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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세대(조너선 하이트), 스마트폰으로 병드는 아이들

by 영복 Feb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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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만명당 27.3명.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나라의 자살률 통계이다. 최근 즐겨보는 유튜버인 슈카월드에서 우리나라의 자살을 주제로 다루기에, 나름대로 자세하게 통계를 살펴보다가 유의미한 수치를 찾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성인의 자살률은 전에 비해 크게 증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줄고 있구간이 많았는데, 기이하게도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불안 세대'의 뉴욕타임스 원문 표지를 보면 그림만으로도, 스마트폰이 청소년 여학생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치는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번역을 하며 표지도 수정을 거쳤는데, 오히려 스마트폰이 끼치는 해악이 느껴지는 그림이라 어떤 의도로 수정했는지는 의문이다. 책의 기본적인 내용은 스마트폰으로 학생들이 수많은 해악들을 경험하고 있으며, 해악에서 나오지 못해 심각한 우울증과 반사회적인 성장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생들은 그들만의 자유놀이와 발견 경험을 통해 자신들만의 규칙과 생태계를 만들고 다양한 갈등상황을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은 이러한 자유 경험을 막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런 스마트폰은 기본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적인 박탈(성인도 마찬가지)을 느끼게 하고, 수면 부족, 주의 분산, 중독의 문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문제는 남자 아이들보다 여자아이에게 더 해로울 수 있는데, 여자아이들이 가진 더 뛰어난 공감능력이 오히려 스마트폰 세대에게는 아주 좋은 공격적인 무기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면에는 학생들을 더 오래 스마트폰에 잡아두고자 노력하여 큰 광고 수익을 챙기려는 다양한 테크기업들의 검은 내막이 있다고 주장한다.

  글을 읽는 내내 작가의 인사이트와 이를 입증하는 다양한 통계자료들을 보며, 과연 작가의 주장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봐야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30~40대의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번 해보자.


"초등학교 운동장을 생각하면 어떤 그림이 그려져?"

"즐거운 표정으로 공도 차고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나와 비슷한 세대의 십중팔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현직에 있는 나는 다른 대답을 한다.

"텅 빈 운동장, 그리고 그 곳을 맨발로 걷는 노인분들."


  학생들은 더 이상 운동장으로 나오지 않는다. 점심시간이나 방과후에도 자신들만의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채로, 여자 아이들은 시도때도 없이 DM을 주고 받고, 남자 아이들은 광란의 모바일 게임에 열을 올린다.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일리가 없다. 스마트폰안에는 값싼 도파민만 넘쳐날 뿐 학생들이 그 시기에 익히고 연습해야할 교육적, 사회적인 과업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대로 '다쳐봐야 다치지 않는 법을 알'텐데, 학생들은 다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그럼 더 나아질 희망은 있을까? 정부와 테크 기업들의 각고의 노력 없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이유는 AI디지털교과서로 재편되는 앞으로의 교실에서 학생들은 점점 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매몰될 확률이 높고 점점 더 개인적이고 비대면적인 의사소통만이 주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언뜻 선구자로 보이는 이러한 변화의 내면에서 병들어가는 건 교사와 학생들뿐이다. 달콤한 열매 속에 감춰진 독을 쉬이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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