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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Sep 30. 2024

 시골에서 아르바이트하기

 창업을 했지만 아직은 먹고 살만큼 벌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짬짬이 알바를 다닌다. 시골에 와서 알바꾼이 됐다. 대부분의 일이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서울에서는 나이가 있는지라 잘 써주지 않았다. 여기서는 그래도 젊은 편에 속하다 보니 웬만해선 채용이 된다. 시골에선 삼십 대 후반이면 먹히는 나이인가 보다.


 알바 경험이 없고, 정기적으로 출근을 할 수 없는지라 하루 이틀 정도의 행사 스텝 알바를 많이 하게 된다. 지역에는 갖가지 행사가 많아서 부지런만 하다면 여기저기 알바를 다닐 수 있다. 운 좋으면 일주일 가량 연속으로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면 그 달은 통장이 좀 따땃하다.


 첫 번째 알바는 내가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던 숙소 청소를 하는 알바였다. 시간도 내가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숙소도 계속 사용할 수 있어서 1석 2조였다. 물론 숙소 청소 일이 쉽지는 않다. 7개 정도 숙소에 방마다, 침대마다 이불이랑 시트도 다 갈아줘야 하고, 갈아준 시트랑 이불도 빨아줘야 했다. 거기다 건물 전체를 청소하려니 혼자 하기에는 정말 벅찼다. 그래도 유동적인 스케줄과 숙소제공이 되다 보니 꽤 오래 했었다. 숙소청소는 절대 쉽지 않다. 숙박업 엄청 힘들겠다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알바는 지역행사 알바였다. 의성은 아니고 예천에서 하는 행사 스텝이었는데 3~4일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내가 가장 연장자가 아니었다. 5~60 정도 되시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몇 년 전에 귀촌을 하셨고, 용돈도 벌 겸, 일도 하고 싶다고 하셔서 나온다고 했다. 사실 내 나이에도 알바를 한다는 것이 주춤하기는 했다. 괜히 가서 민폐 끼치는 게 아닌지 내가 해도 되는 일인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큰 용기고, 이걸 이거 내면 무언가 배우게 되는 것도 있겠다 싶었다. 근데 나보다도 훨씬 어르신이 알바를 나오셨다니 그분의 용기는 대체 무엇?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 알바는 의미가 있었다.



 세 번째는 무대 세트 제작하는 알바들이었다. 이건 지역행사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했다. 엄청 힘들고, 힘들고, 힘들다. 그냥 체력과의 싸움이다. 일단 다 무겁다. 그리고 다 나무 아니면 쇠다. 긁히기만 해도 상처가 나고, 다칠 일이 넘친다. 한 시간만 하고 나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시급이고 뭐고 지금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온종일 하게 된다. 힘이 문제가 아닌 정신력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땡 볕에서 무거운 것을 계속 나르고, 씨름하다 보면 아찔한 순간이 계속 나온다. 정신을 안 차리면 또 다치기에 계속 정신은 차리고 있어야 한다. 몇 번이고 그 일을 직업으로 하고 계신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누가 누가 무대 세트 제작하는 것을 안 쉬고, 안 다치고 오래 할 수 있는지 같은 경기가 있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거야 말로 실전 피지컬 100 아닌가.



 일만큼 빠르게 배움을 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을 하던 배우는 것이 있고, 성장한다고 느꼈다. 어떤 일을 하는지가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을 대단해 보이게 한다는 것을 배운 것만으로도 나의 시골행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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