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옳은지 따지는 건 너무 바보 같은 일이야. 각자의 상황에서의 정의는 다른 거거든. 우리 모두 타인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으니 서로의 정의는 알 수 없는 거야. 극단적으로 어떤 이는 부모를 버리는 게 최선일 수도 있거든. 그러니,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자책하지 마. 모든 선택은 정의가 아니라 최선이라는 것으로 의미가 있어. 네 선택이 네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물론 모든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내 인생의 키워드는 슬픔, 우울이었는데, 그건 확실히 내가 선택한 건 아니었어. 누가 자신의 인생의 키워드를 그렇게 선택하겠어. 하지만, 요즘엔 그런 키워드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 억지로 웃거나 행복을 갈구하며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넣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달까.
내 만성우울증에 대해 정신과 의사는 그렇게 설명해 줬어. 우울한데 스스로 그 우울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그건 우울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보다 훨씬 위험한 상태라고 말이야. 자신이 우울하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최선의 치료법이라고도 했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어. 모두 다 내게 참으라고만 하는 것처럼 느껴졌었거든. 그래. 나는 우울한 상태야. 그걸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졌어. 그래서 이제 억지로 웃지 않기로 했어.
그렇게 마음먹으니 편해졌어. 인간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겠다는 의지도 없어도 되니, 온갖 귀찮은 일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그래서 혼자여도 괜찮아. 이제 억지로 웃지 않아도 괜찮을 테니까. 이제 나는 더 활짝 웃을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