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
[목차: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
♬ 회사원 은주
♬ 퇴사
♬ 결혼
♬ 은희의 기억
♬ 이주와 이혼
♬ 은희와 여경
♬ 여경의 마지막 소설
♬ 예상치 못한 사건
♬ 동거
♬ 에필로그
[소개말]
-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또한 ‘가상 다큐 인터뷰 미편집본’의 형식, 또는 ‘다큐 인터뷰 문체를 적용한 에세이 소설’ 형식을 취했습니다. 감독에게 각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은주는 귀국해서는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아이 전학 문제가 해결되고 집을 구하면서, 은희도 혼자 살기보다는 둘이 낫다 생각하여 은주 집으로 들어간다. 집은 충분히 넓었다. 셋이 살기엔. 그곳에서 생활비를 내고 얼떨결에 인정 받은 비혼주의자로, 자기 일을 하면서 간혹 집안 일을 도왔다. 수연이는 어쩐지 은주보다는 은희 쪽을 닮았다. 아빠를 닮은 것일 수도 있었지만. 활동적이고 문학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수연. 그녀는 어느 날 은희를 따라나서는데... 은희의 작업이 궁금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 동거
세상은 너무 느리게 변해서 어찌 보면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가도, 또 달리 보면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전 아직도 제사 때문에 양자를 들이는 경우가 있을 줄 미처 몰랐어요. 그 집에는 딸만 있었거든요. 딸이 제사를 지내면 될 텐데, 제사를 지내야 할 아들이 필요하다는 논리였죠. 그래서 작은 댁 막내아들을 양자로 들인 거죠. 이건 예전에나 있을 법하잖아요.
내가 생각하던 세상은 조금 느리더라도 보조를 맞추고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어안이 벙벙하게도 뒤따라오지도 못하고 어디선가 헤매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저 혼자만 세상을 버려두고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죠. 누군가는 새로운 가치를 원하는데, 아직도 예전의 가치를 붙든 사람들도 묘한 공존을 하고 있었어요. 어색한 동거의 형국이랄까요.
차라리 마음 맞는 사람끼리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한 적이 있었죠.
물론 반론도 있었죠.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과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따로 살다간 나라가 둘로 쪼개질 것이라고요. 그런 공상은 터무니없다 하더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죠. (웃음)
하물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살면 이건 더 안 좋은 상황이 되겠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SF적인 상상으로는 가능하죠. 여자만의 공동체요. 보수든 진보든 자기들은 상식적이란 걸 강조할 때 양념처럼 여성의 가치를 거론하지만, 다 사탕 발린 말에 불과했어요.
제사가 없어져야 하고, 시집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농담일 뿐이에요. 아니, 농담에 머물러야만 하죠. 진담으로 하는 순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한다고요.
“파문이다! 제사를 없애?”
언니는 독일에서 들어온 뒤, 잠시 우리 집에 머물렀어요. 엄마 집에 머물러도 되지만, 아무래도 재취업한 곳이 저희 집에서 가까웠으니까요. 또 어차피 수연이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나으니까요. 수연이는 한국에 들어온다는 핑계로 클라리넷을 그만둘 수 있어 좋아했죠. 정말 하기 싫었나 봐요.
외고 2학년 과정으로 편입할 수 있었죠.
언니는 아이의 주변 일을 정리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학교에서 가까우면서 주거 환경이 좋은 쪽으로요. 평수를 넓은 아파트로 구할 여력이 되었죠. 그래서 저더러 같이 살자고 하더군요.
자신에게 결혼 생활로 남은 건 돈밖에 없다고요. (웃음) 하기야 남편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당당한 이혼녀라고 추어올려주었는데, 그 말을 듣더니 언니는 씁쓸하면서도 후련한 것 같았죠. 이제는 이혼이 흉도 아닌 시절이라면서요.
그 덕분에 저도 환경이 좋은 주거단지에 세 들어 사는 셈치고, 제 몫의 생활비를 주는 조건으로 그곳으로 함께 이사했어요. 저로서도 가사를 분담하면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나중에야 언니의 속셈을 알아챘다며 농을 하기는 하는데, 정말 아이가 있는 집에선 이런저런 잔손이 많이 가더군요. 언니가 아이 일에 신경 쓸 때, 저는 주로 집안일을 관리한 셈이죠. 바깥 일이 없는 비수기에는 생활비를 덜 주는 대신, 살림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으니까요.
