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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23. 2023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1992년

멕시코 여성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이 1989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원제는 'Como agua para chocolate(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이다.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1992년 남편이었던 알폰소 아라우가 감독을 맡아 만들어졌다. 이 소설의 배경은 멕시코 혁명시기인 1910년대로, 전통과 관습에 억눌려야 하는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 상태를 마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초콜릿처럼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티타는 그냥 굴복할 수 없었다. 수많은 질문과 불만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누가 그런 가족 전통이라는걸 만들어 냈는지 알아낸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노년을 보장하는 완벽한 계획이랍시고 그 전통을 만들어 놓은 순진한 사람에게, 그 전통에도 자그마한 허점이 있다는 걸 알려 줄 수만 있다면 속이 다 후련할 것 같았다. 만일 티타가 늙은 뒤에는 누가 그녀를 돌본단 말인가? 그런 경우에는 무슨 해결책이 있나?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딸인 경우, 부모가 죽은 다음에는 아예 오래 살기를 바라지 말아야 하는 건가?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지 못한 여자는 어떻게 되지? 그때는 누가 그들을 돌보나? 티타는 게다가 장녀가 아니라 막내딸이 어머니를 돌보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 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로 인해 희생되는 딸들의 의견은 들어 보기라도 한 건가? 그리고 결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사랑이 뭔지는 알게 내버려 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그것마저도 용납되지 않는 건가?    (P18-19)    

 

케이크 표면에 입힐 크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데 티타는 그때처럼 또 눈앞이 하얘질까 봐 두려웠다. 하얀 설탕조차도 두려웠다. 하얀색이 어린 시절의 하얀 풍경 속으로 그녀를 잡아끌고 들어가면서, 어떻게 손쓸 수도 없이 한순간에 그녀를 마비시킬 것만 같았다. 5월이면 티타는 하얀 옷을 차려입고 성모 마리아께 하얀 꽃을 바치러 갔다. 그녀는 하얀 옷을 입고 나란히 줄 서 있는 계집아이들 사이를 지나 하얀 초와 하얀 꽃 들이 가득한 제단까지 걸어갔다. 제단은 하얀 예배당의 창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희뿌연 빛으로 하얀 광채를 발했다. 티타는 성당에 들어서면서 언젠가는 남자의 팔짱을 끼고 이곳에 들어올 거라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늘 꿈꾸어 왔었다. 티타는 이 기억뿐만 아니라 그녀를 아프게 하는 기억은 모두 지워야 했다. 언니의 웨딩 케이크에 입힐 크림을 끝내야 했다. 티타는 혼신을 다해 크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크림재료

설탕 800그램

레몬 즙 60방울과 설탕 녹일 만큼의 물              (P40-41)     

페드로의 강렬한 시선으로 티타는 그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되찾았다. 티타는 페드로가 단지 자신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결혼식 날 거짓말을 했던 게 아닌가, 혹은 시간이 흐르면서 로사우라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몇 달째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의심은 페드로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그녀의 요리를 칭찬하지 않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상심한 티타는 더 맛있는 요리를 내놓기 위해 갖은 정성을 다 기울렸다. 그리고 밤에는 절망감으로 담요를 한참 뜨개질하고, 요리를 통해 다시 전처럼 둘만의 교감이 되살아나길 바라면서 새로운 요리법들을 개발했다. 그녀에게는 고통스럽기만 했던 시간이었지만, 그녀가 만든 최고의 요리들이 이 기간 동안에 탄생되었다.

시인이 단어로 유희를 즐기듯 티타는 음식을 마음대로 요리하며 유희를 즐겼다. 훌륭한 성과도 얻어 냈다. 하지만 그녀의 애절한 노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페드로의 입에서 단 한마디의 찬사도 이끌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티타는 마마 엘레나가 페드로에게 식사를 칭찬하지 말라고 요구한 사실을 까마득하게 몰랐다.    (P77)     

“1669년 함부르크의 화학자인 브란트가 연금술을 연구하다가 인을 발견했어요. 그는 금속을 소변의 추출물에 첨가하면 금으로 변할 거라 믿었지요. 그런데 여태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하게 타오르는 물질만 얻게 된 거예요. 그 후로 오랜 기간 동안 인은 진흙 증류기로 소변을 증류하고 남은 것을 강하게 가열해서 얻어 냈습니다. 요즘은 인산과 석회가 들어 있는 동물의 뼈에서 인을 추출한답니다.”

브라운 박사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해서 성냥 만드는 과정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그는 정신 활동과 육체적 활동을 아무 문제 없이 별개로 분리할 수 있었다. 손놀림을 멈추거나 실수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가장 심오한 철학적 문제까지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티타에게 계속 얘기를 하면서도 성냥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인 혼합물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성냥개비를 만들 마분지를 준비해야지요. 물 1파운드에 질산 칼륨 1파운드를 용해시키고 색깔을 내기 위해 사프란을 약간 첨가합니다. 그리고 이 액체에 마분지를 담급니다. 마분지를 말린 후 가늘게 잘라 그 끝에 인 혼합물을 조금 묻힙니다. 그런 다음 모래 속에 묻은 상태에서 그대로 말리지요.”     (P123)     

“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 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하고 성냥불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듯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 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 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P124-125)     

아무도 그의 그런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어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거라고 했다. 이유야 어떻든, 그의 분노는 집안사람들 전체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했다. 티타의 마음은 말 그대로 ‘초콜릿을 끓일 물’ 같았다. 그 이상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비둘기 우는 소리까지도 그녀를 짜증나게 했다. 지붕 아래 비둘기장에서 들려오는 비둘기 소리가, 집에 돌아오던 날에는 그녀를 그렇게 기쁘게 하더니 지금은 팝콘 튀길 때처럼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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