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14화

by 김소연



나는 잘 웃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잘 웃지 못한고 해야한다. 그건 아주 오래전에 생긴 습관이다. 난 기면증 환자이고, 기면증의 한 증상인 탈력발작이라는 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증상은 환자마다 조금 다르지만, 특정한 흥분상태에서 나타나는 발작으로 대개 1~2초, 길게는 5초 정도 이어진다. 기면증 환자의 대부분이 주로 웃을 때, 행복할 때 신경이 마비되고, 가끔은 웃긴 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기면증 환자가 발작을 하거나 갑자기 잠에 든다고 해서 그들이 정신을 잃는 건 아니다. 다만 몸이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기면증이라는 말을 한자로 풀어보면 정신은 잠들지 못한 채 몸만 잠드는 기이한 수면 패턴을 가지고 있는 병이다. 그러니 발작을 하는 기면증 환자 옆에서 그들을 조롱하거나 뒷담화를 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면증 환자는 다 듣고 있다.


기면증 환우협회의 게시판 글에 의하면, 모 학원에서 학생이 기면증이 있다는 점을 알렸는데도 수업시간에 잔다며 학원선생이 그 학생 앞에서 다른 학생들과 흉을 봤다는 글이 있다. 그 학생이 얼마나 수치스러웠을지, 내가 학창시절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 씁쓸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나쁘거나 좋거나 둘 중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나쁜 일이 명백한 상황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기면증이란, 그토록 원하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하며 즐겁고 행복할때 잠들지만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병 거라고. 그것은 마치 희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지금 느끼는 행복을 오래도록 유지 수 있게 해주는 신의 선물이자 저주 같은 거라고 말이다.



출처 네이버_ 영화클래식,라디오스타


영화 클래식에서 이기우 배우가 이 증상을 적절하게 잘 표현했다. 그는 주로 달리는 중에 발작해서 자주 쓰러졌데 그러고 보면 기면증이라는 병은 참 멋없는 병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내 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내 지인이 웃으며 쓰러지는 나를 본다면, 마치 개그맨들이 꽁트를 하는 것처럼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큰 충격으로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영화의 한 장면이 더 자연스럽다. 평범한 외모의 내가 웃으며 쓰러지는 꼴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늘 재미있는 걸 좋아하고 장난이 심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우울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웃음과 행복은 나에게 사치다. 그것은 내 치부를 드러내는 몹쓸 감정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우울증의 시발점이었을 거다.


웃으며 쓰러지는 바보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할 때쯤 나는 웃지 않는 연습을 했다. 나는 아무리 웃긴 상황이 와도 웃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런 무표정은 외면 뿐 아니라 내면까지 변하게 만들었고 나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느 상황에서나 무표정이 무감각했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 전부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사람과 금세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쓰지만 의외로 타인에게 관심은 없다. 그러니 타인을 신경 쓰느라 쏟는 에너지로 다른 일을 하는게 더 낫다.


헌데 어느 순간, 그런 증상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기면증은 나이가 들며 증상이 완화되는 병이다. 웃어도 발작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서 이제는 무표정하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웃는 연습을 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잘 웃으려 애쓴다. 한동안 웃음을 잃었던 이유로 내 웃음은 아직 어색하지만, 사춘기 때부터 잘 웃지 않았으니 내 얼굴엔 자주 웃어 생기는 주름따위는 없다. 그러니 주름 걱정으로 웃지 못하는 중년 여성들보다 더 활짝 웃을 수 있다. 난 중년이 되어서야 해맑게 잘 웃는 사람이 되었다. 삶에 찌들어 보일수 있는 중년에 주름 걱정 없이 이렇게 웃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예전에 필라테스를 하던 중에 유연하지 못해서 할수 있는 동작보다 그렇지 않은 동작이 많던 내게 담당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몸이 뻣뻣한 건 젊다는 증거라고. 근육에 힘이 부족해지는 노년이 되면 저절로 유연해진다고 말이다. 그 강사는 가장 유연하지 못한 나에게 지금 모인 사람들 중에 내가 가장 젊은 몸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많이 위로가 됐다. 사실 그건 적응을 하지 못하는 수강생에 대한 배려였을 거다. 하지만 그녀의 말한마디 덕분에 더이상 나는 그 곳에서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삶은 점점 더 유연해질 거라는, 그러니 뻣뻣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아직 젊어서 그런 것뿐이라고 생각면 된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원하는 대로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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