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네 아들이 다니는 축구교실 앞을 지나는데, 지금 끝났나봐? 지금 애들 나오고 있는데, 네 아들하고 인사하고 가려고 지금 기다리고 있어.”
그 친구는 우리집에서 5분 거리에 사는 친구다. 그리고, 어제도 아이들과 함께 만났었다.
“아니, 어제도 만난 우리 아들한테 뭐 하러 기다렸다가 인사를 해? 약속시간 늦었다면서? 그리고, 우리 아들은 지금 집에 있어. 오늘 가기 싫다고 해서 안 보냈는데. 저 시키 축구교실 한번 밖에 안 갔는데 이제 안 갈 것 같아.”
친구는 약속이 있어서 근처를 지나다가 우연히 축구교실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아이들을 봤는데, 꼭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실 그 친구와 나는 거의 매일, 매주 아이들과 함께 만나는 사이이다. 굳이 약속시간에도 늦었다면서 어제도 만난 우리 아들에게 인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전 주에 아들은 축구교실에 다니겠다면서 졸라댔다. 평소에 운동을 끔찍이 싫어하는 아이였다. YMCA 아기스포츠단에 다닐 때에도 운동하기 싫어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었고, 전에 다니던 축구교실도 스스로 그만 두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아이를 말리고 싶진 않았다. 어쩌면 지금의 과체중의 몸에서 날씬한 아이로 바뀔 수 있겠다 싶어, 바로 그날 등록을 해줬다. 근데 무슨 축구교실에 입단비가 있는지, 한 달치 원비보다 비싼 등록비와 한 달치 원비를 내고서 딱 한번 갔는데, 아이는 그 축구교실에 가고 싶지 않은 듯 아프다며 핑계를 대어 오늘만 쉬라고 하던 참이었다.
그날은 조금 이상했다. 우리 집은 평소에도 TV를 보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아이가 보지도 않는 TV를 큰 소리로 켜놓고 있었다. 친구와 통화가 이어질 수 없을 만큼 큰 소리의 소음이었다. 나는 소리에 민감해서 TV소리도, 전화벨 소리도, 심지어 누군가 말하는 소리도 싫어한다. 내 주변 친구들이나 무려 나의 친정엄마도 전화를 싫어하는 내게 웬만한 급한 일이 있지 않으면 하지 않는데, 하필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었고, 거실에서 나오는 큰 소리의 TV소리와 함께 나는 폭발했다.
저녁 준비를 하다말고 거실에 있는 아이에게로 갔다. 축구교실에 가지 않은 것과 TV를 크게 틀어놓은 점,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런저런 내용과 방이 어지럽게 정리되지 않은 점으로 핑계를 만들어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 아이는 사실 TV를 보고 있지 않은 듯했다. 우리 집에서는 정규방송을 잘 보지 않는데, TV에서 나오는 광고가 나를 더 거슬리게 했다.
한참을 아이와 이야기하던 중, TV에서 뉴스 속보가 나왔다. 축구교실이 끝나고 집으로 가던 아이들을 태운 차량의 사고 소식이었다. 우리 아이가 다니던 축구교실차량이었다. 화면엔 노란 승합차가 심하게 찌그러져있었는데, 그 사고로 차에 탄 아이 두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 아이와 한참 언쟁을 하던 중이었고, 저녁 준비는 하다가 그만둔 상황이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았던 엄마와 뉴스를 번갈아보던 주눅 들어있던 그 아이는 곧 울것 같았다. 그제서야 아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 어떤 일도 아이가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원래도 아이들에게 무슨 강요를 잘 하지 않는 엄마였지만 말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에도 힘든 세상이지 않은가. 공부를 잘 하지 않아도, 조금 뚱뚱해도 행복한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란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