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친한 동생이 있습니다.
딸이 있는데, 좀 어려요. 나이가 아니라 또래보다 어리다는 말 입니다. 편의상 '수연'이라 부를게요.
초등학교 1학년이고 아직 한글을 잘 못한대요.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어 등교에 애를 먹더라고요. 8시 30분에는 나가야 하지만 수연이는 최-대한 늑장을 부리죠. 30분, 30분, 그놈의 30분 때문에 모녀가 30분 노이로제가 생길 지경입니다.
수연이엄마의 하소연을 듣자니 뭔가 도움을 줄 순 없을까 고민이 됐어요. 그래서 수연이에게 엽서를 써봤는데, 답장까지 바라진 않았지만 천천히라도 직접 읽어보길 바랐죠.
저는 수연이를 만나면 항상 수연이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와! 수연이는 인사를 너무 잘한다! 최고다!"
"수연아 머리띠가 왜 이렇게 잘 어울려? 최고야!"
이렇게요. 사실이니까요.ㅎ
편지나 쪽지를 쓸 땐 평상시 깔아 뒀던 밑밥을 건져 올려 활용하면 좋습니다. 위 쪽지에선 적극 활용하진 않았지만요. 습관처럼 건네던 별명이나, 평소에는 놀림감으로 쓰던 말 역시 글로 풀어내면 반전감동을 줄 수 있어요. 간단예: 너 돼지가 얼마나 귀여운 캐릭터인지 알아?
어른인 우리가 보기에 대단히 상식적인 것들도, 아이들에게는 아닌 경우가 많죠.
그 아이의 나이로 돌아가서 같은 수준으로 현실을 바라본다면 이해하기에 조금은 편합니다.
보통은 옛날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완벽하게 공감할 수는 없고요, 한 60%는 '그럴 수도 있겠다-' 했다면, 나머지 40%에 대해서만 잘 풀어 일러주면 되는 겁니다.
교과서가 어렵고, 친구들이 놀리면 당연히 학교 가기 싫어요. 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싫어도 가야한다, 모르니까 가서 배워야지 하는 논리가 통할까요?
정말 가기 싫겠구나(60%의 공감)
하지만 안갈 수는 없으니(20%의 단호함)
잘 참고 다녀오면(10%의 조건)
학교가 좋아지도록 엄마가 도와줄게(10%의 긍정적 메세지나 보상)
이런 식으로 상황에 따라 비율을 조절해요.
아무튼 수연이는 한동안 아침요정을 찾다가 집안 구석구석에서 잃어버렸던 장난감을 많이도 찾아냈다 합니다. 물론 등교도 30분에 잘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아침요정이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수연이 엄마가 한글 걱정을 하기 시작해서요.
거꾸로 놓고 쓰느라 재미 좀 봤어요.
다있다는 그곳에서 가끔 연필 한 세트를 삽니다.
저렇게 연필에 글을 적어 저희 아이들에게도 선물하곤 했어요. 장점을 가득 적어서 주죠. 내 마음도 섞어요. 잔소리는 새기지 마세요. 응원이랍시고 "넌 잘할 수 있어!" 이런 것도 쓰지 마요. 그 연필 안잡습니다. "받아쓰기 80점을 받다니" "대단한 철수군" "너의 화장법을 알려달라" "엄마보다 키 큼" "무조건 사랑해" 이런 거 좋네요.
수연이에게 받은 답장이 있는데, 저작권이 수연이에게 있으니 사진을 공개할 수가 없어요.
세상에 메달을 만들어서 쪽지를 썼지 뭐예요.
저를 사랑한다고요~
글씨가 아주 서예가 저리가라예요. 역시 최고다 수연이. 그 사이에 한글이 그렇게 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