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
[목차: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
♬ 회사원 은주
♬ 퇴사
♬ 결혼
♬ 은희의 기억
♬ 이주와 이혼
♬ 은희와 여경
♬ 여경의 마지막 소설
♬ 예상치 못한 사건
♬ 동거
♬ 에필로그
[소개말]
-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또한 ‘가상 다큐 인터뷰 미편집본’의 형식, 또는 ‘다큐 인터뷰 문체를 적용한 에세이 소설’ 형식을 취했습니다. 감독에게 각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뜻하지 않게 여경이 죽음으로써, 은희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망설이던 진로를 정하는 계기가 된다. 여경은 은희에게 쉽게 풀지 못할 숙제를 준 것일 수도 있다. 은희는 그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고, 속 시원히 풀지 못할 문제 앞에서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된다. 그 풍경 안에는 자신도 놓여 있었다.
♬ 예상치 못한 사건
마지막 합평을 했던 그날, 헤어질 때까지 별다른 이상 징후를 느끼진 못했어요. 정말 여경 씨가 맞나요? 아직도 믿기질 않아요. 일어난 사건 면면이 너무도 당혹스러운 비극이라서요.
여경 씨가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일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여경 씨를 오래 알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앞날에 대한 열의로 가득했어요.
상상에서 과격한 면이 있었지만, 그런 건 공포영화를 좋아하거나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에게서도 흔히 보는 정도의 취향이었어요. 그렇게 한 순간의 분노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망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어요.
제게 질문하던 형사님은 그런 말을 흘려듣더군요. 하기야 형사님은 여경 씨를 모르니까요. 아무래도 감정이입을 할 수는 없겠죠. 직업적으로도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하니까요.
솔직히 섬뜩한 느낌이 들기는 했죠. 친아버지를 살해한 것이니까요. 연일 신문과 텔레비전에서도 이 소식을 경쟁적으로 보도했죠.
“그러니까 그날 이후로는 보지 못했다는 거죠? 그냥 확인 차원에서 묻는 겁니다. 오해하지 마시고요.”
친아버지를 죽인 이유로는 오래 전부터 성학대를 당해왔다는 것인데, 친아버지가 직접 자백한 건 아니고, 교회에서 간증하는 과정에서 여경 씨가 주장했다고 하더라고요.
두 사건 모두 너무 무겁고 충격적이라, 내 주변에서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의 이야기라고 하자니 어쩐지 비현실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그땐 오랜 기간, 그러니까 한 사람의 성장기 전부를 그렇게 망쳐버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옆에서 알고 지낸 사람으로서 그 낌새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게 미안했지만, 사건을 접했을 당시엔 제 감정이 정확히 뭔지 모른 채 혼란스러웠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살해되었고, 그녀는 며칠 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니 아무도 진실의 실체를 알 수 없는 채로 수사는 종결되었죠. 한동안 미디어에서 떠들었을 뿐이에요. 교회에선 가급적 이 사건이 미디어로 보도되는 게 싫었는지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어요. 교인들이 인터뷰를 피하는 영상이 미디어의 전파를 탄 적이 있죠.
그런 것으로 사건의 진실을 알기란 불가능했죠.
교회 쪽에선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경 씨의 일방적 주장만 있었을 뿐이라 주장했죠. 어떠한 증거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 채로, 가해자 피해자 모두 증발했으니까요.
그러고 나니 끔찍한 순간에 대한 여경 씨의 간증조차 풍문처럼 여겨졌어요. 설마 그런 사건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여경 씨가 아버지를 죽여야 했던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싶었죠.
“글쎄 알고 보니, 카더라 카더라. 정말 그런 끔찍카더라.”
사실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른 방식, 예를 들어 자신이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추측했죠. 재산 문제라든지, 정신적 문제라든지 하는 거요. 아버지의 강한 압박 때문에 홧김에 우발적 사고가 일어난 것이라는 말도 있고, 사이비종교나 마약 때문이라는 소문도 돌았어요.
저요? 저는, 그러니까 저는요. 어째서 여경 씨가 그즈음 나를 만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사건 때문에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할 때에도 그런 생각 때문에 찜찜했죠.
여경 씨는 도움을 청했던 걸까요? 아니면 자신이 이 세상에서 무얼 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누가 자신을 이해해주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려고 저를 만난 걸까요? 자꾸만 제가 그녀를 도와야 할 순간을 놓친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조사해보니 이미 만남이 있기 전에 사건이 발생했더군요.”
형사님 말대로라면 이메일 저장 시점과 문자 내용을 고려할 때 소설을 탈고한 뒤 하루 이틀 사이에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교회에서 간증을 했다는 거예요. 아마 생을 정리할 마음을 먹고, 많은 이들에게 사건의 실체를 알리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를 만나러 왔으니, 그 견해대로라면 그녀의 행동을 막기엔 늦었던 거죠.
어떤 면에선 한시름 놓았죠. 저를 만난 뒤로 우발적인 살인 사건이 있었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혹시나 소설에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충동적 욕구에 제가 기름을 부은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에 걸렸거든요.
한시름을 놓고 나자 이번에는 마음이 아리더군요. 그녀가 마지막을 맞이하기 전에 저를 만났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으니까요. 그녀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미처 내뱉지 못했을까요? 그래서 허구의 옷을 입은 소설로 사적 복수를 꿈꾸었던 걸까요? 그건 현실에선 실행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말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미안했어요.
