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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03. 2024

성숙은 선택이다

< 사춘기 아들 갱년기 아빠는 성숙해지는 중입니다 - 신재호 >

우리 집엔 하숙생 한 명이 산다. '끝방 사는 잘생긴 총각'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하숙비를 안 내는 것만 빼면 건실한 총각이다. 가끔 술 처먹고 새벽녘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지만 그 정도는 젊은이의 특권이라 생각할 만한 일이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으며 가끔은 철든 소리, 살가운 대화도 건네는 걸 보며 '뉘 집 아들인지, 엄마아빠가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그에게도 전쟁 같은 사춘기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이제는 평온한 관계가 되었지만, 엄마는 기억한다. 까마득한 옛날, 서툰 엄마와 거친 아들이 극한의 대치 상황에 놓였던 시절을. 매일 아들의 등굣길에 동행하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던 아빠의 존재를.


신재호 작가의 책은 그 시절의 나와 아들, 남편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울컥 올라오는 기억이지만, 갈등과 함께 성숙이 세트로 따라오는 기억이기도 하다.  <사춘기 아들 갱년기 아빠는 성숙해지는 중입니다>는 가족이라면 발달 단계상 겪을 수밖에 없는 변화와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아빠와 아들이라는 특별한 사이가 서로의 세계를 인정하고 성숙한 관계로 거듭나는 과정을 솔직하게 전해준다.


어떤 행동을 하든지 부모의 영역 안에 있던 아이가 점차 자신만의 세계가 생기며 서서히 부모를 떠나는 연습을 하는 시기가 바로 사춘기다. (P100)


"눈에 초점이 없고 전조등을 켜지 않고 터널을 지나는 자동차처럼 어두웠다"라는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사춘기 아들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현실적인 표현이 있을까. 전조등을 켜고 전방주시하며 천천히 가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으며, 눈에 힘 팍 주고 살아야 한다는 잔소리를 퍼부어도 초점 없는 눈으로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작가가 마주한 사춘기 아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낮밤이 바뀌고 게임과 유튜브에 빠져 살며 샤워를 한 시간씩이나 하고 나오는 아들을 대면한 작가는 자신이 느꼈던 당혹스러움을 가감 없이 전해준다. 작가 본인도 근심걱정 많은 갱년기를 겪고 있어 제 코가 석 자인데 아들의 사춘기까지 감당해야 하니 사면초가에 놓인 심정이었을 테다. 하지만 법무부 청소년 상담사로 재직 중인 작가는 관계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았다. 아이에게 '숨 쉴 구멍'이 되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나는 아이에게 삶의 중요한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힘들 땐 언제든 찾아와 도움을 청하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점을 찾아가는 성숙한 관계 말이다. 그러려면 꾸준히 좋은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 (p124)

작가는 갱년기와 사춘기, 그 둘 사이의 갈등을 관망하고만 있지 않다. 작가 본인이 직접 실천했던 노하우를 소개하며 관계 개선을 위해 아빠가 해야 할 깨알 팁을 대방출한다.

머리나 긁적이며 둔감하게 있기보다는, 자녀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기.
지적 대신, 공감하기.
간섭 대신, 아들의 독립된 세계를 인정하며 지지하기.
방법을 모른다며 외면하기보다는, 게임이나 운동 등을 통해 물리적 시간을 함께하기.
닦달하는 대신, 놀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하기.
전전긍긍하며 매달리기보다는, 쿨해지기.
숨 막히는 벽 같은 존재 대신, 숨 쉴 구멍이 되어주기.
아들에게만 집중하는 대신, 아빠가 집중할 수 있는 돌파구 찾기.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대부분 자식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게 된다. 생기 있고 활기차면서 싹싹하고, 공부뿐 아니라 운동도 잘하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며, 어떤 일을 하든 자기 주도적으로 하는 아들, 딸.

자녀가 점차 자라며 이상적인 모습에서 멀어지는 현실을 마주할 때, 특히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모습과는 한참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면 부모는 당황한다. 엄마아빠도 엄마아빠가 처음이라 당혹스러운 와중에 갱년기까지 겹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사춘기가 이기네, 갱년기가 이기네하며 으르렁 거리다가 관계는 틀어지고 평행선 같은 관계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밑바닥에 있던 인간성도 드러난다. 갱년기와 사춘기가 격돌하는 지점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나는 자기만 힘들고 자기만 옳다며 남을 밟는 사람인가, 서로의 고통을 인정하고 함께 손잡고 일어나는 사람인가? 어떤 것이 둘 다 생존하길인가? 선택상대의 몫이 아니라 자신의 몫이다. 게다가 부모 된 자라면 지금 이 순간이 아이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갈등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 관계를 성숙하게 업그레이드하는 법 말이다.


갈등 없는 성숙은 없다. 성숙의 끝에는 안온하고 평화로운 공존이 있다. 사춘기 자녀를 둔 갱년기 부모가 각자의 세계를 인정하되 서로의 세계로 건너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싶다면, 그리하여 평화로운 관계로 한 단계 성숙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작가와 함께, 자녀와 함께 그 어둡고 긴 터널을 슬기롭게 지나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각자 성숙한 독립체로 당당하게 서로를 마주 보는 관계가 되기를...


한 가지 다짐했다. 최대한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언제든 떠나고 싶어 하면 쿨하게 보내주기. 친구들이 좋아서, 혹은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도 서운해 말고 적극적으로 응원하기로 했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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