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션> 2015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15년작 SF 영화.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화성에서 펼쳐지는 로빈슨 크루소풍 생존기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시각효과상, 음향편집상, 각색상, 음향믹싱상, 미술상 후보작이었으며, 제 73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최우수작품상-코미디 부문 수상작이다.
공식적인 기록을 위해 밝혀두자면........ 나는 6화성일째에 죽지 않았다. 다른 대원들은 분명히 내가 6화성일째에 죽은 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잘못이 아니다. 아마 조만간 나의 국장(國葬)이 치러질 것이고 위키피디아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이렇게 나올 것이다.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서 사망한 유일한 인간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그것이 현실이 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죽을게 확실하니까. 다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6화성일째에 죽지 않았을 뿐이다.
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레스 프로그램? 세계 최초로 인간을 다른 행성에 보내어 인류의 한계를 확장하네 어쩌네 하는 목적을 가진 인류의 화성 진출 프로그램이다. 아레스 1 탐사대의 대원들은 임무를 수행하고 영웅이 되어 귀환했다. 그들은 가두 행진을 하고 명예와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얻었다.
아레스 2 탐사대 역시 화성의 다른 지역에서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그들은 고국에 돌아가 진심 어린 악수와 따뜻한 커피를 대접받았다.
아레스 3 탐사대. 그것이 나의 팀이다. 뭐 딱히 ‘나의’ 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팀의 책임자는 루이스 대장이니까. 나는 일개 대원이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원들 가운데서도 가장 꽁무니 서열이었다. 나 혼자 남아야만 우리 팀의 ‘대장’이 될 수 있는 그런 입장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대장이다. (P14-15)
대강의 상황은 이러하다. 나는 화성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헤르메스나 지구와 교신할 방법도 없다. 모두들 내가 죽은 줄 알고 있다. 내가 있는 이 거주용 막사는 31일간의 탐사 활동을 위해 설계된 것이다.
산소 발생기가 고장 나면 질식사할 것이다. 물 환원기가 고장 나면 갈증으로 죽을 것이다. 이 막사가 파열되면 그냥 터져버릴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다. 나는 망했다. (P24)
나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지 계속 궁리하고 있다.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약 4년 후에 아레스 4 탐사대가 도착하면 다시 화성에 인간들이 존재하게 된다(나의 ‘죽음’으로 인해 아레스 프로그램 자체가 취소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레스 4 탐사대는 현재 내가 있는 이 아시달리아 평원에서 약 3,200킬로미터 떨어진 스키아파렐리 분화구에 착륙할 것이다.
나 혼자 힘으로 그곳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통신만 되면 구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레스 4 대원들이 수중에 있는 자원으로 어떻게 나를 구조해낼지는 모르겠지만 나사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나의 임무는 이러하다. 지구와 교신할 길을 찾을 것. 그럴 수 없다면 4년 뒤 헤르메스가 아레스 4 대원들을 태우고 다시 왔을 때 그들과 교신할 방법을 찾을 것.
물론 1년 치 식량으로 어떻게 4년을 버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하나씩 해결하자. 지금 나는 배를 채웠고 확실한 목적을 갖고 있다. 빌어먹을 통신 장치를 고치는 것 말이다. (P29)
식물학자를 화성에 데려온 이유가 무엇일까? 어쨌든 화성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기로 유명한데 말읻. 뭐, 명시적으로는 화성 중력에서 식물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 알아보고, 실질적인 목적은 화성 토양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지도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간단하게 답하면 여러 가지에 써먹을 수 있다...... 잘만 하면, 화성 토양은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구의 토양에는 화성 토양에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화성 토양은 지구의 대기권으로 가져가 물을 듬뿍 주어도 지구 토양에 있는 성분들을 가질 수 없다. 이를테면, 박테리아의 활동 그리고 동물의 생태가 제공하는 특정한 영양분 등이 그렇다. 화성에서는 그런 것들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번 임무에서 내가 맡은 역할 중 하나는 지구와 화성의 토양 및 대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각각의 환경에서 식물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지구 토양과 식물 종자들을 가져왔다. (P31)
예전에 대수학 시간에 풀었던 응용 문제를 기억하는가? 어떤 용기에 일정한 속도로 물이 차는 동시에 다른 속도로 물이 계속 빠진다면 그 용기가 완전히 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가? 이런 문제 말이다. 내가 지금 연구 중인 ‘마크 와트니는 죽지 않는다’ 프로젝트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나는 열량원을 만들어야 한다. 아레스 4 탐사대가 도착할 때까지 1,387화성일을 버틸 수 있는 칼로리가 필요하다. 아레스 4 탐사대에게 구조되지 못하면 어차피 죽는다. 화성의 하루는 지구의 하루보다 39분이 더 길기 때문에 지구의 일수로 계산하면 1,425일을 버텨야 한다. 그러니까 나의 목표는 1,425일분의 식량을 마련하는 것이다. (P40)
실내 온도가 섭씨 1도로 내려간 뒤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흙 속의 박테리아들이 이제 활동을 늦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접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나는 또 하나의 문제에 부딪혔다. 바로 대기 조절기였다. 내가 큰소리를 뻥뻥 쳐놓긴 했지만 그 녀석의 지략은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대기 조절기는 ‘고집스럽게도’ 대기 중의 O2를 너무 많이 제거하려 들지 않았다. 내가 조작할 수 있는 최저치는 15퍼센트였다. 무슨 짓을 해도 그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계획들을 잔뜩 세웠다. 그러나 알고 보니 안전 규약들은 읽기 전용 기억장치에 들어가 있었다.
