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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Apr 10. 2017

바보 같은 사랑

사랑은 진짜 바보 같은 것

이정하 시인의 시 '바보 같은 사랑'을 읽으며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사랑은 진짜 바보 같은 거다. 그래서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겐 사랑이 어렵다. 그게 날이 갈 수록 사랑 앞에 겸손해지는 이유이다.


이정하,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2005, 자음과 모음, 인용.


'돌이켜보니, 사랑에는 기다리는 일이 9할을 넘었다'는 문장은 이 시의 시작이자 이 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고 있는 멋진 한 문장인 거 같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기다릴 수 없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속상한 일이면서도,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일이다. 그래서 속상함을 뒤로한 채 기다리는 일은 바보 같은 것이며, 나아가 바보가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 특히 나는 세상 앞에서 또 사람들 앞에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실제로 많은 노력을 한다. 세상에 바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런 우리는 '사랑'해야지만 바보처럼 '기다리는 일'을 할 수 있다.


완전히 서로를 몰랐었던 서로의 마음이 하나의 교점에서 만나는 기적을 통해 교제를 시작한 남녀의 연애, 혹은 사랑 가운데 기다림은 늘 존재한다. '함께 걸어가는 것'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마음의 걸음걸이는 다 다르기 때문에, 두 마음의 걸음 속도가 서로 맞지 않으면 이미 함께 가는 것을 결정했다 하더라도 그 속도가 빠른 누군가는 기다려야 한다. 마음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을 기다리는 일, 물리적으로 상대방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 무엇인가를 말해주기까지 기다리는 일까지. 그렇다, 정말 사랑에는 기다리는 일이 9할이 넘는다.


남녀의 사랑을 넘어, 부모의 사랑은 더 기다리는 일이 많다. 아이는 천천히 걸을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예민한 귀한 존재라서 기다림이 더 필요하다. 마음이 타고, 속이 썩어 들어 갈지라도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나름대로의 기다림을 감수하게 만든다. 마음에 '참을 인'을 수백 번 수천번 새기며 기다리는 일을 반복한다. 그게 부모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다.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기다림이 있는 사랑은 '아가페' 즉, 하나님의 사랑이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해 야곱, 요셉, 모세와 약속하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다리셨는지를 적어놓은 이야기다. 신약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열방을 향해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예수님'이라는 길을 열어놓고 기다리시는 이야기다. 사실, 그 기다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자기 아들을 죽임으로 열방 모든 민족을 살린 바보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기다리는 일이 9할을 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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