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See You in My Dreams
재직시절 신학기가 되어 학생들을 처음 만나는 날이면
나는 매년 칠판에 크게
盲龜遇木(맹귀우목)
이라는 한자를 쓰고 수업을 시작했다.
불교 경전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말이다.
망망대해 널빤지 하나가 떠 있다.
눈이 먼 거북이 한 마리가 물속을 헤엄치다 물 위로 떠올랐을 때
이 널빤지 구멍에 우연히 거북이의 머리가 들어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말의 깊은 뜻은 헤아릴 수 없지만
인간으로 태어나 서로 만난다는 것은
맹귀우목과 같은 확률을 가진다고 한다.
"우리는 맹귀우목의 확률로 오늘 만난 거야"
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애들은 관심 없다.
교사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이별을 하고 산다.
매년 수백 명의 학생들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요즘에는 기간제 선생님들이 많아서,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들과도 매년 이별을 해야 한다.
내가 정이 많아서(?) 그런지, 아님 인생을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이별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별은 항상 서럽다.
서러움은 항상 그리움으로 남는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그리움과 함께 사는 법'이라는 영화를 봤다.
원제는
I'll See You in My Dreams인데
한국어 제목을 기막히게 지은 것 같다.
평생 키우던 반려견을 안락사시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끝까지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되뇌게 한다.
정말 인간은 그리움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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