그걸 원망할 수는 없다. 대기 조절기의 유일한 용도는 대기가 치명적인 상태로 바뀌지 못하게 ‘막는’ 것이니까. 나사에서 “전부 즉사하도록 산소 농도를 치명적으로 낮출 수 있게 해보자!”라고 제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P74)
분명히 신나게 수소를 태우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막사 반대편 구석에 처박혀 있고 온갖 물건들이 여기저기 날아가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보니 막사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 “귀가 왜 이렇게 아픈 거야!”
그런 다음 “어지러워”라고 생각하며 나는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나’ 어지러웠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더듬으며 부상의 흔적을 찾았다. 부다 그런 게 발견되지 않기를 절실히 바라면서. 문제는 없는 듯 했다.
그러나 머리와 얼굴 전체를 만져보자 진짜 문제가 드러났다. 산소마스크가 폭발 때문에 찢어졌던 것이다. 나는 거의 순질소로만 호흡하고 있었다. (P77)
“하나씩 풀어보자고, 밴커트, 그가 살아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뭔가?”
벤커트는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시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간이텐트가 펼쳐져 있지요. 태양전지도 깨끗하고요. 그나저나 이런 것들은 전부 위성관리팀의 민디 파크가 알아낸 겁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6화성일째와 불어닥친 폭풍 때문에 시신이 완전히 묻혀버렸을 수도 있지요. 간이텐트들은 자동으로 펼쳐져서 바람에 날아왔을 수도 있고요, 그런 다음 시속 30킬로미터의 모래 폭풍이 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태양 전지들을 깨끗이 쓸어주기만 하고 다시 모래로 덮어놓진 않았을 겁니다. 확률이 낮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난 몇 시간 동안 가능한 것들을 최대한 확인해보았습니다. 루이스 대장은 로버 2를 타고 두 번 탐사를 나갔다 왔습니다. 두 번째로 나간 건 5화성일째였지요. 임무 기록에 따르면 루이스는 탐사를 나갔다 돌아와서 로버를 충전하려고 거주용 막사에 꽂아놓았습니다. 그 뒤론 사용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열세 시간 후에 그들 모두 대피했습니다.“ (P97)
“와트니가 정말 살아 있다고 해도 아레스 3 대원들에겐 알리지 않을 생각이야.”
“뭐라고요!? 어떻게 그들한테 알리지 않을 수가 있어요?”
애니가 물었다.
“그들은 앞으로 열 달을 더 버텨야 돌아올 수 있어. 우주여행은 아주 위험하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딴생각을 해선 안 돼. 지금은 동료를 잃어서 슬프겠지. 하지만 살아 있는 동료를 버리고 왔다는 걸 알면 얼마나 참담하겠나.”
테디의 말이었다.
애니는 벤커트를 보며 물었다.
“박사님도 같은 생각이세요?”
“당연한 겁니다. 감정적 트라우마는 우주선을 타고 날아다니지 않을 때 겪어도 됩니다.”
벤커트가 대답했다.
“이건 아폴로 11호 이래로 가장 떠들썩한 사건이 될 거예요. 그걸 어떻게 숨기시려고 그래요?” (P99)
이제 화성은 내게 낯선 곳이 아니다. 나는 이곳에 꽤 오래 있었다. 하지만 거주용 막사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KTG 매립지로 향하다 보니 문득, 화성은 황무지이고 나는 이곳에 ‘완전히’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다르다. 사방이 흙과 암석, 끝없이 펼쳐진 사막뿐이다. 화성은 붉은 행성으로 유명한데, 산화철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그냥 사막이 아니다. 너무 오래되서 말 그대로 녹슬고 있는 사막이다.
