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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소설보다는 에세이처럼 11
이별이 만들어준 만남
by
봄비가을바람
Sep 21. 2022
"네, 여보세요. 부장님.
잘 지내시지요?"
'한서연이 휴가 신청서를 냈어."
"서연이가요?"
"내가 며칠 전에 멍하게 있길래 한 마디 했거든. 이제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네, 부장님. 제가 알아보고 전화드릴게요."
"부탁하네."
지수는 부장의 전화를 끊자마자 서연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전화가 꺼져 있다는 소리만 들릴 뿐 서연과 통화가 되지 않았다.
순간, 지수는 불안한 마음에 몸까지 부들부들 떨렸다.
'어떻게 하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잠깐, 오늘 윤승우 생일인데..'
공항 풍경은 3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반가운 사림들끼리 시끌시끌한 인사가 끝난 뒤 저마다 가방을 끌고 바쁜 걸음이 오고 갔다.
서연은 택시에 가방을 싣고 신혼여행 때 묵었던 호텔로 향했다.
바다가 넘실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다 물결이 잡힐 듯 가까이 있는 전망 좋은 방이다.
승우와 이 방에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와!"
탄성이 먼저 나와 신혼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좋은 곳이었다.
"손만 잡고 잘 거야."
승우가 마음에 없는 농담으로 설레게 할 줄 아는 사람이란 걸 처음 알았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저물어 가는 노을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기대고 앞으로 함께 할 많은 미래를 이야기했었다.
서연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을 고개를 돌려 방을 나서며 끊어냈다.
바닷가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서연의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지나갔다.
3년 전 바다 그대로인데 바닷가 여기저기 안전사고 주의 경고판이 눈에 띄었다.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서연은 애써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또 있었다.
승우와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한 하진의 친구가 사장인 식당이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바로 바뀌어 있었다.
바다와 어울리는 한껏 신나는 음악과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즐거워 보였다.
노을이 바닷물을 빨갛게 물들이는 저 멀리 승우가 있을 것이다.
서연은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아 오렌지빛 노을을 등지고 돌아서려다 다가오는 모래 위 발자국 소리에 고개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여기구나. 그 녀석이 있는 곳이."
"어머니."
"이렇게 좋은 데에 있구나."
"어머님, 어떻게.."
"어쩌면 너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이제 우리 승우, 정말 보내주자."
"어머님."
두 사람은 승우가 있는 바다를 보며 나란히 앉았다.
서연은 승우가 끼워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승우의 어머니를 가만히 보았다.
이 노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노년을 아름다운 노을처럼 평안할 거라는 기대와 기원은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남편과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삶이 결코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기에.
그래서 승우 어머니는 서연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이렇게 서연 옆에 있는 건 오늘로써 서연이 승우와의 인연을 끝맺음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 오빠한테 갔었어요. 반지를 돌려주려고 했는데 못 했어요."
"서연아, 이제는 우리가 살 날을 생각하고 살 날만 이야기하자. 앞으로 우리에게는 승우는 없어. 난 남편 없이 승우를 보며 살았어. 지금은 승우도 없으니 어떻게 살지 막막한데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없는 사람에게만 기댈 수 없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아직은 발걸음이 안 떨어져요. 오빠가 붙잡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결국 머물 핑계를 찾는 거야.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어머님."
"아무도 너한테 뭐라 할 사람 없어. 나도, 승우는 더욱이 할 말 없고."
서연은 또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건 세상에 없는 사람이 주는 반지 같다. 소중하고 귀한 인연을 맺기도 하지만 그 인연을 옭아매는 족쇄 같기도 해. 나한테도, 서연이한테도."
"....."
서연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로 흐려지는 시선 안에 승우 어머니 역시 울음을 삼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반지는 내가 승우한테 돌려주마."
그리고 서연의 손을 꼭 잡았다.
서연은 결국 울음이 터졌다.
승우를 위해 우는 마지막 울음을 이 오렌지빛 향기 가득한 노을에 모두 쏟아냈다.
<출처/Pixabay >
"어서 오세요."
서연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하진은 눈이 동그래졌다.
반가우면서도 무슨 일인가 싶은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저, 예약 못 했는데 세프 추천 코스로 주문할 수 있나요?"
"아, 네. 잠시만요.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네. 주문 가능합니다."
"네. 그럼 세프 추천 코스로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오픈 키친 앞이 아닌 멀리 식당 한쪽에 앉아 있었지만 하진은 서연만 있는 것 같았다.
차례로 나오는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혼자 하는 식사지만 외롭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하진의 눈길이 계속 자신에게 머물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음식 접시가 치워지고 하진이 캐러멜 마키아또 두 잔을 들고 왔다.
"후식으로 진한 커피를 내놓는데 서연 씨 맞춤으로 캐러멜 마키아또를 가져왔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는 마주 앉는 하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진은 전과 다른 서연이 반가우면서도 불안하기도 했다.
"잘 있었어요?"
이번에는 서연이 먼저 안부를 물었다.
"이제는 진한 이탈리아 커피도 마시고 싶은데요."
"네. 좋아요. 우리 저녁에는 이탈리아 커피 마셔요."
하진은 캐러멜 마키아또를 아직 마시지 않았는데도 왠지 심장이 달달해진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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