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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심자의 행운 Oct 13. 2024

삶에 시련이 찾아왔을 때

* 이 브런치북의 원래 기획에는 '프롤로그: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 프롤로그 글을 이미 발행해버려서 이 브런치북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발행했던 글을 취소하고 브런치북에 다시 끼워넣을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그 글에 달아주신 댓글과 라이킷, 응원하기 해주신 마음들이 너무 감사해서 차마 삭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래 링크를 첨부하니 프롤로그 글을 먼저 보신다면 흐름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https://brunch.co.kr/@ymisblue/2






스텔라가 처음으로 전문가에게 "발달이 느릴"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들은 건 생후 2개월 때였다.


생후 2개월.


무려 39주의 시간을 고이 배에 품고 있다가 처음으로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던 그 순간,

그 경이롭고 감동적인 순간에 느꼈던 행복감이 채 잦아들기도 전이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가가 촉촉해진다.

너무나 작고 소중한 내 아가.




스텔라는 출산 예정일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자궁 속에서 머리를 아래 방향으로 돌리지 않았다. 결국 39주에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했고, 아기의 얼굴은 비대칭으로 한쪽 볼이 더 컸다. 의사 말로는 자궁 속에서 한쪽 방향으로 오랜 시간 있어서 눌린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돌아온다고 했다.


첫 아이라 모든 게 걱정이었던 나는, 아기 얼굴의 비대칭이 돌아올 수 있도록 제왕절개 수술 후의 통증 속에서도 폭풍 검색을 통해 비싼 베개를 사고 정보를 찾았다.


그러던 와중 나는 스텔라의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져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찾아보니 그건 '사경'이란 증상이었다. 또 걱정스런 마음에 폭풍 검색을 통해 아주대병원이 사경 치료로 유명하다는 걸 알고 바로 전화해 예약을 잡았다. 그러나 유명한 병원답게 예약일은 몇 달이나 뒤였다.


어릴 때 치료를 할수록 교정이 쉽다는 정보를 얻은 터라, 마음이 급했던 나는 아주대병원 예약일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근처의 한림대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몇 주 후, 한림대 재활의학과 예약일이 다가왔고, 그날은 공교롭게도 스텔라가 생후 2개월 예방접종을 하는 날이었다. 예방접종을 하고 나면 아기들이 열이 나거나 아플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급했던 나는 예방접종을 맞은 바로 그날 오후에 진료를 보러 갔다.


한림대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스텔라를 보시고 처음으로 한 말은,

"아기가 힘이 없네요. 이런 아기들의 경우 앞으로 발달이 느릴 수가 있어요." 였다.


나는 사경 때문에 진료 보러 간 건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당황한 나는 오늘 예방접종을 맞고 와서 그렇다고 항변했다. 교수님은 그럴 수도 있지만 본인의 임상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타고나길 힘이 없는 아기인 것 같다고 하셨다. 어쨌든 사경에 대한 진단과 그를 위한 물리치료 일정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안 좋은 예감은 꼭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바로 그다음 날, 스텔라는 온몸에 힘이 쭉 빠져 쳐지는 증상을 보였다. 열은 없었다.

바로 전날 들었던 그 찝찝한 소리가 스텔라의 쳐진 모습 위로 오버랩되면서 나는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에 급하게 소아과에 전화했고, 그들은 아기가 열은 없는데 쳐지는 증상을 보인다면 응급실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거의 이성을 잃은 채로 나는 한림대병원 응급실로 스텔라를 데려갔다.



응급실에서 스텔라는 피검사를 비롯한 온갖 검사를 다 받았다. 그 작디작은 손등에 주삿바늘을 찔러 피를 뽑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그만 미친년처럼 눈물콧물을 흘리며 울었다.


다행히 스텔라는 응급실에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유를 먹고 나서 다시 컨디션이 돌아왔다. 왜 아기가 쳐지는 증상이 있었는지 원인을 찾기 위해 응급실에서는 심지어 심장 초음파 검사까지 하며 하루종일 검사를 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그날 입원까지 시켰다.






생후 2개월 된 아기와 대학병원 응급실에 왔다가 입원까지 하게 된 상황.

그 당시 내 심정은 극심한 공포 그 자체였다. 혹시나 아기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어디가 잘못된 건지, 혹시나 앞으로 뭐가 더 잘못되는 건 아닌지.


전날 들었던 발달 관련 이야기 때문에 더더욱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 속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되돌아보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스텔라와 함께 깜깜한 동굴 속에 갇히게 되었던 시작점이.

