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시리즈 - 안녕하세요, 이방인입니다.
해외에서 살며 외롭거나 힘들 때,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꽤 많은 위로와 웃음을 얻는다. 어쩜 그리 재미있는 게 많은지, 예능국 PD들은 다 천재인가 싶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따라가기 버거울 때도 있지만 굳이 머리를 쓰지 않아도 다 이해되는 우리 말의 편안함과 레퍼런스를 안다는 안도감만으로도 고단한 타지 생활의 헛헛함이 채워진다. 뭘 봐야 할지 모를 수많은 예능의 바다에서 내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데, '대화의 희열'이란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였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이 나와 그들의 인생을 말하는 평범한 포맷의 토크쇼였지만 호들갑을 떨지 않는 적당한 톤이 좋았다. 시즌 3에 걸쳐 총 39회가 전파를 탔는데 그 중 유독 시즌 1의 '송해' 편이 내게 크게 다가왔다.
이 에피소드는 황해도가 고향인 (고) 송해 옹의 고향 바라기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1927년생으로 이미 90세를 훌쩍 넘어선 그는 여전히 죽기 전에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구우욱~ 노래자랑!'을 외치는 꿈을 가지고 계셨다. 이런저런 거짓말 같은 사연으로 고향을 떠난 후, 또 이런저런 거짓말 같은 사연으로 공연계에 발을 담그기까지, 포레스트 검프처럼 역사의 소용돌이를 관통하는 사연들 하나하나가 하도 극적이고 구슬퍼서 그의 인생사 자체가 하나의 대하소설 같았다. 특히 그가 아직도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 같은 당연한 본능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게는 딱히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같은 ‘고향’에 대한 정서가 없다는 걸 송해 옹을 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향. 고향이라… 난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태어났지만 마포구 합정동과 서교동에서 자랐다. 어릴 적 가장 오래 산 동네가 서교동이니 굳이 따진다면 서교동이 고향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송해 옹처럼 꿈에 나올 만큼 그곳이 그립진 않다. 참 아이러니다. 오랫동안 정착할 곳을 찾아 떠돌면서 그 누구보다 장소, 집, 뿌리에 대한 갈망이 클 텐데, 그런 내가 정작 고향에 대한 정서는 없다니. 물론 어릴 때 뛰놀던 당인리 발전소 앞 폐지 수거장의 아련한 추억은 있지만 과연 그게 내게 어떤 절실함을 줄 수 있을까? 예전 자주 갔던 빵집이나 떡볶이집이 없어진 걸 안타까워하는 건 내 기억 속의 예쁜 그 모습이 그대로 있으면 하는 작은 이기심일 뿐, 그 빵집과 떡볶이집이 애달플 수는 없다.
보면서 계속 궁금했다. 저렇게 고향이 그립나? 왜? 70년이 지난 지금,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고 기억마저 흐릿할 텐데, 무슨 미련이 남아서? 이제 와서 '재령'이란 지리적 공간이 아쉬운 건 아닐 터, 떠날 때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손을 흔들던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과 어린 시절의 희미한 조각들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으신 거겠지? 물론 결정적인 이유는 어머니겠지. ‘두고 온 어머니’란 말만으로도 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니까. 감히 상상해 본다. 마침내 재령을 방문한 그가 ‘옛날엔 여기가 다 밭이었어요. 어머니께서 이 밭을 매셨지.’ 하며 무려 근 한 세기 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모습을. 핸드 헬드 카메라가 소회에 젖은 그의 쭈그러진 뒷모습을 거칠게 따라가는 장면을.
결국 이 모든 서사가 가능한 건 지금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갈 수 있으면 이런 서사 자체가 없다. 갈 수 없을 때, 볼 수 없을 때, 만지지 못할 때, 가지지 못할 때, 결핍은 모든 걸 피 끓는 서사로 만든다. 분단, 전쟁, 정치적 상황 등 결핍을 유발하는 요소에 코로나19가 더해졌다. 세상의 모든 건 컴퓨터 화면 속에 있고, 갈 수 없고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이 결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든 편하게 갈 수 있던 한국도 이젠 그렇지 않기에 더 절실해지고, 해외에 사는 난 영원히 바람이 안 빠지는 풍선이 되어 둥둥 떠다닌다.
내가 송해 옹의 스토리에 몰입하고 공감하는 이유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해외에 살고 있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송해 옹이 ‘과거의 장소’를 갈망한다면 나는 ‘미래의 장소’를 갈망한다는, 즉 장소에 대한 갈망에서 그 이유를 희끄무레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그 갈망의 강도가 같을 순 없다. 나의 갈망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의 것은 아니니까. 나는 미래를 보고 그는 과거를 보니까.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그 느낌이 어떨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그의 절절함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준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이런 절절한 서사의 힘을 그저 '신파'라는 이름으로 격하하진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퀴퀴한 냄새가 날 정도로 지독히 인간적인, 누구나 내재한 구질구질하고도 뻔한 신파는 과소평가 되었다.
한국이 그립지만 사무치진 않는다. 그리운 것도 있고 그립지 않은 것도 있다. 가끔 고향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미루는 커서 어디를 고향이라 여길까? 한국에서 태어났고, 5살부터 7살까지 한국에서 만 3년을 살았지만 과연 그 시간은 고향의 정서를 만들 만큼 긴 시간이었을까? 어디든 엄마와 아빠가 있는 곳이면 미루에겐 고향일까? 궁금하다. 요즘처럼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글로벌 시대에 과연 고향의 정서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이를 읊는 건 구닥다리 꼰대의 모습일지. 무릇 고향이 인간에게 무시 못 할 근원적 정서를 형성한다는 그 고정관념은 얼마나 갈지. 판데믹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고향 회귀의 붐을 일으킬지. 그렇다면 미루는 뿌리 없는 아이가 될지. 아이고, 그만하자, 머리 터진다. 예능 하나에 너무 멀리 갔다.
당신의 고향은 어디인가를 묻는 '대화의 희열, 송해' 편을 추천한다. 휴지통 하나 옆에 둬야 할 거다. 더불어 한국 예능, 나아가 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의 발달에 감사한다. 이거 없이 어찌 해외에서 살까. 그리고 다시 한번 고 송해 옹의 명복을 빈다.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