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회사생활을 할 때, 은행 업무를 보러 가면 항상 자리에 계시던 여자 과장님이 안보였었다.
다른 직원 말로는 아이 초등학교 입학 때문에 사직서를 내셨다고.
휴직도 아니고 사직?
은행원이라는 직업이 복지가 나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육아휴직이라도 내면 안 되는 건가 싶었다.
그때만 해도 결혼 전이라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힘든 신생아, 유아기도 지났으니 초등학교 입학하면 엄마는 사회생활 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나 보다.
나는 큰 아이가 두 돌 되던 해, 10년 동안 일한 회사 생활을 정리했다.
그 회사에 더 이상 '헌신'하고 싶지 않을 만큼 열정을 바쳐 일했으며, 아이는 누구보다 내 손길이 필요한 시기 아니던가. 돌이켜보면 친정엄마가 2년 동안 아이를 맡아주셨기에 그 '10년'이란 세월을 채우고 관둘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어릴 때 생각해 보면(지금도 둘째가 6살이라 여전히 육아 중이지만;;) 출산은 내 몸에서 아이가 분리됐을 뿐, 나오고 나니 이 작은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입히고 먹이고.. 그 모든 걸 엄마라는 이름으로 해야 한다. 당연하다. 내 자식이니까. 나와 남편의 선택으로 세상의 빛을 봤으니 그 희생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 이래서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거구나. 남들이 하는 얘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런 아이가 조금씩 자라 혼자 양치질도 하고 세수도 하고 양말도 신고 옷도 입는다.
혼자서 말이다! 올레! 그래, 고지가 얼마 안 남았어! 기뻐하던 찰나.......
초등학교 입학 후 1학년의 생활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 가장 빡세게구른(?)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좀 연해진 다크서클이 다시 무릎까지 내려오게 만들었다.
아이는 9시까지 학교에 가야 한다.
그리고 점심을 안 먹고 12시쯤 수업이 끝난다.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빨래 돌리고 집안일 이것저것 건드리면 어느덧 11시다. 마음이 급하다. 아이를 또 데리러 가야 한다.
좀 전에 학교에서 헤어진 듯한데 다시 학교로 간다.
멀리서 아이가 해맑은 미소로 엄마! 하고 뛰어온다. 꼬물이가 이제 학교를 다 가는구나.. 첫 아이를 초등학교 입학시키는 엄마 마음이 이런 건가. 뭔가 뭉클하면서 대견스럽다.
그러고 나서 집에서 잠시 쉬다 태권도 학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집 앞 건너 상가까지 또 데려다준다.
수업시간은 한 시간... 집에 돌아온 나는 아침에 마저 못한 잔잔바리 집안일을 하고 다시 학원으로 간다.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언어와 인지치료.
센터까지 차로 15분에서 20분 거리.
내 직업은 아이의 매니저가 되어 있었다. 하루에도 현관문을 열댓 번은 열고 닫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어린 둘째는 아침에 어린이집에 보내면 적어도 4시 전까지 맘 편히 맡길 수 있었다.
뒤늦게 큰 깨달음을 얻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시절이 엄마들에게 시간이 더 많은 거였다.
초등학교 입학 후 1학년 아니 2학년까지는 통학이며 학원이며 아이가 혼자 가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동행을 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2학년 1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혼자 학교를 가겠다며 씩씩하게 현관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