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먼저 직면한 과제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도전은 주거지를 찾는 일이었다. 도착 후 첫 한 달 동안은 회사 근처의 에어비앤비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격리 기간 동안 임대인과 건물 관리인과 몇 번의 마찰을 겪은 후,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더 많은 지역을 경험해 보고 싶었고, 한국인이 밀집한 지역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도시 외곽의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 머물고 싶지는 않았기에, 6개월 동안 호치민의 네 가지 지역에서 생활하며 도시를 체험하게 되었다.
각기 다른 지역들은 각자의 고유한 분위기와 생활 방식을 품고 있었다.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환경이 펼쳐졌지만, 그 안에서도 호치민 특유의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길가에 늘어선 노점들, 빠르게 오가는 오토바이 행렬, 그리고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는 현지 주민들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다.
특히 호치민 1군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도착할 수 있는 4군은 나에게 큰 만족을 주었다. 북쪽으로는 도심의 활기가 가까이 느껴졌고, 남쪽으로는 로컬 해산물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도시의 세련됨과 지역적 매력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내가 꿈꾸던 균형을 제공해주었다.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어 생활이 편리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단기 임대가 많고 1군의 유흥가와 가까워 가족들이 생활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거주지에 대한 부분은 추후 좀 더 자세히 풀어볼 예정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생활한 경험은 호치민이라는 도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접하며 적응의 과정은 더 풍부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 도시의 다채로운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그 안에서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조금씩 배워 나가고 있었다.
현지의 생활 패턴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매일 아침 그랩 바이크를 타고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불안했지만, 복잡한 호치민의 교통 속에서 그랩 바이크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수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모를 쓰고 오토바이에 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도시의 빠른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하지만 출근길에 마주한 몇 번의 오토바이 사고 장면과 폭우로 오토바이에서 물벼락을 맞은 경험 후, 결국 1년이 지나 그랩 바이크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회사 근처의 노점에서 현지 음식을 먹거나 그랩 배달을 시켜 먹었다. 회사는 공항 근처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었고, 한국 식당은 물론 에어컨이 있는 식당을 찾기도 어려웠다. 더운 날씨에 걸어 다니는 것도 고역이었기 때문에, 결국 회사 앞 노점에서 낚시 의자에 앉아 쌀국수를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베트남 직원들은 대부분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오거나 그랩으로 음식을 시켜 먹었다. 한국에서는 점심시간에 직장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 가는 것이 흔했지만, 이곳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드물었다.
나는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매일 반복되는 쌀국수와 짠 국물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베트남 음식을 시도해 보았지만, 양이 적거나 조미료 맛이 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점점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서 먹기 시작했다. 비록 번거롭기는 했지만, 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 것은 심리적 안정과 함께 육체적 만족감을 줬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
음식보다도 나를 가장 답답하게 만든 것은 주변에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회사 동료들은 나와의 거리감을 두고 있었고, 대표와 직원이라는 관계 때문에 그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내가 처음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람은 회사 건물의 경비원이었다. 나이가 나보다는 어렸던 그는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마다 그는 나에게 베트남어로 말을 건넸다. 단순 인사였겠지만, 나에게는 유일한 대화의 시간이었다. 나는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베트남 초기 생활에서 그 경험은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나의 조그마한 안식처이기도 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은 종종 힘들고 답답했다.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매일 도전처럼 다가왔다. 먹는 것, 이동하는 것,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조차도 모두 새로운 과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이곳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