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자신의 행동을 반문하고 검열한다. 타인에게 해를 입히면 안 된다. 타인을 불편하게 해서도 안된다. 나아가서 타인에게 예쁨 받고 싶은 욕심으로 확장된다. 결과적으로 내가 사라진다. 타인을 위한 내가 존재하고 원래 본연의 나는 증발된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타인을 위한 '맞춤식 가면을 쓴 나'이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자신답게 살아가라고 말을 걸어온다. 신체적 증상으로,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당신이 보는 영상의 메시지로, 다양하게 당신에게 알려 주고 있다. '당신 존재는 그렇게 하찮지 않다'라고 그러니 '당신은 당신 자신이 되어 살아가도 좋다'라고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먼저 돌보고 행복해져야 한다.
자기 사랑은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민감하게 알아봐 주는 데서 시작한다.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라. 아이가 울거나 침울해 있으면 사랑이 가득한 엄마는 금세 알아차리고 무슨 일이냐고 물을 것이다. 아이가 행복하면 같이 행복해하며 뜨거운 것을 느낄 것이다. 당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무조건적인 수용을 주는 엄마 같은 존재이다.
지금부터라도 당장 당신의 마음에게 말을 걸어 보자. "오늘 네 마음은 어때?" 이렇게 시작한 자신과의 소통은 그동안 너무 아파서 차마 들여다볼 수 없었던 저 무의식의 심연까지도 내려갈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많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줄수록 더 많이 자유로워진다. 우리의 신체적 질병은 상당 부분 마음에서 온다.
흔히들 말하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스트레스'는 너무 포괄적 단어이다. '자신의 감정을 제때제때 알아봐 주지 못해서 오는 병'이 스트레스라는 이름을 입고 만병의 근원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표현 할 기회를 그때 얻었더라면 그 감정이 무의식으로 억눌리지 않았을 것이고, 당신은 그렇게 그 감정과 경험을 흘려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기 사랑을 이야기하며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자신의 감정 표현하기다. 내가 자기 사랑을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 바로 글쓰기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느 날 문득 죽을 것 같은 마음 앞에서 자기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억눌렸던 내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억눌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글을 썼다. 쓰다 보면 별의별 감정들이 다 튀어나온다.
이렇게 우리는 많은 해소되지 않은 감정 찌꺼기들을 그냥 가둬버렸다. '유미의 세포들' 속 독방이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독방이 얼마나 많은지 그 많은 방으로 수많은 처리되지 못한 미숙한 감정들, 아픈 감정들이 갇혀서 아우성을 친다. 그러다 글쓰기로 두드려진 그 문들 속에서 하나하나 터져 나오는 마음들이 있었다.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이 어쩌면 필요할지 모른다.
오늘 문득 우울하거나, 불안하다면 감정이 보내오는 신호를 놓치지 말고 행복으로 다가가자. 행복이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어떤 나라도 인정해 주는 마음이다.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내 주변의 사람들이 같이 행복해진다.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가족을 떠올려 보면 된다. 엄마가 행복하면, 아빠가 행복하면 자녀들은 그 행복 속에서 따뜻한 정서를 갖게 된다. 아이가 어떤 일로 짜증을 부리고 속상하게 해도 행복이 차오른 엄마는 그 아이의 짜증을 따뜻한 넓은 가슴으로 받아 줄 수 있다.
우리는 혼자만 살아가는 단일한 존재들이 아니다. 그 어느 순간도 우리는 홀로 존재한 적이 없다. 우리 존재가 있기 위해서는 하늘, 물, 공기, 태양, 부모님, 가족 그 모든 존재들이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우리이기에 우리의 존재 하나가 행복해지면 우리와 연결된 그 수많은 존재들은 같이 행복해진다. 미소 한 모금, 햇살 한 줌 그 모든 따뜻하고 다정한 것들이 결국 우리를 살게 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먼저 자신의 행복을 먼저 구하자. 나의 행복을 찾아서 오늘도 글을 쓰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 아침이 사랑스럽다. 다가가 손을 잡고 '행복하세요, 당신 먼저 행복해져도 괜찮아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다정한 아침이다. 결국 우리 삶은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