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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에 대해서

by 여래

도연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의미를 찾는데 보냈다. 어쩌면 의미를 찾는 행위는 회사 프로젝트에서나 했어야 했다. 특히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은 대체로 어렵고 무거우며 급기야 아주 허황된 일일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두 번째 스무 살 목전에서야 하게 되었다. 인생의 의미라는 건 정말이지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상황에 따라 간사함의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자칫 사명감이라는 짐을 어깨에 지고 나면 어쩐지 인생은 살아야 할 것보다는 살려야 하는 무언가가 되었다. 많이 짊어지면 질수록 짓눌리며 힘들기만 했다.


그냥 좀 가볍게 살았으면 어땠을까? 매사에 무게를 내려놓고 살았으면 어땠을까? 후회를 해보지만 별 소용없음을 도연은 안다. 두 아이를 자신과는 달리 강단 있고 단단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목표, 늘 받기만 한 자신을 미워하다 못해 남은 인생을 남편에게 보은 하며 살겠다는 사명이 되버린 자신, 평생 엄마를 먹여 살리겠다는 싱글 때의 건방진 목표들이 아른거린다.


도연의 엄마는 말했다. 오십 둘에 사별했으니 당신은 뭘 해도 돈을 벌었을 텐데 당신을 책임지겠다는 딸래미 말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 지금은 무엇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도연은 모친의 인생을 망친사람이 되어있는 듯하다. 매달 50만 원에서 30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줄어든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지만 좋은 말은 듣지 못한다. 백수가 된 도연은 하루이틀 생활비 송금이 늦어져도 한탄 섞인 메시지를 받아야만 했다. 정작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새끼간식에는 인색했지만 모친의 한탄 어린 메시지는 무서웠기 때문에 외벌이가 된 자신의 가정살림이 어려워졌어도 모친의 생활은 지켜내야 했다. 도연은 거꾸로 생각해 본다. 네이트판에 성별만 바꿔서, 그러니까 남편과 아내의 역할만 바꿔서 똑같은 상황을 올린다면 분명 이혼하라는 댓글이 수백수천 개 달렸을 일이다.


도연의 남편 영수의 낯빛은 날로 어두워진다. 눈밑엔 다크서클이 드리우고 눈빛은 늘 피곤에 절어있다. 도연은 악몽을 연이어 꾼다. 두려움에 처할 때마다 도연은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영수를 불러댔다. 급기야 어떤 검은 그림자가 도연과 영수가 있는 방안에 들이닥쳤다. 총구를 겨누려 했다. 그 검은 그림자는 꿈속에서의 도연이 영수에게 도움을 청하자 영수를 발견하고는 홀연히 저 멀리 사라졌다. 저 계단 밑으로 내려가려는 도연을 불러 세워 이리로 올라가야 한다고 영수는 말한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늘 영수는 도연을 구한다. 그리고 정작 영수 본인은 매일 생기를 잃고 희망을 잃어간다. 영수는 도망갈 수도 없다. 도망갈 위인도 못된다. 도연과 사이에서 낳은 어여쁜 자식들 때문에. 아이들 데리고 도망가서 정말 행복하게 살았으면. 나 같은 사람 잊고 웃으며 살았으면. 슬픔은 아주 가끔 바람과 함께 찾아올 테니 그 바람이 일렁일 때만 아주잠시 슬퍼하면 된다고. 마침내 바람 같은 건 불지 않는 따스한 날만 그들에게 계속되기를 도연은 바란다.


도연은 생각했다. 왜 나 같은 엄마를 만났을까? 왜 나 같은 아내를 만났을까? 평범하다 못해 행복해마지않을 일상의 소소한 삶들이 도연을 만나면 어둑해지고 느려지고 슬퍼진다. 이유를 알 수 없다. 그 힘이 너무 강해서 도무지 맑아질 생각을 못한다. 병에 걸린 것 같다. 자신이 가정의 암덩어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도연은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당장 극단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는 않겠으나 언제 어떻게 자신이 세상을 떠나든지 간데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까지 가족에게 짐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만에 하나 도연이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되면 연명치료를 절대 하지 말 것이며, 몸이 불편할 망정 정상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자신을 포기해도 좋다고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된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을 책임지겠노라고 아주 작은 글씨로 적어두었다. 도연은 태어나서 영수를 만나 처음으로 당연한 것에 화내고 울고 웃어도 욕먹지 않는 삶을 살아봤다. 눈칫밥이라는 걸 먹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영수와 한 세월이 십 년쯤 되었을 무렵부터 도연은 생각했다.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여한 없다라고. 그리고 그것이 순도 100% 진심임을 도연은 알고 있었다.


단지 욕심을 조금만 부린다면 자식들이 스스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만이라도 도연이 결합한 이 가정이 좀 더 따뜻해 지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함께하는 날 동안 슬픔에 절어 펴지지 않는 얼굴의 잔주름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웃는 얼굴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다짐했다. 입꼬리에 힘을 주어 조금 더 웃고 터벅터벅 걷는 걸음보다 힘주어 걷기를 택하는 삶이 되기로. 어떤 이유로든 자식들에게 지금부터 슬픔을, 아픔을 미리 알려주기는 싫어서. 한편으로는 자식이라는 이유로 나같은 엄마를 감당하는 자식들이 되게 둘 순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도연은 내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인생의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삶에 의미를 찾는 일은 오히려 무의미한 것이라고 도연은 생각했다. 그냥 지금 이 순간 1분 1초가 너무 아깝고 애틋해서 의미 찾는 일 따위는 이미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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