남자요? 생각 없어요. 지금 이대로 사는 게 좋은데, 어느 순간 가족들도 ‘왜 결혼 안 하느냐?’는 질문을 안 하더라고요. 언니도, 엄마도요. 혼자 사는 것도 멋지게 살면 괜찮다면서요. 알게 모르게 비혼주의자로 낙인 찍혔다고 해야 하나, 인정받았다고 해야 하나. (웃음)
어쨌든 그랬어요.
수연이랑은 친하게 지냈어요. 아이가 한국에서 거의 살지 않고 미국과 독일에서만 살았기에 가치관도 많이 다를 줄 알았는데, 언니의 영향 덕분인지 부모가 둘 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집안에서 한국식으로 컸대요. 물론 체벌 이런 건 없었죠. 그곳에선 큰일 나니까요.
어쨌든 큰 이질감 없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성격이더군요. 아이가 예민한 면도 있고 감수성도 풍부한 편인데, 그렇다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며 자신을 주장하지는 않더군요. 엄마를 닮았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수연이는 수연이죠. 언니를 그대로 닮은 건 아니었다는 의미예요.
어떻게 보면 저를 닮았는지 직선적인 면도 있었어요. 활동적이고, 좀 감정적으로 목표에 부딪쳐보는 과감한 적극성도 엿보였고요. 형부를 닮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저는 늘 저를 닮은 거라고 주장하죠. 수연이는 인문학이나 문학, 영화, 음악 같은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죠. 정확한 숫자를 선호하던 은주 언니랑은 그 점에서 많이 달랐죠.
수연이는 가끔 쉬는 날에 학원에 안 가는 적도 있었어요. 과외를 쉬거나 학원을 가지 않을 때면, 보통은 집에서 공부를 하지만, 수연이는 그런 면에서 태평한 성격이었죠. 언니라면 절대로 그러지 못하는데, 저는 예전에 수연이 같았거든요. 제법 놀러도 다녔어요. 놀러 다닐 때는 공부 생각을 하지 않았고요.
언니는 늘 계획 하에 그걸 장악하지 못하면 그 일을 신경 쓰느라 놀러가서도 그 생각을 자주 했는데, 그럴 때면 제가 핀잔을 주곤 했어요. 그렇게 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여기선 아무리 생각해보았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요. 돌아가지도 못할 거면서 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붙들고 있느냐고요.
수연이 성격이 저와 닮은 면이 있다는 게 제법 반가웠어요. 그런 수연이가 여름 방학엔가 한번은 저를 따라나서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인터뷰를 따기 위해 지방에 내려갈 일이 있었거든요.
“아기 때는 정말 가볍고 조그마했는데, 언제 이리 컸는지…”
그즈음 그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이 있었죠. 피해 학생이 둘이었지만 한 학생은 인터뷰를 원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완강하게 반대하셨거든요. 다른 한 학생은 힘들더라도 법적 대응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었고요. 그 아이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어요. 그건 우리의 몫이 아니니까요.
그 말의 무게를 감당할 아이의 결정이고, 기록되고 난 뒤 뜻하지 않은 결과에 대하여는 아무리 우리가 함께 고통을 짊어져준다고 해도, 끝내는 아이가 감당해야 할 짐이었으니까요.
기다려야 했어요. 강요하지도 않고, 유도할 수도 없었어요. 아이가 선택할 길에 함께 서 있을 뿐이었죠.
그 순간에 수연이도 함께 있었어요. 처음에 같은 또래 아이의 모습에 피해 학생은 경계하는 듯했죠. 고민의 무게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감지했던 것일지도 모르죠.그런데 수연이는 그런 면에서 장점이 있었어요. 인내심 있게 그 순간에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죠. 그냥 챙겨온 책을 읽을 뿐이었죠. 잘 풀리지 않는 악기와 씨름하던 시간 동안 쌓인 습관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 될 건 안 된다나요. 그저 그 악기를 노려보다 결국 연습할 수밖에 없었대요. 뜻밖에 답은 간단했던 거죠. 지금 당장 모든 게 갑자기 해결될 수는 없다는 거겠죠. 결국 악기를 놓았지만, 그 습관만큼은 남았다네요. 그 말을 하는 수연이의 표정에 아쉬운 감정이 스민 것 같기도 했어요. 제 기분 탓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