(물론 이제는 그때만큼 깜깜하지 않고, 나와 스텔라는 빛이 보이는 출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1박 2일의 검사와 관찰 결과, 의심되는 요소로 찾은 유일한 사항은 심장의 효소 수치였다. 스텔라 심장의 효소 수치가 높다고 했다. 그게 지금 당장 어떤 위협적인 요소라고 볼 수는 없지만 앞으로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소견이었다.



스텔라는 그 후 한림대병원에서 사경과 관련된 물리치료를 몇 회기 받다가 아주대병원 진료예약일이 되어 진료를 받고, 그곳에서 물리치료를 몇 달 받았다. 그리고 스텔라의 사경 증상은 호전되었다.

 

심장 효소에 관련한 진료는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겼다. 거기서는 심장 효소에 관한 이슈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초음파 결과 심장에 구멍이 하나 있다고 했다. 태어난 직후 바로 막혔어야 하는데 아직 막히지 않았고, 큰 문제는 아니니 그 구멍이 크면서 막히는지 확인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분당서울대에서 발달 이슈와 관련해서 재활의학과 진료도 받기 시작했는데  그때가 생후 4개월쯤이었던 것 같다. 보통 아기가 3개월 정도 되면 목을 가눌 수 있는데 스텔라는 4개월이 되어서도 목을 가누지 못했다. 백일 사진을 보면 목을 못 가눠서 범보의자 뒤에서 남편이 목을 받쳐주고 찍었다.

결국 한림대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말했던 발달이 느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현실이 된 셈이다.


그 뒤로 분당서울대 소아물리치료실에서 일주일에 2번, 몇 달간 물리치료를 받았다. 그 시간은 정말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일단 분당서울대는 너무나 크고, 주차하기가 흡사 전쟁과도 같다.


물리치료 시작 시간보다 1시간 전에 출발해서 도착 후 주차를 하는데 지하주차장은 언제나 만차라고 쓰여있고, 지상주차장은 본관에서 걷기엔 좀 먼데 그나마도 만차인 경우에는 병원부지 한쪽 구석에 있는 장례식장 주차장에 차를 대야 한다.

거기서는 셔틀버스를 타고 본관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셔틀버스가 늘 바로바로 있는 것도 아니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나는 스텔라를 안고 온갖 아기 짐들로 가득한 가방을 메고 끙끙대며 고생해야 했다.


그리고 물리치료가 끝나고 나면 공감능력 없고 매정한 물리치료사의 말에 매번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이 개월수에는 뒤집기를 해야 하고 손을 뻗어 물건을 잡아야 하는데 스텔라는 지금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을 매번 해댔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안되니까 지금 치료받는 거잖아?! 그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들이 수천번 맴돌았지만, 나는 그저 을의 입장. 병원의 치료 스케줄이 꽉 차있는 와중에 어떻게든 스텔라의 치료 일정을 넣어달라고 빌어야 하는, 발달이 느린 아기의 엄마일 뿐이었다.


 치료가 끝나고 오는 날이면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와 나는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었다.

스텔라는 오는 길에 차에서 보통 낮잠을 잤는데 엄마인 내가 우는 모습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 안에 갇힌 신세였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스텔라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는 본능 같은 직감이 있었다.


그 후에도 수많은 날들을 울었고, 정말 가능하면 스텔라 앞에서는 울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렇지 못한 날도 많았다. 스텔라가 보는 앞에서 엉엉 울고 나면 나의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스텔라에게 전염될까 봐 나는 그게 너무 두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보는 앞에서 울고 안 울고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보는 앞에서 안 울었다고 한들, 엄마가 느끼는 우울감과 부정적 감정은 말하지 않아도 아이에게 전달된다. 아이는 고스란히 엄마의 감정을 흡수한다.




수많은 자폐 아이를 키웠던 선배 부모들이 말하길, 과거의 가장 후회되는 점은 자폐를 고치려는데 집중하느라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몰랐던 것이라고 한다. 이제 만 6세인 스텔라의 엄마로서 나는 선배라고 불릴 만큼의 짬밥은 아니지만, 지난 6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후회되는 점을 든다면 '부정적인 생각'에 집중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은 다 같은 맥락인듯하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스텔라가 너무 예쁘고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늘 미래에 대한 두려움, 좌절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채로 아이에게 과연 얼마나 잘 전달이 되었을지.  


물론 지금도 노력 중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몰려올 때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긍정적인 생각에 집중하려고 애쓴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엄마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이는 반드시 그렇게 된다.

내가 좌절과 우울감에 침잠해 있었을 때, 스텔라는 내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더더욱 발전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더 깊은 우울과 좌절의 늪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모든 것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상투적인 말.

그 너무 뻔하고 흔한 말을 심장에 새겨 넣기까지 큰 고통과 우울감의 파도를 넘어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

상황을 어떤 필터로 볼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안 좋은 상황이 닥쳤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인가?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인가?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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