거주용 막사는 내게 유일한 문명의 표시이므로, 그것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불안해졌다. (P127)
“최근의 선외 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벤커트는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죠. 마크는 현재 장기 여행을 위해 로버 2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64화성일째에는 로버 1의 배터리를 분리해 직접 만든 끈으로 로버 2에 장착했습니다. 그다음 날에는 태양 전지판 열네 개를 거두어 로버의 지붕에 쌓아올렸지요.”
“그런 다음 로버를 조금 몰아보지 않았나요?”
캐시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한 시간 동안 무작위로 달리다가 다시 거주용 막사로 돌아왔습니다. 시운전을 해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틀 후에 다시 밖으로 나왔고 이번엔 4킬로미터 지점까지 로버를 몰고 나갔다. 돌아왔지요. 좀 더 고도의 시운전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 다음 지난 이틀 동안 로버에 각종 물품을 싣더군요.” (P135)
“우린 1997년에 패스파인더와 교신이 끊어졌어. 마크가 그걸 다시 연결한다면 우리랑 교신할 수 있지. 태양 전지만 닦아주면 해결될지도 몰라.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해도 어쨌든 마크는 공학자잖아!”
그는 전화를 걸면서 덧붙였다.
“수리가 본업인 사람이라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기를 귀에 대고 응답을 기다렸다. 몇 주만에 처음 웃어보는 것 같았다.
“브루스? 벤커트입니다. 특종이에요. 와트니가 패스파인더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패스파인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모두 소집해서 제트추진연구소에 모이게 해줘요. 바로 비행기를 잡아타고 가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지도를 보며 빙긋 웃었다.
“마크, 이 엉큼한 놈, 하여튼 영리하다니까!” (P159)
기분이 참 묘하다. 어디를 가든 내가 최초가 아닌가. 로버 밖으로 나가면? 그곳에 발을 디딘 최초의 인간이 된다! 언덕을 오르면? 그 언덕을 오른 최초의 인간이 된다! 암석을 걷어차면? 그 암석은 백만 년 만에 처음 움직인 것이다!
나는 최초로 화성에서 장거리 운전을 했다. 최초로 화성에서 31화성일을 넘겼다. 최초로 화성에서 농작물을 재배했다. 최초로, 최초로, 최초로 말이다! (P166-167)
패스파인더는 반쯤 묻혀 있었다. 나는 서둘러 조심조심 흙을 파내어 선체를 드러냈다. 하지만 커다란 사면체와 바람 빠진 기구들은 여전히 땅속에 박혀 있었다.
주위를 휙 둘러보니 소저너가 보였다. 이 꼬마 친구는 착륙선에서 겨우 2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이 소저너는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을 때 착륙선과 좀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마 비상 모드로 들어가 착륙선 주위를 돌며 통신을 시도했을 것이다. (P169)
이제 흙을 팔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기구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떼어냈다. 이 모든 작업에 총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런 다음 패스파인더가 있는 가운데 패널을 당당하게 번쩍 들어 로버로 가져가는 것이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자식은 여전히 죽도록 무거웠다. 200킬로그램은 나갈 것 같았다. 화성 중력에서도 그 정도는 좀 너무했다. 막사 안이었다면 번쩍 들고 옮길 수도 있었겠지만, 거추장스러운 우주복을 입고 그 짓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냥 로버까지 질질 끌고 갔다.
그다음 과제는 그것을 지붕 위로 올리는 일이었다. (P170-171)
그때 바람에 날아온 잔해가 와트니와 충돌해 그를 바람 속으로 데려갔다.
“와트니!”
조한슨이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루이스가 물었다.
“무언가가 와트니를 때렸어요!”
조한슨이 보고했다.
“와트니, 응답해.”
루이스가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와트니, 응답하라.”
루이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번에도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연결이 끊겼어요.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조한슨이 보고했다.
“대장, 와트니의 원격 신호가 끊어지기 전에 감압 경보가 울렸습니다!”
베크가 말했다.
“루이스가 소리쳤다.
“젠장! 조한슨, 와트니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어디 있었어?”
“바로 제 앞에 있다 사라졌어요. 서쪽으로 날아갔어요.” (P225)
에어로크는 40미터를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좀 전의 충격에서 간신히 벗어난 와트니는 이번에 앞문에 얼굴을 박았다.
안면 보호막이 심한 타격을 받아 안전유리가 수백 개의 작은 사각형으로 산산조각 났다. 그는 헬멧 안쪽에 머리를 박고 정신을 잃었다.
