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Feb 27. 2024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영화 <노인과 바다>  1990년

영화 <노인과 바다>(1958), 애니메이션 영화 <노인과 바다>(1999)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에 발표한 중편소설로 1953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쿠바를 좋아하여 쿠바로 자주 놀러 가던 헤밍웨이가 잘 알던 쿠바인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Gregorio Fuentes, 1897–2002)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새롭게 창작하여 집필했다고 한다. 소설 발표 당시 푸엔테스는 50대였다.   

  

영화 <노인과 바다>(1990)는 안소니 퀸 주연이며, 한국에서는 1993년 KBS 명화극장에서 더빙 방송했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팔십사 일 동안 그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처음 사십 일 동안은 한 소년이 그와 함께 나갔다. 하지만 사십 일이 지나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이젠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게 ‘살라오’, 즉 운수가 완전히 바닥난 지경이 되었다고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배를 타고 나갔고, 그 배는 일주일 동안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매일같이 빈 배로 돌아오는 노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소년은 마음이 아팠다.          (P9)     


노인은 멀리까지 나가볼 작정이었다. 그는 육지 냄새를 뒤로하고 깨끗한 새벽 바다 냄새 속으로 노를 저어나갔다. 어부들이 ‘큰 우물’이라고 부르는 곳을 지나갈 때 물속에서 멕시코 만 해초의 인광(燐光)이 보였다. 수심이 갑자기 칠백 길 이상 깊어져서 큰 우물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해류가 해저의 가파른 절벽에 부딪혀서 생기는 소용돌이 때문에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모여들었다. 새우와 미끼용 물고기 들이 바로 여기로 모여들었고 때로는 오징어 떼도 저 깊은 구멍 속에 모여 있었다. 이들은 밤이 되면 수면 가까이까지 올라오는데, 그러면 떠돌아다니던 큰 물고기들이 그것들을 잡아먹었다.            (P49)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다를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였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따금 바다를 나쁘게 말하긴 하지만 그런 때도 항상 바다를 여자처럼 여기며 말했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상어 간으로 한창 벌이가 좋을 때 구입한 모터보트를 타고 다니며, 찌 대신 부표를 낚싯줄에 매달아 사용하는 자들은 바다를 남성인 ’엘 마르(el mar)'라고 불렀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나 투쟁 장소, 심지어 적처럼 여기며 말했다. 하지만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호의를 베풀어주거나 거절하는 어떤 존재로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사납고 악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바다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바다는 달의 영향을 받는다는 게 노인의 생각이었다.              (P51)     


물고기는 꾸준하게 헤엄쳤고, 노인과 배도 그 뒤를 따라 잔잔한 바다 위를 천천히 이동해갔다. 다른 미끼들이 아직 물속에 그대로 드리워져 있었지만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었다. 

“그 애가 있으면 좋으련만.” 노인은 큰 소리로 말했다. “물고기에게 끌려가는 처지가 돼버렸군, 견인줄을 매는 말뚝 신세가 된 채 말이야. 줄을 배에 매어놓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놈이 줄을 끊고 도망가버릴 수 있단 말이야. 있는 힘껏 놈을 붙들고 있으면서 놈이 당길 때 줄을 적당히 풀어줘야만 해. 놈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옆으로 이동하는 게 천만다행이야.”

놈이 밑으로 내려가기로 작정하면 어떡하지? 글쎄, 모르겠는 걸. 놈이 바닥으로 내려가서 죽어버린다면 어떡한다? 글쎄. 그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뭔가 방도가 있을 거야.      (P81)  

   

놈이 선택한 것은 그 어떤 덫과 함정과 속임수도 미치지 못하는 먼 바다의 깜깜하고 깊은 물속에 머무르자는 것이었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은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놈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말이야. 이제 우린 서로 연결된 거야. 어제 정오부터, 게다가 우린 아무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P93)     

그때였다. 줄을 당기는 힘의 변화가 오른손에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줄의 기울기가 물속에서 달라지는 게 보였다. 다음 순간 노인은 몸을 저혀 버티는 한편 왼손을 허벅지에 마구 때려대면서, 줄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놈이 올라오고 있어.” 노인은 말했다. “자, 손아, 어서, 제발 어서.”