그래요, 저는 그녀가 교회 사람들에게 간증을 통해 도움을 청했다고 생각해요. 그곳은 아버지의 공동체이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경 씨가 오래도록 몸담았던 그녀의 공동체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사건은 너무도 빨리 진행됐어요. 저 역시 도움을 요청 받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녀를 도울 수 없었죠. 이미 모든 게 끝난 상태였으니까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도 아무런 진실을 들을 수 없었고요. 미디어에선 흥미 위주로 보도하다 진실이 미궁에 빠지자, 곧 수많은 존속살해 사건 중 하나로 건조하게 마무리됐죠. 얼마 안 가 대중들도 이 사건을 잊고 말았고요.
저도 어쩌면 이 일을 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마다 자꾸 여경 씨의 일이 파편처럼 끼어들더군요. 그래선 안 될 것 같았지만, 자극적인 소재로 포장되어 마음 한 구석에서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어요. 때로는 꽤 매력적인 설정으로 드러나기도 했는데,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그 매력적인 부분에 녹이 슬고, 여경 씨의 이름이 적혀 있었죠.
결국 녹슨 이야기들은 걸러내야 했어요. 그건 여경 씨로부터 나온 것이니 여경 씨를 지우고는 절대로 써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여경 씨의 피로 교환한 이야기 같았으니까요. 흥미의 소재로 쓰기엔 실존하던 사람의 비극적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었어요. 정말 함부로 쓸 수 없을 소재였죠.
결국 연쇄적인 상상의 갈망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카메라를 들었어요. 그러나 그게 어떤 인위적 설정이 아니라, 진실을 좇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인지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죠. 그 자료를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일단 여경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찍어 두기로 마음먹었죠.
온전한 다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 채 버릇처럼 카메라를 들었던 거예요. 그게 제 다큐 작업의 시작점이었어요. 비록 여경 씨의 일이 다큐의 중심이 되진 못했지만요.
그럼에도 늘 얕은 앞바다처럼 찰랑거리는 파도가 제 무릎까지 젖게 만드는 것처럼, 여경 씨의 존재감은 잔잔하고 일상적이고 전방위적이에요. 제 모든 다큐 작업의 명분이자, 빅뱅과도 같은 사람이니까요.
뭐라도 속 시원히 찾아내면, 그녀에 관한 사건을 잊을 수 있거나 마음 편히 관련 소재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아직도 그 길 위에 서 있죠.
여전히 여경 씨에 관해선 새롭게 안 진실은 없어요. 어쩌면 처음부터 알아내기 희박한 시도였죠. 현실적으로 많은 사건이 해결되지 않거나 진실이 애매하게 덮인 채로 기억에서 잊히죠.
“전 이쯤에서 책을 덮어주는 게 맞다고 봐요. 은희 씨도 충분히 노력했어요.”
우리가 그런 사건들은 모르기 때문에 대개 진실이 밝혀지는 사건만 알게 되잖아요.
그러니 언제나 진실이 밝혀지는 것처럼 착각하죠. 여경 씨의 사건은 교회의 간증도 있었고 충격적 사건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분명히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줄 실마리를 쥐고 있을 거라고 믿어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사람을 찾진 못했어요.
가까이 지내던 어릴 적 친구들은 병사하거나, 몇몇은 뉴질랜드나 미국으로 오래 전에 건너간 상태였고,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직장 사람들이거나 교회 사람들이었죠. 친척도 많지 않았는데 그나마도 거제 쪽에 살아서 왕래가 많은 편이 아니었죠. 그마저도 성인이 된 뒤로 여경 씨가 잘 찾아가지 않다 보니, 친척이 남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생각보다 대인 관계 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었는지 지인들은 그를 신사적으로만 기억했죠. 그만큼 깊이 아는 사람도 없었고, 아버지의 비서조차 특별한 문제를 기억하진 못했어요. 그에게도 약간의 비리가 있었던 정황이 있지만 그것과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고요.
아, 그녀의 아버지란 사람은 교회 장로였다고 하더군요. 평판이 좋았고, 교회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분이라는 말도 있었다죠. 그래서 교인들이 여경 씨의 간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고 하네요. 교회의 원로목사들은 이 사건의 실체를 명백히 하기보다는 조용히 덮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교회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뭔가를 말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자칫하면 시끄러워지지나 않을까 싶을 일이고, 모두가 조용히 잊길 바라는 사건이었죠.
유일한 한 분 정도가 당시 간증할 때의 일을 인터뷰해주기는 했지만, 새로운 사실은 없었어요. 그저 다시 한 번 읽어보았더니 어쩐지 소설 속에 여경 씨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이 안 좋았죠. 결국 아무도 이 사건의 실체를 증언해줄 수 없었으니, 우리는 그것을 파헤쳐 여경 씨의 억울함을 달래주려던 마음은 접어야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접지 않은 일이 생겼죠. 그녀의 숨겨진 순간을 찾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진실에 가닿지는 못할 거란 예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많은 여성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어요.
요즘 그들의 인터뷰를 담는 일을 해요. 그 작업이 그들의 삶, 또는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구든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꾸준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큐를 만든다는 게 아니라, 인터뷰를 남기는 작업이죠. 그 파편적 축적물을 활용하여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틈틈이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연대해서 힘닿는 대로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걸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는 걸요. 방향 없이 산만한 취재를 하다 보면,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제 다음 다큐멘터리의 물꼬가 터지더라고요. 동물에 관한 것이든, 자연에 관한 것이든, 사회적 약자에 관한 것이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