 어느새 그런 존재가 되었나 보다. 


청룡의 새해를 맞이해서 그 기운이 도서관에도 찾아와 많은 사람이 이용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비록 그로 인해 몹시 바쁠지라도.




한 줄 요약 : 내가 내민 작은 손길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는 큰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라라크루, #라라크루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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