줄은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떠올랐다. 그러다가 수면이 배 앞쪽에서 부풀어오르는가 싶더니 마침내 물고기가 나타났다. 물고기는 조금씩 끝없이 솟아오르는 듯하더니, 양 옆구리로 물이 쏟아져내렸다. 물고기는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머리와 등은 짙은 자주색이었고 양 옆구리의 넓은 줄무늬는 햇빛을 받아 연보라색으로 빛났다. 날카로운 주둥이는 야구방망이만큼이나 길고 양날 검처럼 끝이 뾰족했다. 물고기는 온몸이 전부 드러날만큼 솟아올랐다가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마치 다이빙 선수처럼 미끄러지듯 쑤욱 들어갔는데 노인은 거대한 낫처럼 생긴 물고기 꼬리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낚싯줄이 다시 빠른 속도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이 배보다 육십 센티미터는 더 긴 놈이야.” 노인은 말했다.          (P117)   

  

굉장히 큰 놈이야. 그러니 난 놈을 제압해야만 해. 노인은 생각했다. 놈이 자기 힘이 얼마나 센지, 제 맘대로 힘껏 하면 얼마나 대단해질 수 있는지 알게 해서는 절대로 안 돼. 만약 내가 놈이라면 당장 온 힘을 쏟아 뭐든 부러져 결판날 때까지 해보고 말 거야.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놈들은 자기네를 죽이는 우리 인간만큼 영리하지 못해. 비록 우리보다 기품이 있고 더 큰 힘을 가졌지만 말이야.            (P119)     


노인은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은 힘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먼 옛날의 자존심을 전부 끌어모아 물고기의 고통과 맞서게 했다. 물고기는 다가오며 옆으로 뒤집어졌다. 그러고는 옆으로 누운 채 가만히 헤엄치며 주둥이가 뱃전에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왔다가 배 옆을 지나치기 시작했다. 길고 넓고 거대한 은빛 몸이, 보랏빛 줄무늬를 드러낸 채 물속을 한없이 지나갔다. 

노인은 낚싯줄을 내려놓고 발로 밟아 눌렀다. 그리고 작살을 할 수 있는 한 높이 쳐들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아니 없는 힘까지 모두 짜내어, 노인의 가슴 높이만큼이나 높이 물 밖으로 솟아 있는 거대한 가슴지느러미 바로 뒤 옆구리에다 작살을 쑤셔박았다. 쇠끝이 살 속을 뚫고 들어가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작살에 몸을 기대고 좀더 깊이 쑤셔넣었다. 그런 다음 다시 온몸의 무게를 실어 작살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러자 물고기는 죽음을 몸에 담은 채 마지막 활기를 짜내어 자신의 엄청난 길이와 넓이, 그리고 굉장한 힘과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을 한껏 드러내면서 수면 위로 높이 솟구쳐올랐다. 물고기는 한순간 배에 탄 노인의 머리 위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물속으로 철썩 떨어지며 노인과 배 위에 물보라를 온통 뒤집어씌웠다.         (P181)     


상어가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물고기의 검은 피 구름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천오백 미터도 넘는 깊은 바닷속으로 퍼져나갔을 때 이미 상어는 물속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너무나 빨리 그리고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솟구쳐올라왔기 때문에 상어는 푸른 바닷물을 뚫고 햇빛 속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러고서 바다로 다시 떨어진 상어는 곧 피 냄새를 찾아냈고, 즉시 배와 물고기가 지나간 길을 뒤쫓기 시작했다.        (P193)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그래도 이렇게 되고 보니 저 물고기를 죽인 게 후회스럽군, 노인은 생각했다. 이제 어려운 일들이 닥쳐올 텐데 작살조차 없으니, 덴투소는 잔인하고 싸움을 잘하고 강하며 영리한 놈들이야.            (P199)     


“자.” 그는 말했다. “난 여전히 늙은이에 불과하지만 무기가 없진 않아.”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고 배는 계속해서 잘 나아갔다. 노인은 물고기의 앞부분만 바라보았다. 희망이 조금 되살아났다. 

희망을 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노인은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난 그건 죄악이라고 믿어, 죄악 같은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말자, 그는 생각했다. 죄 말고도 지금은 문젯거리가 충분하니까. 게다가 나는 죄가 뭔지도 아는 게 없잖아.

죄에 대해 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더구나 죄라는 걸 내가 믿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 저 물고기를 죽인 건 어쩌면 죄였는지도 몰라. 비록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해서 그랬다 하더라도 그건 죄가 아닌가 싶어.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모든 게 죄가 되잖아. 죄에 대해선 생각하지 말자.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었고 또 죄에 대해 생각하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따로 있으니까. 그 사람들더러 생각하라고 하자. 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나도 어부로 태어났을 뿐이야. 성 베드로도 어부였지, 위대한 디마지오의 아버지처럼 말이야.            (P203)  


이전 02화 다카야마 마코토의 <에고이스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