에어로크는 화성 표면을 15미터쯤 더 굴러갔다. 두툼한 우주복이 골절상을 막아주었다. 와트니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정신이 가물가물했다.
마침내 에어로크는 먼지구름 한가운데에 옆으로 쓰러진 채로 멈춰 섰다.
와트니는 등을 대고 누운 채 부서진 안면 보호막의 구멍으로 멍하니 위를 바라보았다. 이마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조금씩 정신이 들면서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를 옆으로 돌려 뒷문의 창밖을 내다보았다. 폭삭 주저앉은 거주용 막사가 멀리서 일렁거렸고 그 앞엔 수많은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윽고 쉬 하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우주복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공중전화 부스만 한 에어로크 어딘가에 작은 균열이 생겨 공기가 새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 소리를 열심히 듣다가 부서진 안면 보호막을 만져보았다. 그런 다음 다시 창밖을 보았다.
“지금 장난해?”
그가 말했다. (P258-259)
“리치, 정말 이럴 거야? 맡은 일부터 해야지.”
리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지금 휴가를 써도 괜찮을까요?” 그가 물었다.
마이크는 한숨을 쉬었다. “있잖아, 리치. 아무래도 지금 ‘꼭’ 휴가를 쓰는 게 좋겠군.”
리치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저 지금부터 휴가예요.”
“그래. 집에 가. 가서 좀 쉬어.” 마이크가 말했다.
“집에 가려는 거 아니에요.” 리치는 좀 전에 하던 계산을 계속했다.
마이크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래, 마음대로 해. 그런데 그 위성 궤도 말이야…….”
“저 지금 휴가예요.” (P296-297)
꾸오밍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사에서 내주지 않으면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언가를 얻어내야지.”
“그게 뭡니까?”
“화성에 중국 우주비행사를 보내는 것.”
주타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러곤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아레스 5 탐사대가 선발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인 한 명을 끼워달라고 하면 되겠군요. 우리가 선발해서 훈련시킨 사람으로 말입니다. 나사와 미국 국무부는 틀림없이 받아들일 겁니다. 그런데 우리 국무원에서도 받아들일까요?”
꾸오밍은 교활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공식적으로 미국인을 구조하는 셈이 되지. 게다가 화성에 중국인 우주비행사를 보낸단 말이야. 우주에선 중국이 미국과 동등하다는 것을 세계에 입증하는 셈이야. 그 정도면 국무원 사람들은 자기 ‘엄마’도 팔려고 들걸.” (P320)
맙소사!
그들이 나를 데리러 온단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버스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그들은 궤도에 진입할 수 없다. 그들이 지나갈 때 내가 우주로 나가 있지 않으면 그들은 그저 손을 흔들며 가버릴 수밖에 없다.
나는 아레스 4의 MAV로 가야 한다. 나사도 동의했다. 나사의 잔소리꾼들이 3,200킬로미터 육로 이동을 추천한다면 진짜 난감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스카아파렐리여, 내가 간다! (P355)
13시 30분, 나는 드릴을 작업대에 기대어놓았다. 드릴은 전력선을 연결하느라 덮개를 벗긴 상태였다. 작업대는 금속이다. 드릴이 작업대에 똑바로 기대어져 있었다면 금속과 금속이 접촉한 셈이다. 그것이 바로 사건의 진상이었다.
드릴 전선의 양극 도선에서 나온 전기가 작업대와 마일라, 패스파인더 외피, 그 밖에 극도로 민감하고 교체 불가능한 전기회로들을 통과해 패스파인더의 음극 도선으로 나온 것이다.
패스파인더의 정격 전류는 50밀리암페어이다. 그런데 9,000밀리암페어가 흘렀다. 그 엄청난 전류가 민감한 전기회로를 통과하며 모든 것을 바싹 튀겨버렸다. 차단기들이 내려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패스파인더는 죽었다. 이제 나는 지구와 연락할 수 없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P372-373)
내 달력에 따르면 헤르메스 재보급선이 (지연되지 않을 경우) 이틀 후 중국에서 발사된다. 그게 틀어지면 대원들 전체가 깊은 수렁에 빠진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것은 바로 그런 상황이다.
나는 몇 달 동안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었으므로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그런데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죽는 건 싫다. 하지만 내 동료들이 죽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싫다. 게다가 나는 스키아파렐리에 도착하기 전까지 보급선 발사가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동료들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P393-394)
“카푸어 박사님. 타이양센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왜 보급선을 발사하러 중국까지 가야 하는 거죠? 미국에서 발사할 수는 없나요?”
