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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필 Apr 07. 2022

당신의 퀘렌시아는 어디인가요?

 100세 인생 시대, 50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_ E.14

1. 인도의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우리 마음을 바위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서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반대로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대면할 용기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처를 계속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수용하고 지혜롭게 대처해나갈 때 비로소 우리 영혼은 성숙해진다.


2. '투우'에서 소가 기운을 모아 다시 공격할 힘을 되찾기 위해 숨을 고르는 장소를 스페인 사람들은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투우장의 퀘렌시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어디가 자신이 안전하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인지를 살핀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마음의 안식처, 육체의 휴식 공간으로서의 퀘렌시아가 꼭 필요하다. 나만을 위한 공간인 퀘렌시아를 통해 정기적으로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갖는 것이 삶을 슬기롭게 사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심신이 지치고 에너지가 고갈될 수 있다.


3. 퀘렌시아가 도처에 있을 필요는 없다. 단 한 곳이라도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고 오롯이 나만의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 그렇다고 퀘렌시아가 꼭 어떤 특정 장소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집 앞 스타벅스 2층의 구석자리처럼 내가 즐겨 찾는 특정한 장소일 수도 있고, 매일 아침 새벽 4시 30분처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특정한 시간일 수도 있다. 또한 명상 수련이나 여행처럼 특정한 활동일 수도 있다.


명상은 자기 안에서 퀘렌시아를 발견하려는 활동이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지 않으면 시나브로 내 영혼의 샘이 바닥나고 부정적인 감정들로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명상 수련은 좋은 기재다.


여행도 좋은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지금 나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잠시 동안이라도 내려놓고 훌훌 떠나보자. 모든 문제들을 잊고 여행지를 보고 듣고 즐기는 것에만 집중해보자. 그리고 여행지와 오감이 맞닿은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되찾자. 그러고 나면 얼마 후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다시 삶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지인 중에는 취미로 목공 일에 흠뻑 빠져있는 사람이 제법 많다. 공방이나 목공소에서 책상이나 책꽂이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번뇌가 사라지고 새로운 의욕과 활기가 샘솟는다고 한다. 자신의 집에 쓸 소품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실력이 늘어서 주변에 선물을 하기도 한단다. 취미생활도 좋은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내가 매주 월요일마다 미술학원을 찾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면 주저 없이 운동화를 신고 곧장 한강공원으로 나간다. 그리고 평소 정해놓은 코스를 택해서 두 시간 정도를 걷는다. 처음 한 시간은 몸과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을 비우는데 집중하고, 나중의 한 시간은 새로운 의지로 채우는데 집중한다. 한강공원 걷기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퀘렌시아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김유진)  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게오르크 피퍼)



4. 맹자(孟子) 고자상편(告子上篇)에 '평단지기(平旦之氣)'라는 말이 나온다. 평단지기란 이른 새벽에 얻을 수 있는 맑고 신선한 기운을 말한다. 아침형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른 새벽은 일과 사람과의 관계에 파묻혀 상처 나고 무너진 마음을 회복시키기에 적합한 시간이다.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에서 저자는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더 하기 위해 4시 30분에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에게 새벽은 극한으로 치닫는 시간이 아니라 잠시 충전하는 휴식 시간이다"라고 하면서 "새벽 기상은 그 자체로 열심히 사는 방법이라기보다 계속 열심히 살기 위한 수단이다. 너무 힘들고 지칠 때 고요한 새벽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에너지가 채워진다"라고 말한다.


여느 사람들처럼 나도 50이 넘어서부터 조금씩 아침잠이 줄어들었다. 1년 전부터는 거의 매일 아침에 5시 반 정도에 눈이 떠진다. 누군가 노화의 시작이라고 놀려댔다. 기분은 상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새벽에 깰 경우 깨어있는 시간이 아까워 독서도 하고, OTT로 밀린 드라마나 영화도 보곤 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30~40분 정도 명상에 가깝게 뇌를 온전히 쉬게 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고 나서 오늘도 고생할 내 몸을 생각해 20분 정도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행복하다.  


5. 독일의 심리학자 게오르크 피퍼는 『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에서 비극적인 사건 때문에 삶이 엉망으로 꼬인 사람들의 마음을 '쏟아진 옷장'에 비유했다. 


"옷장이 쏟아지면 사람들은 마치 자기 속내를 다 들킨 것 같은 민망함에 서둘러 물건을 쑤셔 넣은 뒤 문을 닫아 버린다. 그러나 마구 쑤셔 넣은 옷가지들 때문에 옷장문은 닫히지 않고 물건들은 계속 바닥으로 쏟아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라고 하면서 "힘들더라도 옷장 문을 활짝 열고 물건을 모조리 꺼내야 한다. 버릴 옷은 버리고 셔츠는 셔츠끼리, 양말은 양말끼리 차곡차곡 정리해야 한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접 마주해야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정도와 횟수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살면서 '쏟아진 옷장'을 경험한다. 옷장을 정리하기 위해 옷장 문을 활짝 열고 물건을 모조리 꺼낼 수 있으려면 내 삶에 퀘렌시아가 꼭 필요하다. 


6. 때로는 시간 자체가 퀘렌시아가 되기도 한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몸과 마음이 괴로울 때 지금 당장은 죽을 것 같이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가라앉게 된다. 나를 힘들게 했던 일 자체가 바뀌지는 않지만 그 일을 바라보는, 그 일을 대하는 내 마음 자세는 분명 처음과는 다른 마음이 된다. '시간이 약이다'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퀘렌시아란 단어를 몰랐더라도 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슬픔, 괴로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 처음에는 우연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패턴을 찾아서 나에게 최적화된 방법으로 내재화한다면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7. 귀를 기울이면 퀘렌시아가 필요한 순간임을 몸과 마음이 우리에게 말해 준다. 다만,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쉬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쉼표가 필요하다. 쉼표를 찍어야 할 곳에 마침표를 찍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잠시만 쉬면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데 멈춰야 할 타이밍을 놓쳐서 후회로 가득 찬 인생을 만들 이유는 결코 없다.


인생의 영광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퀘렌시아가 필요하다. 스스로 묻고 답 해보자. 나의 퀘렌시아는 어디에 있는가? 나에게 퀘렌시아의 시간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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