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 아장 걷기 시작하는 아이가 부모에게 아주 기특한 날들이 있더랬다.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사소하게 기특했던 적이 있었다.대충 이런 느낌이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일찍 걸었다든지, 우리 아이는 아직 어린데도 엄마라는 소리를 제법 똑 부러지게 발음한다든지, 우리 아이는 발육이 좋아 키가 상위 몇 퍼센트에 속한다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다른 아이들보다 배움이 조금 빨랐던 아이들에게 사람들은 특별히 영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영재라는 수식어는 부모들을 열광시키에 충분했다. 내가 갖지 못했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라니 생각만 해도 흥분되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지만 내 아이는 특별하다는, 그런 아이를 자신이 낳았다는 우월감 같은 것도 느낄 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영재들이 빠르게 터득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나 쓸데 없는 재능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더하기 빼기 같은 것들이나, 단기 기억력 같은 것들 말이다. 남들보다 먼저 터득한 것이나 특별한 재능을 자랑스러워하는 건 철저히 자본주의에 근거한 사고방식일 거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발견해 낸 재능이나 특별한 능력은 제법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보다 앞서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결국 그 뿐이다. 초등학생 때 키가 빠르게 자란 아이와 고등학생 때까지 키가 자란 아이 중에 누가 더 큰 키를 가졌는지는 결국 성인이 된 후에야 알 수 있는 거다.간혹 어렸을 때 영재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 평범하게 살아가기도 하지 않던가.
빨리 발견해 낸 재능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빨리빨리'의 문화와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빨리빨리’라는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해 어떤 외국인은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 좋다고 했다. 외국인에게 그건 어쩌면 신세계였을 거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 문화로 인해 그렇게 어디서나 빨리빨리를 외쳐대는 통에 우리나라의 IT산업이 전 세계 최고의 수준이 되지 않았던가. 무언가를 빨리 할 수 있다는 건 참 긍정적이다.
하지만, 식당을 이용할 때 모두 빠르기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식당에선 주문과 동시에 메인요리를 제외한 밑반찬들이 나오지만, 어떤 식당에서는 느긋하게 코스요리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 식당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주인에게 불만은 없다. 오히려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잘나가는 식당에서의 식사가 그들에게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는 거다.어쩌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빨리빨리'란 편리하지만, 그 자체에 자긍심을 갖지 못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미식가였던 한 선생님은 음식에 대한 가치관이 남다르셨는데 간식은 몰래 먹어야 맛있어서 간식을 사다 두곤 아이들이 잠들 때를 기다렸다가 몰래 먹는다든지, 맛있는 음식은 양이 적을 때 더 맛있어서 일부러 조금씩 사다 놓고 먹는다든지 하는 거였다. 그 중에서도 고기에 대한 가장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셨는데, '고기는 한꺼번에 굽지 않고 한 점씩 구워 먹어야 맛있다. 그래서 직원이 고기를 구워주는 식당에서도 절대 직원이 굽지 못하도록 한다. 직원이 불판에 많은 고기를 올려놓고 구워주면 빨리 식당에서 나가달라는 말처럼 들려 불쾌하다'고 했다. 그 분은 음식에 관해선 빠른 것은 불편한 사람이었다.
그 '빨리빨리'의 문화 덕분에 우리나라는 디지털시대로 빠르게 바뀌었지만, 가끔은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요즘엔 어디서든 빠르게 할 수 있는 대답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대화할 때 그 만큼 생각할 시간이 짧아져 깊은 대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시간에서 나오는 것 같다. 화가 날때 잠시 뒤로 물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화가 풀리지 않던가.
요즘은 흔히 볼 수 없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차례를 기디리던 설렘을 기억하는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오래 생각하고 결정하던 그 시절 말이다. 요즘 사람들이 철이 없고 신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대답 때문에 신중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말을 순화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