“헤르메스는 지구궤도에 진입하지 않을 겁니다. 지구궤도를 지나쳐서 화성으로 갈 예정이지요. 그런데 그 속도가 ‘엄청납니다’. 따라서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헤르메스의 현재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추진 로켓이 필요합니다. 그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은 타이양센 추진 로켓뿐입니다.”
벤커트가 말했다. (P406-407)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이미 알고 있는 사항에 추가할 것이 많지 않았다. 계속 직진하여 아시달리아 평원을 벗어나 마우르스 협곡에 이르면 그 협곡을 끝까지 따라간다. 그 길을 지그재그로 달리다 보면 결국 아라비아 테라가 나온다. 그다음부턴 평탄치 않은 길이 이어진다.
아시달리아 평원과 달리 아라비아 테라는 분화구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분화구가 나올 때마다 두 번의 심한 고도 변화를 겪어야 한다.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니까. 나는 최대한 분화구를 돌아가는 최단 경로를 찾아보았다. 틀림없이 이동하면서 경로를 조종해야 할 것이다. 모든 계획은 적과 만나는 순간 생을 마감하는 법이다. (P447)
화성에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위도와 경도. 그게 열쇠다. 위도는 쉽다. 먼 옛날 지구의 뱃사람들은 위도를 쉽게 파악했다.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은 북극성을 가리키고 있다. 화성은 25도가 조금 넘게 기울어져서 데네브를 가리키고 있다. 육분의(六分儀, 두 점 사이의 각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광학기계)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부가 뚤린 관 하나와 실 하나, 추 하나, 각도가 표시된 도구만 있으면 된다. 나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육분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내가 만든 육분의를 갖고 나가 데네브를 본다.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다. 화성에서 우주복을 입고 서서 16세기 도구로 길을 찾다니, 하지만 꽤 쓸 만하다.
경도는 얘기가 다르다. 지구에서 맨 처음으로 경도를 알아내는데 사용한 방법은 정확한 시간을 알아내어 하늘에 있는 태양의 위치와 비교하는 것이었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배 위에서도 정확하게 가는 시계를 고안하는 일이 큰 난제였다(배에서는 진자가 제대로 진동하지 않으므로). 그 시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두 그 문제에 매달렸었다.
다행히 내겐 정확한 시계가 있다. 당장 눈앞에만 해도 컴퓨터가 네 대나 있다. 게다가 포보스도 있다. (P468)
로버에겐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로버는 계속해서 언덕을 굴러떨어졌고 그 안에 탄 여행자는 마치 건조기 안에 넣은 빨래처럼 사방에 몸을 부딪쳤다. 2미터쯤 지나 부드러운 가루가 좀 더 단단한 흙으로 바뀌자 로버는 우뚝 멈춰 섰다.
그러나 옆으로 누운 채였다. 호스들이 끊어지고 나자 거기에 연결된 밸브들은 갑작스러운 압력 손실을 감지하고 봉쇄되었다. 압력 밀폐는 파열되지 않았다.
일단, 여행자는 살았다. (P501)
겁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네 시간 후면 나는 엄청난 폭발을 타고 궤도로 날아간다. 전에도 몇 번 해보았지만 이렇게 허술한 물건을 타고 간 적은 없다.
지금 나는 MAV에 앉아 있다. 선체 앞쪽, 창문과 외판의 일부가 있던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어 우주복을 입고 있다. 나는 ‘발사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말 그대로 그저 발사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그저 가속 의자에 앉아 운이 따라주길 바라는 수밖에. (P547)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겨우 나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동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해가며 나를 데리러 돌아왔다. 나사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일하며 로버와 MAV 개조 방법을 연구했다. 제트추진연구소 사람들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보급선을 만들었다. 그 보급선은 결국 발사 도중에 파괴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헤르메스에 보급하기 위해 또 하나의 무인선을 만들었다. 중국 항천국은 수년 동안 매달린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추진 로켓을 내주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괴상한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쏟아 붓다니, 대체 왜 그랬을까?
그렇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진보와 과학, 그리고 우리가 수 세기 동안 꿈꾼 행성 간 교류의 미래를 표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등산객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이 협력하여 수색 작업을 펼친다. 열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줄을 서서 헌혈을 한다. 한 도시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구호품을 보낸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나쁜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멋지지 않은가?
어쨌든 나는 갈비뼈가 미치도록 아프고 가속으로 인한 멀미 때문에 여전히 시야가 흐리며 배가 몹시 고프고 앞으로 211일이나 더 있어야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 게다가 내 몸에서는 스컹크가 땀이 밴 양말에 똥을 싸놓은 것 같은 냄새가 나는 듯하다.
그래도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다. (P597-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