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군과 적군이 무인도에 고립된다면?
이 뮤지컬은 2013년 초연 이후 다섯 번째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올린 스테디셀러 뮤지컬입니다. 덕분에 대표적인 소극장 창작 뮤지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작가 한정석, 작곡 이선영, 연출 박소영 트리오의 첫 번째 작품으로, 그들은 최근 뮤지컬 '레드북'을 성공적으로 올린 트리오입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제19회 한국 뮤지컬 대상 극본상을 받으며 관객과 평단 모두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극본의 힘도 뛰어나지만, 노래에 대한 평도 굉장히 좋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OST 앨범 발매를 바라는 팬들의 요청이 엄청날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 작품이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매력 포인트를 소개하겠습니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국군 대위 한영범은 인민군 이창섭, 류순호, 변주화, 조동현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하는 특별 임무를 부여받고 부하 신석구와 함께 이송선에 오른다.
그러나 포로들은 배 위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폭동 중에 기상악화로 고장 나버린 이송선 때문에 여섯 명의 병사들은 무인도에 고립된다.
유일하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순호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을 놓은 상태.
생존 본능만 남겨진 채 병사들은 점점 야만적으로 변해간다.
그 와중에 인질이 된 영범은 악몽에 시달리는 순호에게
여신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고, 순호는 여신님에 빠져 안정을 되찾아 간다.
모두는 순호를 변화시키기 위해
'여신님이 보고 계셔 대작전'을 시작하고
가상의 여신님을 위해 공동의 규칙을 세우는데...
- 한영범 : 처세의 달인이자 딸바보인 국군 대위
- 류순호 : 여신님을 믿는 순진무구한 북한군
- 이창섭 : 악명 높은 냉혈한 북한군 상위
- 신석구 : 첫사랑을 간직한 남한군
- 조동현 : 창섭의 오른팔. 말 못 할 사연을 지닌 북한군
- 변주화 : 섬세하고 재주 많은 북한군
- 여신님 :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신님
이 뮤지컬은 한국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처세의 달인이 되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떨며, 누군가는 죽음에 무뎌져 냉혈한 인간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이 뮤지컬 속 6명의 군인은 다양한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총을 겨누며 싸웠던 그들 남한군과 북한군이 무인도에 고립됩니다. 유일한 삶의 목표는 오로지 생존이 되어버리죠.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은 더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들은 '여신님'이라는 상상 속 존재를 만들어내는데, 그녀는 희망과 화합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뮤지컬이 동화적인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극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 뮤지컬은 옴니버스식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옴니버스식 형식이란, 공통의 주제 혹은 소재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모여진 형식을 의미합니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빨래'가 비슷한 작품입니다. 이 뮤지컬에서는 각자 전쟁으로 겪은 아픔을 한 장면씩 보여줍니다. 각 인물이 그리워하는 존재(어머니, 딸, 여동생, 짝사랑하던 누나)를 '여신님'을 맡은 배우가 모두 멀티로 해내는데, '여신님'이 희망의 존재로 대변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각자의 스토리를 그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무인도 탈출'이라는 큰 줄기 또한 놓치지 않아 다소 산만하게 보일 수 있는 구성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 뮤지컬은 전쟁의 아픔이라는 어두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공연 내내 극이 어두운 것은 아닙니다. 감동과 재미가 적절히 섞여 있죠. 생존을 위해 상상의 존재인 '여신님'을 모시며 살아가는 장면은 밝고 웃음이 나오지만,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슬픔과 눈물이 나옵니다. 관객석과 무대가 가까워 배우의 연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소극장 공연의 특성 덕분에 이런 감동과 재미는 배가 됩니다. 그리고 무대와 관객석 사이를 허물고 관객과 호흡하는 장면이 있어 이를 알고 맨 앞자리를 노리고 티켓팅을 하는 팬도 있다고 하네요. 혹시 무대 위 배우와 직접 호흡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면 맨 앞자리를 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정석 & 이선영 콤비의 두 번째 뮤지컬 '레드북'을 소개한 글에서도 제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매력 포인트로 소개했는데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 또한 관객이 각자 개인 취향에 맞는 노래 하나쯤은 뽑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작곡 이선영 씨는 이 뮤지컬을 하나의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래의 강약을 조절해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네요. 실제로 공연 순서대로 노래를 살펴보면 무거운 분위기의 노래 이후에는 밝은 분위기의 노래, 웅장하고 풍부한 노래 다음에는 단순한 멜로디의 노래가 나옵니다. 노래가 전반적으로 다 좋지만, 대표적인 노래 몇 곡을 소개하겠습니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뮤지컬의 제목과 같은 제목인 만큼 가장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여신님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노래로 매우 희망차고 밝은 분위기의 노래입니다.
"미움도 분노도 괴로움도
그녀 숨결에 녹아서 사라질 거야.
그만 아파도 돼. 그만 슬퍼도 돼. 그녀만 있으면 돼.
언제나 우리를 비추는 눈부신 그녀만 믿으면 돼.
여신님이 보고 계셔."
'꽃봉오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전반적으로 아련한 느낌이 들며, 짝사랑을 꽃피우지 못한 꽃봉오리로 비유한 가사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다음 가사를 보면서 꽃봉오리가 맺히는 모습을 상상해볼까요?
"수줍은 인사에 싹을 틔워
마주한 눈빛에 잎이 나서
어느새 훌쩍 자라난 꽃봉오리
전하지 못해 피어날 수 없는 꽃봉오리"
'꿈결에 실어'를 듣고 있으면 마치 여신님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동요 같은 느낌의 노래이며, 듣는 관객들 또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누군가의 품에 안긴 듯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노래입니다.
마음의 힐링을 하고 싶은 분, 대극장 뮤지컬과는 다른 소극장 뮤지컬의 맛을 느끼고 싶은 분, 뛰어난 스토리와 노래를 감상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